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을 먹고 나른해질 무렵, 문득 사무실 창밖에서 괴성이 들려왔다.
아래층에 편의점이 있는 2층 사무실은 길거리와 가까와
창문을 열지 않아도 사람들의 오가는 소리가 잘 들리는 곳이다.
목소리로 느껴지는 나이는 60세 전후로,
대낮부터 술을 어찌나 많이 먹었는지 혀꼬부라지는 소리로 혼자 떠들기 시작했다.
그 목소리가 얼마나 컸는지 사무실에도 생생하게 들렸고,
무슨 소리인지 귀를 기울이면서부터 그 소리는 점점 커졌다.
무슨 내용인지는 자세히 들리지 않았지만
일반적인 취객들이 흔히 행하는 신세한탄 및 근거없는 욕설이었다.
주변에서도 말리는 소리가 조금씩 등장하자 취한 사람의 목소리는 점점 더 커졌고,
사무실에 앉아 있는 내게도 인내심의 한계가 찾아왔다.
더 이상 이러한 예의없고 무식한 행동을 좌시할 수 없어 자리에서 일어났다.
창가로 다가가 '야~ 이 개X끼야!'로 시작하는 욕설배틀을 시작하려고 창문을 열었다.
50대 중반 가량 되어보이는 주인공은
한낮의 취객이 갖추기에 매우 적절한 복장을 하고 있었으며,
몸도 이미 술에 쩔어 많이 상했는지 잘못 밀기라도 하면 뒤로 발랑 자빠져
전치 4주 이상의 중상을 입을 것 같았다.
그래도 이왕 창가로 와서 창문까지 열었으니 뭐라도 한마디 하려는데
이 주인공은 고성도 모자라 급기야 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이런 천인공노할 놈은 즉각 응징하여
바른 사회를 구현하고 살아있는 정의를 몸소 확인시켜줘야 한다.
목소리의 톤을 가다듬는 그 순간 그 주인공의 노래소리가 들려왔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
보통의 취객이 내낮에 고성방가로 부른다면
구슬픈 나훈아의 히트곡이나 경쾌한 '찬찬찬' 등이 적합하나,
대낮에 길거리에서 미친놈 취급받으며 부르는 노래의 선곡으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 미친놈은 '어이~', 에이~' 라는 추임새까지 완벽하게 구현하며
명곡의 색다른 재해석을 완벽하게 실증하고 있었다.
그리고 수많은 추억과 감상에 빠져
그 미친놈 노래를 따라부르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뭔가 해프닝을 만들거라고 기대하며 나의 행동을 주시하던 사무실 사람들은
알듯모를 심각한 표정으로 바뀌고 있었다.
들국화는 관용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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