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아홉개의 피자 쿠폰

아하누가 2024. 7. 8. 00:41



예전에 잘 읽던 책 중에 <명탐정 호움즈>라는 책이 있다. 

어린 시절의 베스트 셀러였으며 그 이후 어른이 되어서도 내게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20대에 한번 더 읽었고 30대가 되어 서점에서 부지런히 그 책을 찾아보았지만 

<무슨 무슨 코믹스>라는 문고판이라던가 또는 어린이용으로 나와있는 책뿐이어서 

구할 수가 없었다. 겨우 구한 책 한권을 읽으니 옛날 생각도 나고 

약간은 유치한 듯한 절묘함에 혀를 차곤 했다. 

분명 지금의 시각으로는 유치할 수도 있는 내용이지만 내가 재미있다는데 누가 뭐랄까. 

그저 내가 재미있으면 그만이지. 

영국에는 이 책을 마치 성경책처럼 공부하며 연구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한다. 

호움즈의 이름을 따서 <셜록키언>이라 불리우는 집단이 있다던데 거기나 가입해 볼까? 

명탐정 호움즈를 얘기하려는 건 아니고, 그 책을 읽으면 제목중에 <5개의 오렌지 씨>도 

나오고 <10개의 인디언 인형>도 있다. 오늘 일기제목을 짓고 보니 

갑자기 <명탐정 호움즈>가 생각나서 두서없는 잡담을 잔뜩 늘어두었다. 

 

 

피자 쿠폰 -

 

이게 도대체 무엇인가. 

피자를 시켜 먹을 때마다 포장 박스에 붙어 오는 이것을 10장 모으면 

피자 한판이 거저 생긴다는 바로 그 쿠폰 아닌가. 

그런데 그 간단하고도 상투적인 영업전략을 두고 비장한 말투로 얘기를 꺼내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얼마전 우리 사무실에서는 무려 아홉장의 피자 쿠폰을 모아두고 

대망의 열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 갑자기 자신이 자리에 없을 때 10장의 쿠폰으로 서비스 피자를 먹는다면 

무척 억울할 것이라고 생각한 일부 몰지각한 동료 몇 명이 모아둔 쿠폰을 

한 장씩 나눠 가질 것을 제안했고 그 멍청한 제안을 기가막힌 발상이라며 

온갖 미사여구를 동원하며 호응하는 사람들이 합심하여 쿠폰을 한 장씩을 나눠가졌다. 

그리고 마치 어렸을 때 정혼했던 연인을 어른이 되어 만났을 때 

본인 확인 및 변심 여부를 가리기 위해 내미는, 둘로 갈라진 반지나 유리 조각처럼 

간직하고 있다가, 피자 쿠폰이 10장이 되는 결정적인 순간에 각자 꺼내며 

공짜로 피자 한판을 먹는 기쁨을 두배로 늘리려 했던 모양이었다. 

 

발상은 얼핏 좋은 듯했으나 한 장씩 가져간 쿠폰은 이후 영원히 돌아오지 않아 

우리는 영원히 그 집에서 서비스하는 공짜 혜택을 누리지 못한 적이 있다. 

그냥 기분 나쁘다는 이유로 피자집을 다른 집으로 바꾸어버렸기 때문이다. 

얼마되지 않은 일이다. 

이런 어처구니 없는 일들이 일어나는 곳이 우리 사무실이니 

그곳에 묻혀 사는 나도 가끔은 스스로 한심하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한다. 

그 생각이 오늘도 악몽처럼 떠오른다. 

 

 

* * *

 

 

오늘 저녁에 아홉 번째 피자를 먹었다. 

잊어버리지 말라고 성능 좋은 테이프로 컴퓨터 옆면에 덕지덕지 붙여둔 쿠폰이 

드디어 아홉 장이 된 것이다. 그것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중대한 결심을 한다. 

분명 날이 밝아 사람들이 아홉 장이 엉성하게 뭉쳐있는 저 쿠폰을 본다면

'이번에는 기필코 성공하자'며 쓰라린 실패의 추억이 있는 그 방법을 또 시도할 것이다. 

그러면 그것이 무척 재미있을 것이라는 맞장구 부대가 합류할 것이고 

우리는 또 다시 예전의 일을 재방송처럼 경험하게 될 것이 뻔한 일이다. 

그래서 나는 저 아홉 장의 쿠폰을 주머니에 넣어 집에 가져가기로 했다. 

단순한 성격들을 가진 사무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을 기억하진 않는다. 

아, 이 얼마나 대단한 발상인가. 

나는 이 쿠폰을 귀중하게 간직함으로써 자칫 소홀해질 수 있었던 

소비자의 권리를 굳건히 찾을 수 있게 할 것이고 

또한 피자 쿠폰 한 장 소홀히 하지 않는 알뜰함을 몸소 실천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열장의 쿠폰으로 공짜 피자 한판을 먹는 날 사람들은 

나의 세세함에 모두들 감동할 것이고 또한 눈물을 흘릴 것이다. 

얼른 열 번째 쿠폰이 손에 들어오는 날을 기다린다. 그때 피자 파티를 열어야지.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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