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칼럼

전문가 시대

아하누가 2024. 2. 21. 19:20

대덕연구단지 내의 초등학교에 가면 웃지못할 해프닝이 자주 생긴다고 한다.
교사가 학생들에게 무언가를 가르치면 다음 날
일부 학생들이 그게 아니라고 반문하는 일이 자주 생긴다.

 

"선생님 그게 아니라 이런 거래요?"
"누가 그러던?"
"우리 아빠가요."

 

그러면 다른 학생들이 옆에서 한마디씩 거든다.

 

"쟤네 아빠 우리나라 최고 물리학 박사예요."
"......"

 

 

반 이상의 학생들 부모가 박사라니 충분히 가능한 얘기다.
매우 극단적인 사례이긴 하나 상황이 이렇다면
요즘 교사들 교육에 상당히 곤란할 것 같다.
아주 오랜 기억에 남아 있는 교사들의 단면을 기억하자면,
시골 마을에서는 글씨를 모르던 어르신들이 집에 도착한 편지를 들고
선생님께 읽어달라고 하던 영화의 장면들이 아직도 생생하고,
자녀들이 선생님 말을 안들었다면 그 자리에서 자녀들을 혼내거나
또는 선생님을 직접 찾아가 사과를 하는 장면들을 자주 볼 수 있었는데
이거야 말로 옛날 옛적 호랑이 금연하던 시절 얘기가 되었다.

 

 

그런데 이런 이야기는 비단 교사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사회적으로, 범국민적으로 교육의 질 높아지고
또한 각종 매체의 발달과 경제적 성장은 국민 모두의 지적 수준을
매우 짧은 시간에 한단계, 아니 무려 10단계 이상 상승시켰다.
그러다보니 불과 20년전만 해도 한 분야의 고수를 '전문가'라고 칭하며
칭송하거나 추앙 또는 그들이 주장하는 논리에 여론이 움직였는데
요즘 세상에 들어서면 전문가가 전문가가 아니고
아마추어가 아마추어가 아닌 세상이 되었다.
아마추어라고 해서 설익고 모자란 지식만을 갖추고 있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문가를 뺨치고도 남을 충분한 지식과 실력을 갖추고 있으니
전문가들이란 사람들의 얼굴이 빨게지는 자주 발생하게 되었고,
이는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심해지는 추세다.

 

 

기초과학이나 의학 등 특수 전문가들을 제외하고 사회문화, 취미, 교양 등의
분야를 들여다보면 전문가와 아마추어가 따로 없는 세상이 되었다.
전문 사진작가보다 동호회 게시판에 올린 아마추어의 사진이

더 뛰어날 때가 있고,
글 잘 쓰는 작가보다 더 글을 잘 쓰는 아마추어도 인터넷에 널렸다.
어디 그뿐인가? 가수보다 노래 잘하는 아마추어들은 전국에 셀 수도 없이 많으며,
스포츠 중계의 캐스터나 해설자보다 더 뛰어난 아마추어 팬들도 셀 수 없이 많다.
상황이 이 지경이니 이제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라고 하는 것은
오직 그 일을 하며 먹고 사느냐, 다른 일 하며 취미로 그 일을 하느냐의,
원래 단어의 뜻대로 구분해야 할 시대가 되었다.
예전 전문가 양성을 외치던 시대가 전문가가 특수한 직업인 시대였다면
이제는 전문가는 오직 그 일을 업으로 삼는 사람만을 호칭하게 되었다.
즉 달리 말하면 전국민이 전문가가 되는 시대에 이른 것이다.

 

 

 


 * * *

 

 

 


이런 시대에 이르게 되니 직업과 정체성이 모호한 사람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바로 신문기자다.
세상의 많은 일들을 충분한 지식과 바른 시각으로
다른 사람에게 전달해야 하는 의무를 가진 기자들이지만
'온 국민 전문가 시대'에 들어서면서 그 정체성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는 느낌이다.
신문을 통해서야 세상의 소식을 접하던 시대에서
소식의 전달 매체가 인터넷으로 급속히 이동하고 또 개인 통신망을 통해
그 파급속도가 놀라울 정도로 빨라지니 신문 또한 역할 자체가 모호해졌다.

 

 

요즘은 신문이 많이 팔리지 않는다.
그 이유는 얼핏 생각하면 사람들이 굳이 신문을 통해서
뉴스를 얻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지만,
사실 조금 더 깊숙이 원인을 파고 들면 기자들의 깊지 않은 지식에 대한 반감이고
더 깊숙이 들어가면 그런 깊지 않은 지식을 마치 진리인양
목에 힘주고 강변하고 있는 모습이 보기 싫기 때문이다.
최근에 우연찮게 신문을 읽다보면 - 신문을 일게 되는 경우는 주로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 기다리거나 지하철 선반에 있는 신문을 볼 경우다 -
기사를 읽고 나서 뭔가 말할 수 없는 하무함에 빠지게 된다. 왜 일까?

 

 


그것은 기사 말미를 장식하는 독자들의 댓글,

이른바 '리플'이 안보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문화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기자의 판단보다는
그 기사를 읽은 독자들의 판단을 더욱 흥미롭게 바라본다.
기사를 읽은 사람의 반응이 실시간으로 나타난다는 점도 새롭고
또 같은 느낌을 받은 사람들의 반응이 반갑기도 한 것이다.
그러나 더욱 결정적인 것은 기자보다 훨씬 훌륭한 전문적 지식을 가진
아마추어 독자의 반론에 흥미를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시대에 이르니 이제 교사 뿐만 아니라 기자들도 기자노릇하기 힘들어졌다.
앞으로도 점점 더 심해질 것이다.
이러한 시대에 기자들은 어떻게 기사를 작성해야 할 것인가?

 

 

 


* * *

 

 

 


아침에 인터넷 뉴스를 보다 흥미로운 기사를 발견했다.
한 한국인 메이저리그 야구선수가 기자의 그릇된 기자정신에 실망했는지
한국기자와는 인터뷰를 하지 않겠다는 내용이 기사로 나왔다.
근데 그 기사 내용이 '한국 기자하고 인터뷰 안하겠다고 하니
앞으로 어떻게 하나 두고보자'다. 참 가관이다.

이제 전문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는 없다.
전문가를 능가하는 훌륭한 능력을 가진 아마추어들이 곳곳에 줄서 있다.
단지 그것이 직업이냐 아니냐로 전문가와 아마추어를 구분하는 시대니
이점은 신문에 기사를 쓰는 기자들은 반드시 인식하고

기사를 작성해야 할 것이다.
한마디로 '우둔한 시민'들을 교화시키려던 오랜 시절 관습을 빨리 버리고
좀더 자세를 낮추며 조심스러운 보도를 해야 할 것이다.

 

 

기자가 자기 분야의 전문가일 수는 없다.
전문가가 아니어도 된다.
다만 전문가가 아님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이
더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기사를 보는 많은 독자중에는 기자보다 훨씬 뛰어난 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너무도 많은 세상이다.
이제 겸손해지지 않으면 어느 분야에서건
인정받지 못하고 성공할 수 없는 시대가 온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어느 분야든 마찬가지다.

 

 

 

 

 

 

 

 

 

아하누가

신문기자라는 직업...... 정말 웃기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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