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사회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갈수록 영어조기 교육이 더 극성을 부리고 있다.
초등학교에 입학하지도 않은 유치원생들에게 영어교육을 실시하는 건
당연한 듯 이루어지고 있고,
영어마을이다 원어민 영어강사다 영어교육과 관련된 뉴스가
매일 빠짐없이 매스컴에 등장하고 있다.
세계시장에서의 미국 영향력으로 인해 많은 교역과 소통,
그리고 학술과 문화의 교류도 영어를 통해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으니
그 중요함에 대해서 딱히 트집을 잡을 일은 없다.
그러나 무엇이든 지나치면 탈이 난다.
과열된 영어 조기교육 역시 또 다른 문제를 야기시킬 것이다.
영어는 언어다.
아직 우리말에 대한 문법과 어휘를 갖추지 못하여
정확한 우리말도 제대로 구사할 능력이 없는 어린 아이들이
다른 언어를 익힌다는 건 상당히 어렵고 또한 위험한 일이다.
일단 두 가지 언어의 각기 다른 구조가
어느 것 한가지를 제대로 습득하지 못하게 한다.
결국 영어교육으로 인하여 언어를 이루는 구조에 대한 인식의 혼란이 오고
이것은 후에 잘못된 언어사용으로 인한 또 다른 문제를 만든다.
영어 조기교육이 가지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이다.
그렇다면 영어 조기교육의 문제점이
언어의 개념정립이 불안정하다는 이유 뿐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 * *
영어는 우리 말과는 상당히 다른 언어구조를 가지고 있다.
가장 대표적인 차이점은 주어 다음에 목적어 없이
바로 술어가 온다는 점인데,
이러한 표현방식은 문화적으로도 엄청난 차이를 가지고 있다.
'한국말은 끝까지 들어봐야 돼'라는 비아냥도
이러한 문법적 특징에 근거한 것으로,
대부분의 서양 언어에 비해 우리말은 술어를 제일 나중에 표현함으로써
완곡하고 우회적인 표현방법을 문화의 일부분으로 지켜오고 있다.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할 때도 'YES or NO'의 이분법적 선택이 아니라
예스와 노로는 표현할 수 없는 수많은 상황들을 표현해왔다.
어쩌면 그것은 단순한 사고의 차이에 따른 문화가 아니라
우리가 지켜온 감성이고 또한 미덕일 수도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영어는 어떤가?
질문을 했으면 바로 YES 또는 NO라는 직접적인 응답이 나와야 하고
일반적인 대화를 할 때도 원하고자 하는 핵심 단어가 문두에 자리잡아
말 그대로 '화끈한' 의사 소통이 가능하다.
여기에 영어 문장에서 약방의 감초처람 등장하는 TAKE라는 단어가 내포한
'침략적인 약탈문화'의 의미까지 설명하자면 그 문제점도 상당할 것이다.
이러한 문법적 구성과 언어적 특성은 사회적 환경과 문화에 기인한 것으로
우리가 그러한 언어적 문화를 답습하기엔 너무나 괴리감이 깊다.
다른 언어의 사용빈도가 높아진다는 것은
문화적 전통파괴가 시작된다는 뜻이다.
전통과 문화가 달라진다면?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전통과 문화는 물론 언어 습관도 사회적 변화에 따라
유동적이고 탄력적으로 변화하는 것임에는 분명하지만
그것도 변화의 자연스러운 흐름이라는 것이 있다.
문화의 이질적 변화가 사회적으로 어떤 변화를 일으키는지
섣불리 예상할 수는 없지만
분명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외국의 경우를 보면 알 수 있다.
현재 세계정세를 둘러보자면 결국 자기 것을 지킨 나라가 성공하고
자기 것을 지키지 못한 나라가 실패한다.
혹시나 미국식 문화로의 변화에 대해 관대한 사람이 나타날 때마다
나는 그들에게 필리핀이란 나라를 예로 들어 설명한다.
1970년대 일본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아시아의 경제부국이었던 필리핀의 현재 모습은 상당히 안타깝다.
1인당 국민총생산은 몇십년째 제자리 걸음이고 실업률은 계속 높아만 간다.
물론 그러한 원인은 배분의 불평등이라던가 기득권자들의 경제독점,
깨끗하지 못한 정부 등 다양한 이유도 한몫하겠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자신의 언어보다는 영어를 더 선호하는 사회의 저변에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자기 것을 지키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지
우리는 필리핀이란 나라를 통해 상세히 지켜보고 있는 것이다.
어쩌면 무리한 예를 들었을 수도 있지만
예로부터 언어를 지키지 못해서 망한 민족의 경우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 * *
인터넷을 중심으로 과학과 산업의 발달은
영어가 이제 세계를 움직이는 의사의 소통수단으로 더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고
따라서 이에 대한 교육은 불가피한 상황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 언어적 구조와 문법적 체계를 갖추기 못한 유아들에게까지 실시되는
과열된 영어의 조기교육은 영어를 통해서 얻고자 하는 것보다
잃는 것이 더 많을 것이라는 우려를 낳게 한다.
따라서 영어 교육의 열성은 우리가 잊어서는 안될,
우리의 언어를 우선적으로 지키는 노력 이후에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국가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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