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사는 이야기

강아지 한마리

아하누가 2024. 7. 8. 00:17


강원도에서 고기를 구워먹는데 뜬금없이 강아지 한 마리가 나타났다. 

발바리 새끼다. 

어느 집에서 살았는지 편안하게 잘 먹고 잘 살았던 듯 

몸의 털도 뽀송뽀송하게 보이지만 그 반면에 두 눈은 잔뜩 겁에 질려있었다.

인가가 밀집하지 않은 강원도 산골에서 이런 강아지는 보기 힘들다. 

누가 키우던 거라면 그게 누군지, 누구네 집인지 금방 알 수 있는 작은 동네니 

동네에서 나온 강아지는 분명 아니고 

아마도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깜박 잊거나 또는 잃어버리고 간 모양이다. 

 

 


굽던 고기 한 점을 건네주니 행여나 낯선 사람에게 잡힐세라 

매우 조심스럽게 가져가 먼 구석으로 도망가더니 허겁지겁 먹기 시작했다. 

태어난지 그리 오래 되어 보이지 않는 이 강아지는 

그때부터 그날 밤 내가 강원도를 떠나 서울로 올 때까지 따라다녔다. 

서울로 올라가는 차까지 쫓아온 녀석을 보고 주인도 없는 녀석을 

황량한 강원도 산골에 그냥 두고 와야 한다는 생각에 그다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나는 애완견을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인간과 친한 동물인 개를, 주인을 따르는 개를 싫어할 이유는 딱히 없지만, 

개가 개답지 않게 자라고 있는 지나친 애견인들의 행동에 반감이 들었던 모양이다. 

아내 역시 개를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적어도 우리 집에서는 개에게 가질 어떤 애착도 없다. 

 

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 

아마도 저 강아지는 혼자 저렇게 살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어 죽거나

혹은 그렇지 않더라도 누군가 보호해주지 않으면 멧돼지 밥이 될 확률이 크니까.

 

 

 

그 일이 있고 내가 다시 강원도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2주 뒤. 

금요일 밤 가족과 함께 강원도에 도착했다. 

집 앞에 들어선 시간이 대략 밤 12시 무렵. 

자동차가 집 진입로에 들어서고, 나는 집의 대문 역할을 하는 작은 철사줄을 열기 위해 

잠시 차에서 내렸을 때 마치 기적이 일어난 것처럼 그 녀석이 나타났다. 살아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2주간 매우 궁금했었는데, 

생생하게 살아서 그 늦은 시간에 뛰어나왔다. 

뽀송뽀송하던 털은 어느덧 때가 잔뜩 묻어 지저분해졌고, 

그나마 밥은 어떻게 얻어먹는지 아니면 주워먹는지 제법 건강해보였다.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긴 하지만 아직도 경계심이 가득차고 겁이 많아서 

조금만 몸을 돌려 가까이 다가가려하면 녀석은 멀리 도망갔다. 

 

 

아침이 되어 옆집에 사는 이장님을 뵜다. 

 

 

“이장님, 저 강아지 좀 키우시죠?”

 

 

이장님은 손사레를 쳤다. 

 

 

“저놈의 새끼, 맨날 우리집 개밥 훔쳐먹고 다니고 음식 쓰레기 뒤져서 

엉망으로 만들지 않나, 기리구 신발을 자꾸 물고 도망가드래요. 내 골치 아파 죽겠드래요~”

 

“......!”

 

 

 

그렇게 그 강아지는 단 한사람의 도움도 받지 않은 채 그렇게 지내고 있었다. 

 

 

 

 

2주 뒤 다시 강원도를 찾았을 때, 

그전에 그랬던 것처럼 녀석은 밤 12시가 다 된 시간에 내 자동차를 보고 달려왔다. 

몸은 더 더러워졌지만 밥은 잘 먹고 다니는지 꽤 건강해보였다. 

생각 같으면 확! 잡아서 박박 씻겨주고 싶었지만 

도무지 가까이 올 생각을 하지 않으니 잡는 것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리고 어딘가에 숨어 있는지 눈에 보이지 않다가 저녁이 되어 고기를 구울 때가 되면 

여지없이 나타나 예의 그 불쌍한 표정을 짓곤 했다. 

어디서 잠을 자고 어디서 지내는지 도저히 알 길이 없다. 

그냥 간혹 나타났다가 사라지는 행동을 반복하니 그저 잘 살아 있음에 감사할 뿐이었다. 

 

 

한동안 강원도에 못가다 3주만에 가게 되었다. 

3주간 이 강아지가 멧돼지 밥이 되진 않았는지 걱정이 되었지만, 

예전에 그랬던 것처럼 자동차가 진입로에 들어서자, 

매우 늦은 시간임에도 녀석은 또 나타났다. 

이제 낯이 익다고 잘 쫓아다닌다. 

털은 더 지저분해졌다. 하지만 몸은 건강해보였고 키도 부쩍 컸다. 

시간이 꽤 지나서 그런지 녀석은 제법 크게 성장했다. 

다만 혼자서 지나친 긴장 속에서 지내는 이유인지 눈빛은 점점 야생동물처럼 변했고, 

걸음걸이는 강아지라기보다 내셔널지오그래픽에서 자주 보는 여우의 발걸음과 닮아 있었다. 

귀여운 모습은 많이 사라졌고 점점 야생화되고 있었다. 

 

 

문득 주머니 속 핸드폰이 생각났다. 

그나마 지금은 얼굴이라도 익다고 꽤 많이 접근이 가능해서, 

사진 찍을 거리까지 들어오게 해서 겨우 몇 장의 사진을 찍었다. 

이게 지난주(6월 8일)의 일이다. 

 

 

 

아직도 나는 이 강아지가 어디서 잠을 자고 어디서 뭘 먹는지 모른다. 

그저 강원도에 머물 때면 항상 나타나 주변을 배회하다 또 어디론가 사라지곤 하니까.  

약 3년전, 동네를 누비던 들개 한 마리도 아마 저런 과정을 통해서 성장했을 지도 모른다. 

그 들개는 마을 사람이 잡았다. 

매일 저녁 닭장에 들어와 닭을 잡아 먹곤 했으니까. 

개라고 하기엔 덩치도 커져서 웬만한 사람들은 위협을 느낄 정도가 되었었다. 

그때 앞장서서 총대 메고 들개를 잡던 사람이 바로 나였는데, 마을 청년회장이어서 그랬다. 

마을 청년회 기준으로 60세 미만은 청년으로 분류하는데 우리 마을엔 나 한사람이다. 

그러니 청년회장이다. 

물론 부녀회도 있는데, 아내는 부녀회에서 호칭이 ‘새댁’이다. 아내는 올해 결혼 22년차다. 

 

 

 

혹시라도 지금 저 강아지가 나중에 들개로 자랄까 걱정이다. 

품종이 그렇게 호전적으로 자랄 것 같진 않지만, 

환경에 의해 또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지도 모를 일이다. 

야생에서 먹고 자며 먹어서는 안될 음식들을 먹다가 나중에 ‘괴물’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그것도 걱정이지만 그런 걱정은 현실 가능성이 매우 적거나 거의 없으니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이라 치자. 또 하나 걱정이 있다. 

 

 

어느 날, 어느 순간, 내가 강원도에 도착해도 녀석이 나타나지 않을 상상을 하니 

이 또한 안타까울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온다. 

이놈의 강아지 한 마리가 뭔지, 나는 오늘도 이 녀석을 걱정하고 있다. 

 

 

 

 

 

 

 

 

 

 

아하누가

능력자 있으면 잡아서 키워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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