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의 조상은 늑대라고 한다.
예전에는 한 동물이었지만 세월이 지나면서 이 둘은 점차
다른 성격의 동물로 갈라진다.
개는 야성을 떠나 인간과 함께 생활하는 동물,
이른 바 반려동물(伴侶動物, companion animal)이라는 존칭까지 붙으며
호화생활을 누리고 있지만
늑대는 아직도 야생하면서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는 등
둘 사이는 상반되게 진화되어 왔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시기는 대략 1만 2천년전으로 추측되는데,
지금 상황에서 보면 비슷하게 닮은 두 동물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존재한다.
인간의 보호를 받으며 자란 개들은 늑대를 보면 정신없이 짖어댄다.
두려움 때문이다.
늑대가 뭔지 한번도 본적이 없는 개들도 미친듯이 짖어댄다.
이런 두려움은 학습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본능에 의한 것으로,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스스로 알게 되는 두려움이다.
개들이 사는 집단에 늑대가 한마리 나타난다면
개들의 세상은 그야 말로 초비상 상태에 이르게 된다.
그동안 누려온 행복을 빼앗기는 정도의 두려움이 아니라
죽고사는 문제에 직면하게 되는 비장한 두려움이다.
많은 개들이 있다면 서로 힘을 합쳐 늑대를 물리치면 될 것 같지만
그게 쉽지 않다.
일단 늑대란 동물은 개의 능력에 비교하기도 민망할 정도로
뛰어난 전투능력을 가지고 있다.
우선 후각, 청각, 시각 등 감각의 능력은
야생환경에 적응하고 있는 늑대가 훨씬 뛰어나다.
특히 시각 능력이 약한 결정적 단점이 있는 개와는 달리
늑대는 아주 작은 움직임도 정확히 파악할 수 있고 약 180도의 시야를 가지고 있다.
단점이 없는 셈이다.
또한 늑대는 빠른 걸음걸이가 가능하다.
평균 12-16km/h로 하루 최고 100km를 이동하기도 하는
놀라운 지구력을 지니고 있다.
늑대의 물어뜯는 능력은 일반적으로 개의 2배로 평가된다.
개 중에서는 아메리칸 핏불 테리어가 가장 뛰어난 것으로 전해지나
이 둘의 정확한 비교수치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그 파괴력은 이빨 크기나 날카로움의 차이를 고려해 볼 때
늑대가 그 어떤 품종의 개보다 강하다.
북극지방의 늑대가 개보다 썰매 끄는 힘 등이 뛰어나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특히 늑대의 경우 발바닥 패드에 작은 털들이 있어서
얼음 위를 걸을 때 마찰력을 높여 미끄러지는 것을 방지할 수 있다고 한다.
한마디로 전투력으로 따지자면 상대 조차 되지 않는 비교다.
이러니 개들 사이에 늑대가 나타나면 죽기살기로 짖어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개의 입장에서는 불행하게도 짖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
더 이상의 대결은 불가능하다.
당연히 피할 수 없는 상황에 맞딱뜨리면 꼬리를 내리게 되어 있다.
이제는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이 된 늑대지만 그 특성을 살펴보니
늑대라는 동물의 영화의 소재로, 소설의 비교대상으로는
최적의 조건을 갖춘 매력적인 동물이다.
* * *
올해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6개월 가량을 남겨둔 요즘 각 정당에서는 후보자를 뽑느라 정신이 없다.
사람들도 슬슬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벌써 한두사람이 유력한 후보자로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불행하게도 그 두사람은 대통령이 되기엔 그 자격과 역량이 모자란다.
이런 사람들이 유력한 후보자라는데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서 서글픔 마저 든다.
장구한 세월을 독재자로 군림하며 이 땅의 발전을 가로막았던 사람의 딸이
그 아비의 업적을 계승하겠다고 하고 있고,
단지 수완이 좋은 이유로 돈을 많이 번 장사꾼이 賣가 아닌 治를 하겠다고 나서니
답답할 뿐이다.
더욱이 이들은 언론이라는 충실한 방어막에 몸을 숨긴채
국민들에게 자신의 실제 능력을 호도하고 있으니 이것도 큰일이다.
이 두 사람을 지지하는 사람들에게는 매우 미안한 말이지만
안타깝게도 이들은 절대로 대통령이 되지 못한다. 내기해도 좋다.
부족한 도덕성과 모자란 명분, 나라를 다스릴 능력부족의 치명적인 약점은
이들로서는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높은 산이다.
그러면 누가 대통령이 될까.
간단하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개들 사이에 늑대가 나타난다면 당연히 개들은 미친듯이 짖어댈 수밖에 없고
결국엔 꼬리를 내릴 수밖에 없다.
어떤 사람이 그 주인공이라는 사실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것 또한 간단하다.
언론이 죽기살기로 깍아내리려고 하는 사람,
대통령에 출마한다는 말도 꺼내지 않았는데 언론에서 기를 쓰며 반대하는 사람,
그런 사람이 있다면 그가 바로 주인공이다.
곧 능력있고 훌륭한 철학을 가진 사람이 나타나
대한민국이 한걸음 더 나아가길 기대한다. 아니 반드시 나타날 것이다.
아하누가
이런 내용의 글을 쓸 때 나는 항상 슬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