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식사를 마치고 모두가 나른해질 무렵,
사무실의 직원 한 사람이 나른함을 깨는 말을 시작했다.
총각인 이 직원은 요즘 채팅으로 알게 된 여자가 있는데
무척 괜찮은 사람 같다며 얼굴색이 금방 홍조를 띤다.
하지만 주변에서 사람들이 관심섞인 목소리로 이것저것 묻고 답하는 동안
그 직원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졌다.
급기야 풀이 죽은 목소리와 힘이 하나도 없는 표정으로 고민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직원의 말을 빌면 아직 만난 적이 없다는 이 여자는
다른 건 다 괜찮은데 외모가 조금 부족하다고 했다.
외모가 딸리다니?
이렇게 미묘한 대화의 주제를 두고 그냥 물러설 사무실 사람들은 아니었다.
아무리 요즘 세상이 미모가 우선되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이 사무실이 어떤 사무실인데 미모가 문제가 되어 만남이 이루어지지 못하는
비인간적 행위를 용납할 수 있겠는가.
곧바로 사무실 사람들은 봇물 터지듯 말문이 터지기 시작했다.
미모와 남녀교제와의 상관관계부터 시작하여
여자와 결혼, 미모와 성격 등 사회적으로 비교 가능한 모든 사례들과
통상관례, 그리고 역대의 성공의 실례 등 갖가지 이론들이 입을 열고 나왔다.
그리고 그 이론들의 모든 결론은 미모가 사람을 평가하는데
절대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교과서적인 내용으로 귀결되고 있었다.
제법 어느 정도 흥분이 진정되어갈 즈음 문제의 직원이 또 말문을 열었다.
"그런 외모가 아니구요. 뚱뚱하다고 해서....."
갑자기 주제가 미모에서 뚱뚱함으로 바뀌자
또 다시 다른 사례들이 총동원되기 시작했다.
대화의 요체는 미모 지상주의를 성토로 바뀌었고 그 주된 내용은
건강함으로 상징되는 뚱뚱함의 우월성이었다.
마른 것과 날씬한 것, 뚱뚱한 것, 쌀찐 것, 글래머 등의 형태를
면밀히 비교 분석하고 이에 대한 장단점을 일일이 나열했다.
그리고 그것들은 단지 장단을 가지고 있는 형태의 일부라고 결론지으며
미모가 사람을 판단하는 주요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역시 마찬가지로 교과서적인 결론을 지으며 대화는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 때쯤이었다.
다른 동요 직원이 맥이 빠지기 시작한 대화에 종지부를 찍으려는 듯
후배직원에게 물었다.
"근데 여자가 몇 키로그램인데 고민이야? 혹시 알아?"
후배의 대답으로는 여자의 몸무게가 90킬로그램이라고 했다.
농담이 아니냐는둥, 일부러 그렇게 말한 게 아니겠냐는둥
이왕이면 해석에 유리한 쪽으로 대답을 이끌어내려 했으나
직원의 표정이나 단호한 말투로 보아 그것은 확실한 듯했다.
더욱이 나중에 그 여자가 힘들게 고백한 사실이라는 부분에서
사무실 사람 모두가 그 부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사무실에는 긴 정적이 흘렀다.
몸무게가 90킬로그램이라는 것이 도무지 어떤 형태인지
머릿속에 떠올릴만한 모델이 생각나지 않았다.
모델이 있어야 말문을 열텐데 마우런 그림도 그려지지 않으니
그 어색한 침묵은 계속 이어졌다.
어색함을 깨보려고 한 직원이 말을 꺼냈다.
"혹시 키가 195센티미터 정도 되지 않아? 그럼 제법 균형있을텐데...."
오히려 분위기만 더 썰렁해졌다.
여자, 남자의 구별을 떠나서 90킬로그램의 몸무게라면 조금 문제가 있다.
남 보기에도 불편하고 그것이 순수한 비만이라면 어쩌면 건강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그러니 섣불리 사귀어보라는 말은 나오지 않는다.
이러한 문제는 몹시 곤란하다.
몸무게가 90킬로그램이라는 사실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 그 사람과 사귀어보라는 말도
입에서 선뜻 나오지 않는 것 또한 사실이다.
설령 그것이 잘못된 생각이었다고 한들 어쩌겠는가?
이게 현실이고 또한 한계인걸.
모두들 무슨 말인가 꺼내야 겠다는 생각으로 입맛만 다시긴 했지만
딱히 꺼집어 낼만한 말이 없자
슬슬 자리로 움직여 잠시 멈췄던 일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뚱뚱함에서 비롯된 그 침묵의 시간이
아직 다른 의미가 담긴 침묵으로 바뀌기 전
한사람이 긴 침묵의 마침표를 찍고자 말을 꺼냈다.
"그냥 두사람을 사귄다고 생각해...."
어느 결혼정보회사 사장은 '화려한 싱글은 없다'라는 책을 통해
뚱뚱한 여자에게 비정한 경고를 했다.
하지만 난 결혼정보회사 사장이 아니다.
그래서 아직까지 그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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