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네티즌들은 한 문장을 단어의 첫글자만 따서 줄여 말하는 것이 유행이다.
'이뭐병'이란 말은 '이건 뭐 병신도 아니고....'라는 비아냥의 줄임말이고,
'흠좀무'는 '흠... 이건 좀 무섭군요.' 라는 말의 줄임말이다.
이런 줄임말은 워낙 자주 사용되는 상용 문구를 간단하게 정리한
줄임말 본연의 의미도 있지만, 또 다른 측면에서 보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또는 스스로 표현하기 싫을 정도로 구차한 표현을 말을 줄임으로서,
마치 다른 뉘앙스로 표현함으로서
자신의 인격과 도덕성에 대한 가치추락을 막아보자는 의미도 있는 듯싶다.
이렇게 발생되고 유행되는 줄임말은
네티즌을 중심으로한 여론의 형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데
그 중 대표적인 줄임말 표현에 '지못미'라는 말이 있다.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라는 말을 줄인 '지못미'는
무언가 안타까운 사건이나 사회적 현상에 대해 자신이 큰 힘이 될 수 없음을
한탄하듯 표현하는 말이다.
별로 그 쓰임이 없을 것 같은 관용적 표현이지만
사실 은근히 많은 현상에서 이 표현이 쓰이고 있다.
특히 요즘은 그 정도가 더 심해 이런 표현을 쓸 수밖에 없는
사회적 현상이 곳곳에서 자주 발생하고 있다.
줄임말이 사용된다는 것이 언어의 학술적 판단에서는 반가운 일이 아니겠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어떠한 내용을 담은 줄임말이 많이 통용되는지,
그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도 사회현상을 바라보는데 있어
'언어학술적' 개념보다 더 중요할 것 같다.
* * *
최근 들어 미국으로부터 쇠고기 수입이 허용되자 광우병 논란이 일고 있다.
논란의 차원을 넘어 점차적인 반대의 움직임이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현상중에 제일 눈에 띄는 것이 중고등학생, 청소년의 움직임이다.
그저 인터넷에서만 화제가 되고
자기들끼리만 대화가 오가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다.
인터넷 보도에 나온 사진을 보니 그 규모도 만만치 않고
청소년들이 직접 만들어 온 메시지도 앙증맞다 못해 오히려 숙연해진다.
'저 아직 15년밖에 못살았어요',
'미친소 먹고 의료보험 없어 죽으면 대운하에 뿌려줘' 라는 피켓은
단지 청소년들의 재기발랄한 센스만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본능적으로 위기를 감지하고 있다는 비장함마저 엿보인다.
그러다 보니 왠지 모를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진다.
청소년들이 직접 거리로 나설 때
적어도 그들의 눈에 어른으로 보일 나는 뭘하고 있었을까?
그냥 주변사람과의 대화에서 현재 상황을 한탄하고
책임을 져야할 누군가를 씹어댈 뿐이지 않았나?
그런 생각이 드니 청소년들앞에 또 한번 고개가 숙여진다.
하지만 이렇게 청소년들이 직접 거리로 나선 이상 어른들은 나서지 말자.
차라리 그들이 자신들의 소신을 마음 껏 펼칠 수 있도록 버팀목이 되어주고
어린 손에 들고 있는 촛불이 꺼리지 않도록 든든한 바람막이가 되어주자.
이런 분위기를 틈타 자신이 속한 조직의 이익을 위하는 어른이 되진 말자.
어쩌면 이것은 청소들에게 있어서도
영어몰입교육이나 특목고 진학을 위한 과외학습보다
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이 이루어지지 않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때가 되더라도 청소년들이 어른들을 원망하지 않도록
어른들도 지금의 청소년들을 관심있게 지켜 봐야 할 것이다.
어린 학생들로 하여금
어른들은 언제나 청소년들의 든든한 후원자였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해주는 것이 지금 어른들이 해야 하는 일이다.
학생들의 분전을 지지한다.
우리 학생들, 그동안 어른들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