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의 역사는 라면 나름대로 제법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사람들도 각자 가지고 있는 라면에 대한 추억도 다양할 것이다.
나이가 적든 또는 많든 살아온 인생의 길고 짧음에 관계없이
저마다 훈훈하고 생생한 기억과 추억들이 있을 것이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도 라면을 즐겨 먹었던 것 같고,
키가 쑥쑥 크던 청소년 시절에도 친구들과 즐겨 먹었으며,
일요일 아침마다 나오던 군대 급식의 라면도 아직 생생하게 기억나곤 한다.
가장 오랜 기억을 거슬러 떠오르는 라면은
벌크포장으로 된 5개들이 라면이었는데
아마 그 가격이 100원이었을 것으로 기억된다.
한개가 20원이었으니 5개면 당연히 100원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지금의 사회 현상에 비교해보니 뭔가 합리적이지 못한 가격인 듯싶다.
아마 태어난 동네에 아직까지 살고 있으니 여러 기억들과 데자뷰 현상이 맛물려
내가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닐 수도 있겠다.
혼자 라면을 끓일 줄 알게 될 무렵부터는 곧잘 끓여먹기도 해서
라면은 내가 태어나서 직접 조리하게 된 첫번째 음식이 되었고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첫번째 조리 음식이 나와 같은 경우로 인해
라면이었을 확률은 상당히 높을 것이다.
혼자 라면을 끓여먹기 시작한 것은 초등학생 때였고
중학생이 되어서 학교앞 분식집을 이용하게 되면서부터
라면은 빠질 수 없는 핵심 메뉴기 되었고,
가끔씩 친구집에 놀러가 우리들끼리 끓여먹는 라면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듯 중요한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후 고등학교와 대학시절도 라면은 빠질 수 없는 메뉴였고,
심지어 군대에서도 라면은 빠져서는 안되는 중요한 음식이었다.
매주 일요일 아침이면 라면이 나왔는데,
많은 양을 준비하다보니 라면의 굵기가 상당히 굵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군말없이 잘 먹었었다.
뿐만 아니라 중간중간 몰래 끓여먹는 맛은 더욱 일품이었다.
그런 세세한 일화 하나까지 기억해나자면 끝도 없는 이야기가 나올 것이다.
이렇듯 라면은 나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많은 기억을 안겨준 가장 중요한 음식이었을 것이다.
어린시절 식사 대용으로 활용되기도 했고,
커서는 간식 대용으로, 그리고 조금 더 커서는 색다른 맛을 찻는
별미로 활용되었으니 참 수명도 긴 음식이다.
이제 나이도 40대 중반으로 들어서니
주변에서 함께 식사를 해야 하는 사람들의 입맛이 차츰 변해
라면을 먹을 기회는 점점 줄어들었고
인스턴트 식품이 가지는 부정적 이미지와 그 영양가 때문에
라면은 점점 기억속에서 사라지고 있었다.
더욱이 집에서 자라는 아이들에게 권하지 말아야 하는 음식이라는,
인스턴트 음식의 대명사인 음식이다보니
아이들의 자제를 권해야 하는 상황도 자주 발생하여
라면을 즐겨먹기란 점점 어려워졌다.
그렇게 라면이 점점 기억에서 멀어갈 즈음 새로운 라면 열풍이 찾아왔다.
* * *
최근 나라 돌아가는 꼴이 말이 아니다.
마국 쇠고기 수입파동이나 물가 상승, 외환상승 그리고
공기업 민영화, 대운하 정책 등
대통령이 잘못했을 수도 있고 세계적인 산업환경이 달라졌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와중에서 꿋꿋이 남아 사람을 괴롭히는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조중동이라고 일컫는 보수 신문들이었다.
너무나 비열하고 졸렬한 말바꾸기가 이제는 사람들의 분노를 이끌어냈고,
이에 사람들은 직접적인 안테 행동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신문구독 중지라는 예전방식의 소비자운동에서 한층 발전시켜
그러한 보수 신문에 광고를 하는 기업에
광고를 중단하라는 요청을 하기 시작했다.
더불어 보수신문에 광고를 하는 기업의 제품은 불매운동을 하겠다며
신문사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얼핏 들으면 상당히 효과적인 방법인 듯하지만
소비자라는 것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없는 조직이고,
각자의 취향이 다를뿐더러 필요에 의해 구매해야 하는 소비재일 경우엔
불매 운동 자체가 효과가 없어지는 상황이 자주 발생하게 되었다.
따라서 대부분의 소비자 불매 운동은 말만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고
또한 불매운동이란 것은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근본적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니 소비자들이 외치는 불매운동은 말 그대로 종이호랑이에 불과한 것이었다.
그런데 일부 보수신문에 대한 광고게재 중단 운동과
이에 따른 불매운동이 시작될 무렵
많은 사람들에게 호응을 받는 사건이 하나 생겼다. 바로 라면이었다.
현재 라면 시장은
농심이라는 대기업이 전체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모양이다.
농심에서 나오는 한가지 상품인 신라면이
우리나라의 모든 라면이 팔리는 것보다 더 많이 팔린다니
감히 점유율이란 어려운 단어를 등장시키지 않아도
그 규모와 시장구조를 알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기업 농심이 일부 보수신문에 광고를 했고
사람들은 광고 게재중단 운동의 일환으로 농심에 전화를 했다.
그런데 그 전화를 받은 직원이 건방을 떨었다.
소비자들이 아무리 설쳐야 그 신문사는 전국 1위 자리를 뺏기지 않을 것이고,
원하는 사람은 자신들의 상품을 살 것이라는,
시쳇말로 싸가지 없는 대답이었던 모양이다.
또 당시 삼양라면에서는 너트 조각이,
농심라면에서는 나방 한마리가 발견되었는데
그 보수신문에서는 자기 신문에 광고하는 농심라면 기사는 쏙 뺀 채
삼양라면 사건만 며칠간 기사에 실었다.
이런 사실들이 알려지면서 소비자들은 분노했고 조금 더 강하게
불매운동을 시작했다.
그런데 불매운동에는 매우 커다란 맹점이 있다.
그것은 그것에 버금가는 대체 상품이 없다면 아무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때 사람들의 기억에서 찾아낸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삼양라면이었다.
사람들은 삼양라면이 우리나라 최초의 라면이었다는 사실,
바로 내가 어렸을 때 먹던 그 라면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해 냈고,
그런 라면이 공업용 우지 파동으로
졸지에 농심이란 회사에 1위 자리를 내주었으며,
그 파동은 법정 공방을 통해 무죄로 밝혀졌으나
이미 판결이 나올 때까지는 7년이란 세월이 지나 다시 업계 선두로 도약하게 한
너무나 큰 상처를 입은 상태였다.
이런 사실들은 기억해내면서 삼양라면은 농심이란 라면의 대체 상품으로
훌륭히 그 역할을 넘겨받을 수 있다는 확신이 섰고
사람들은 삼양라면을 찾는 운동을 시작했다. 물론 일부 사람들의 경우일 것이다.
그렇게 개념이 바뀌면서
이곳저곳에서 삼양라면에 대한 좋은 기업 이미지들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대관령에 훌륭한 목장을 갖추고 있다는 점, 스프만들 때 한우를 사용한다는 점,
화학조미료인 MSG를 예전부터 사용하지 않았다는 점,
화학용기를 쓰지 않고 종이용기를 쓴다는 점 등
훈훈한 기업이념이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삼양을 찾고 있다.
여기에 매운 라면은 중독성이 있어 많이 팔 수 있지만
사람의 몸에 좋지 않아 만들지 않는다는 기업대표의 인터뷰 내용도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기업으로 자리잡기 시작했다.
오래전 얘기가 아니라 바로 엊그제 벌어진 일이다.
좋은 회사로, 신뢰할 수 있는 기업으로 알려지면서
사람들은 회사를 돕는 차원에서 주식을 사기 시작했고,
나날이 하락하는 증시에서 며칠간 상한가 행진을 하는,
주식 전문가들도 도저히 그 상황을 해석할 수 없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그렇게 알려진 삼양라면은 많은 사람들을 통해
자극은 덜하지만 뒷맛이 좋다고 알려지기 시작했고,
심지어 라면을 먹은 뒤 설겆이할 때 기름이 확연하게 적게 나온다는
증언 아닌 증언들이 여기저기 쏟아지면서
20여년간 철옹성처럼 지켜오던 라면업계에 파동이 불기 시작하고 있다.
마치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던 크라운 맥주가
결국 OB맥주를 이긴 것 같은 현상이다.
다만 그것과 다른 점이 있다면
크라운맥주는 상호와 브랜드를 '하이트'로 바꾸는 등
마케팅과 품질 개발로 판세를 뒤집었지만
이번 라면 전쟁의 경우 삼양이 선두에 복귀한다면
이것은 단지 소비자의 힘만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그 파장과 의미는
실로 엄청날 것이다.
삼양라면을 다시 찾는 사람들은 오래전 추억도 있을 것이고,
지난 수십년간 도와주지 못한 미안함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일등업체의 자만과 교만에서 그 이유를 찾아야 할 것이다.
삼양라면이 선풍을 일으키자 처음엔 우습게 알던 농심측에서도
긴장했던 모양이다.
자신들은 ㅈ일보에 광고한 적이 없고,
광고는 판매대행없체가 한 것이라는 변명이 담긴 팝업창을 띄웠고
어느 주부 요리 사이트에는 홍보실에서
직접 공장견학할 주부를 초대한다는 공지도 보냈다.
때가 어느 때인지 모르고 공장 견학시켜주며 마음을 달래보겠다는
그 방법 또한 졸렬하기 그지 없다.
아마도 오랫동안 일등자리를 내주지 않은 기업만이 가진
몸에 배인 교만인 듯싶다.
이렇듯 요즘 라면업게 돌아가는 모습이 흥미롭다.
소비자들의 운동에 의해 판도가 바뀌는 진기한 경험도 해보고 싶고,
그로 인해 소비제품을 만드는 회사라면
소비자가 얼마나 중요한 사람인지 확실한 인식도 심어주고 싶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인터넷에 떠도는 삼양라면 기업 이야기가 다 사실이라면
본업에 충실한 철학을 가진 기업이 반드시 성공하는 장면도 꼭 보고 싶다.
* * *
오늘도 삼양라면에서 나온 '맛있는 라면'과 '컵라면'을 샀다.
삼양라면이 꼭 업계 일등자리를 되찾아
대한민국의 모든 기업들에게 새로운 패러다임을 심어주었으면 한다.
또한 소비자를 신발 바닥 만큼도 안될 정도로 무시하는 보수신문에게도
매우 따뜸한 경종을 울리고 싶다.
이것이 바른 사회를 만드는 노력이라고 나는 아직 믿고 있다.
아하누가
시간이 많이 지났지만 불행히도 내 바람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