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칼럼

나도 글쓰는 재미와 가치를 안다!

아하누가 2024. 2. 21. 19:36


나도 글을 쓴다.
'쓴다'라고 말하기는 거창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한 사람이다.
글을 쓰면서 느끼는 세밀한 감성과

쓰고나서 다시 읽으며 더 풍부해지는 감성을 참 좋아한다. 
그것이 혼자만의 일기가 되었듯,

또는 별로 전하는 메시지가 없는 낙서장의 낙서일지라도
글을 쓴다는 것에 대한 감성은

언제나 아름답고 마음을 따뜻하게 해준다고 생각했다.
그러한 감성의 표현을 잘 하는 사람들의 글은

내가 글을 쓸 때 얻게 되는 감성보다 더 풍요로왔고
따라서 독서는 어린 시절부터

우리에게 귀에 못이 박히도록 그 중요성이 강조되어도

당연함으로 여기게 되었다.

글을 쓴다는 개념으로 다른 사람의 글을 읽는 것도 상당히 중요한 일이니 말이다.

 

그런데 오늘 아침, 한 중앙 유력일간지에 게재되었다는 칼럼을 보니
글을 쓴다는 것이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아름답지는 않은 모양이다.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었지만
글을 쓴다는 것이 이처럼 추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접 확인하게 되니
아침부터 마음이 퀭하다.

글은 단순히 문자의 나열만은 아닌 것이다.

또 보고 싶진 않지만 글을 쓰는 것을 좋아하는 내가
언제나 교훈처럼 간직할 수 있도록 그대로 옮겨둔다.
이런 식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것은
글이 가진 본연의 힘은 아닐 것이다.

 

 

 


* * *

 

 

 

 


[이훈범시시각각] 총리감이 없다고요?

[중앙일보] 관련핫이슈[2008년도]

 

누구나 아는 이솝우화 한 토막.
고깃덩이를 문 까마귀가 나뭇가지에 앉았다. 여우가 다가와 말했다.

“아름다운 목소리의 까마귀님, 노래를 들려 주셔요.” 우쭐한 까마귀가 목청을 높였다.
입을 벌리는 바람에 떨어진 고기를 물고 달아나며 여우가 말했다.
“멍청한 까마귀야. 고기나 먹지 그 목소리로 무슨 노래냐.”

이처럼 교훈 담긴 우화를 입에 달고 다닌 이솝이지만 정작 자기 처신은 그렇지 못했다.
그가 델포이에 갔을 때다. 사람들은 그의 이야기에 감탄하면서도 노예 신분인 그를 천대했다.
그러자 그는 델포이 사람들을 어리석다 깔보고 비웃었다.
화가 난 사람들은 그의 짐 속에 신전의 제기를 몰래 넣었다.
도둑 누명을 쓴 이솝은 절벽에서 내던져졌다.

그게 인지상정(人之常情)이다.
남을 향한 잣대의 치수는 촘촘하면서 나를 재는 잣대는 넉넉하기 십상인 거다.
우리 사회에 잘나간다는 사람들이 흔히 그랬다.
겉으론 근엄하게 세상을 논하고 세태를 걱정하면서 속으론 세상사 배 불리는 길로 잔머리를 굴렸고
세태를 앞질러 물을 흐렸다.
그래서 세상이 더 어두워지고 세태가 더 탁해지는데 부끄러운 줄도 몰랐다.

그런 이들 중에 요즘 땅을 치는 사람 많겠다.
전화를 끊고 나서 한숨 짓는 이들 참 많겠다.
새 정부 구성할 국무총리와 각료들 인선작업이 애를 먹고 있다고 해서 하는 소리다.
사람이 없다는 거다.
가진 자원이라곤 사람밖에 없는 나라에서 총리 할 사람, 장관 할 사람이 없다는 거다.
좌파 정권 10년에 우파 인력 풀(pool)이 바닥나서이기도 하지만
간단한 약식 검증에도 후보들이 우수수 떨어져 나간다는 거다.
재산·병역·학력처럼 세상에 드러난 사실만 놓고 보는데도 그렇단다.

약식검증을 통과하면 정밀검증에 들어가는데 이게 더할 건 두말이 필요 없다.
관계기관에 의뢰해 납세·부동산·주민등록·전과 기록들을 꼼꼼히 따져보고
학자의 경우 논문 표절 여부도 확인하는데 발 안 저린 사람이 별로 없는 모양이다.
기록 조회를 위해 본인 동의를 구하면 60% 이상이 고개를 젓는다는 거다.
“청문회를 통과할 수 없어서”란다.
눈 앞의 떡을 보고도 밀쳐야 하니 땅 치고 한숨 안 쉬겠나 말이다.
설령 동의하더라도 검증을 해 보면 절반 이상이 탈락하고 만다는 거다.
처음에 100명을 놓고 검토했다면 이제 10명도 안 남는다.
후보의 능력을 따질 겨를이 있겠나.
거기에 누굴 시켰다 해도 인사청문회나 언론 검증 과정에서 뭔 문제가 터져나올지는
그야말로 신(神)만이 알 일이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됐는지 눈물 날 일이지만 개탄만 하고 있기엔 시간이 너무 없다.

그래서 하는 얘긴데 이참에 국민적 대사면을 하는 건 어떨지.

전문적 투기나 상습적 탈세처럼 파렴치한 범죄가 아니라
그저 한 순간 욕심에서 빚어진 어지간한 오점들은
눈 딱 감고 한 번 용서해 주면 어떨지.
평생 정직하게 살아온 많은 사람은 억울할 터지만 본래 용서는 정직한 사람 몫 아닌가.
이참에 용서하고 선을 긋는 것은 어떨지.
대통령 당선인에게 그랬듯 과거의 허물은 덮어두고
인재들에게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면 어떨지.
그들 손에 걸레를 들려줘 세상을 투명하게 닦을 임무를 맡기는 건 어떨지.
그러면서 자신의 때까지 씻을 수 있게 하면 어떨지.
그렇게 함으로써 먼지가 켜켜이 쌓인 과거와 단절하고
정직한 사람이 손해보지 않는 맑은 사회를 함께 만들어가 보는 건 어떨는지.

그들에게 무작정 돌을 던지는 건 이솝의 우(愚)를 또 한번 범하는 짓이다.
어찌 보면 온갖 부조리를 관행과 관례라는 이름으로 눈 감아온 게 우리 자신 아닌가.
그들이 그걸 즐겼지만 나도 (기회가 닿았으면) 마찬가지였을지 모를 일 아닌가 말이다.
까마귀는 고기 잃고 망신을 당했지만
나무에 앉은 것이 목소리 예쁜 꾀꼬리라면 노래를 부르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터다.
참으로 사람이 없다니 하는 말이다.

 

 


이훈범 정치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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