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러리맨의 낮은 아름답다

월드컵 개막식 입장권

아하누가 2024. 7. 8. 00:52


이제 곧 월드컵이 시작된다. 

열렬한 축구광인 내게는 둘도 없는 좋은 기회라 벌써 맘이 설레기 시작한다. 

월드컵에는 개막식이 있다. 

간단한 식전행사와 축구 한 경기가 고작이지만 그 상징성은 매우 크다. 

월드컵 입장권을 많이 샀지만 개막전 입장권은 사지 않았다. 

첫째는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였고 둘째는 굳이 가서 봐야 뭐하겠냐는 기분 때문이었다. 

그러나 개막일이 하루하루 다가오면서 온통 머릿속엔 개막전 관람이 가득 들어찼고 

그 고민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도높게 찾아왔다. 

 

입장권을 판매하기 시작한 지 9개월후, 그러니까 개막전의 관전에 대한 고민을 시작한지 

9개월후인 지난주 토요일, 개막전 입장권을 신청했다. 

이미 3등석은 매진이었고 2등석도 제일 나쁜 자리만 남아 있었다. 

가격은 한 장에 30만원. 그리고 그 티켓은 오늘에야 손에 들어 왔다. 

축구 한 경기를 보는데 30만원이라.... 

가만히 입장권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수많은 감회가 교차된다. 

 

"어이, 이거 한 장 만들지 그래?"

 

월드컵 입장권 구경하자며 주변에 모인 동료중 누군가 말문을 꺼냈다. 

얼핏 큰일 날 것 같은 말은 꺼낸 데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우리 사무실이 주로 하는 일이 인쇄매체와 관련된 디자인 회사여서 

다양한 그래픽 작업을 하기 때문에 간단한 위조는 식은죽 먹기처럼 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내가 예전에 보여준 환상의 위조실력 때문이었다.

 

 

*     *     *

 

 

컴퓨터 그래픽이 본격화될 무렵, 장난끼 심한 내가 처음 만든 위조 문서는 돈이었다. 

그것은 국내 위조 사상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것으로 2천원짜리 지폐였다. 

정교한 위조와 탁월한 발상으로 주변의 감탄과 경외의 눈길을 맞본 나는 

그 뒤로 조금 더 재미를 붙여 수표에 도전했다. 

일반 수표는 비교도 안되는 순수 창작 수표인 <백지 수표>를 만들어 냈다. 

주변의 찬사는 하늘을 찔렀다. 

신라시대의 명화가 솔거가 다시 태어나더라도, 

죽은 사람도 살렸다는 마지막 잎새의 화가가 한국에서 다시 태어난다 해도 

감히 흉내내지 못할 금세기 최고의 작품이었다. 

그리고 그 여세를 몰아 자기앞수표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자기옆수표>를 만들어 냈다. 

찬사는 경탄으로 바뀌었고 그 경탄은 나의 능력을 또 한번 향상시키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복권계로 진출했다. 

그래서 나온 복권은 체육복권을 능가한다는 <제육복권>이었다. 

복권의 테마로 쓰인 스포츠 장면을 제육볶음으로 절묘하게 바꾼 작품으로 이는

복권위조계와 사이비 상품의 바이블이었다. 

이 폭발적인 반응은 여지없이 나를 복권위조범으로 만들기에 충분했고 

그래서 나온 또 다른 작품은 주택복권의 인기하락을 예고한 또 하나의 역작, 

<주책복권>이었다. 

 

 

그러나 이러한 위조 행적은 향후 위조범에 대한 형량이 강화된다는 보도에 쫄아서 

모두 사라졌다. 

잘하면 역사에 남을 수도 있었던 역작들이었지만 그래도 몸이 더 중요한 것이니까.

 

 

*    *     *

 

 

이런 사실들을 또렷이 기억하고 있는 사무실 동료들은 

남들은 도저히 이해 못할 '한장 만들지?'라는 농담이 술술 나왔던 것이다. 

 

 

"하긴, 그거 뭐 어렵겠어? 하하하"

"근데 그러다 걸리면 개망신이지 않겠어?"

"그게 뭐 개망신이야. 개막식이지. 하하하"

 

 

모두가 웃는 분위기 속에서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는 틈으로 

월드컵 개막전 티켓을 계속 만지작거리고 있는 후배 디자이너의 모습이 보였다. 

처음 보는 티켓이 신기했는지 이리저리 살피고 있었다. 

 

"어이, 그거 조심해. 30만원짜리야."

 

내 시선이 티켓을 만지작거리는 후배 디자이너에게 쏠리자 누군가가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자 티켓을 만지작거리던 후배는 이해못할 표정을 짓고는 조심스레 말했다.

 

"이거 문제가 조금 있는데요?"

"문제?"

 

무슨 문제일까 놀라 황급히 티켓을 뺏어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별로 문제가 있는 것 같진 않았다. 그때 후배는 내게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그거 열 장 만드는데 제작비만 2,000만원 정도 들어가겠는데요?"

".....!"

 

 

*     *     *

 

 

하지만 나는 그럴 일이 없다. 

이제 며칠 뒤면 나는 월드컵 개막식 현장에 있을 입장표가 있으니까. 

비싸긴 하지만 뭐 어떠랴. 

어쩌면 나 같은 팬에게 이런 기회를 놓치면 평생 한이 될 수도 있을텐데. 

 

그런 좋은 기억들이 오랫동안 잊지 않고 가슴 속 한구석에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 

돈은 많이 썼지만 그래도 나는 기분이 좋다.

 

행 . 복 . 하 . 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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