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모 은행에서 주최한 독일월드컵 이벤트에 당선되었다.
사진이 포함된 해외 여행기 공모전이었는데,
최종 명단 20명에 이름이 들어있었다.
그러나 이 20명이 모두 독일 월드컵에 가는 것은 아니었고
이들이 모두 해당 사이트의 지역별 카페의 관리자가 되어
이후 카페 활동을 통해
5명의 최종 인원을 확정하여 독일에 가게 되는 방식이었다.
나머지 15명에게는 아쉽지만 MP3 플레이어를 부상으로 주어진다.
카페 운영은 많은 사람이 찾아오는 것도 중요하지만
게시물의 성실도와 참신성이 중요한 포인트였다.
내가 맡은 지역은 필리핀이었는데 내심 자신이 있었다.
사진 자료 충분하고 이미 써둔 글 - 홈페이지엔 올리지 않았고
출판을 위해 준비한 - 도 많았으니
자료 업데이트하는 덴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었다.
따라서 당연히 독일에 가는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생긴 것은
내게 카페 관리할 시간적 여유가 충분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한참 카페 관리를 하다 갑작스러운 일로 인해 베트남에서 8일을 보냈고,
이어 미국 식구들이 줄지어 방문하여 집에서 컴퓨터 사용도 힘들었고
그 틈에 금강산 3일을 보냈으니 독일 월드컵은 물건너 간 셈이 되었다.
한 15일쯤 카페에 가지도 못하게 되어
아예 접속을 포기하고 지낸지 또 며칠이 지난 어제
사무실에 MP3 플레이어가 도착했다.
독일 월드컵 공짜 구경은 이제 물건너갔다는 정확한 징표가 도착한 셈이다.
포장을 뜯어보니 얇고 세련된 디자인에 눈이 쏙 빠질 만큼 그 모양새가 깔끔하다.
Apple Computer에서 나온 IPod라는 MP3 플레이어인데,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질 만큼 세련되었다.
단지 기계만 그런 것이 아니라 이어폰이며 목에 거는 줄, 포장된 박스마저도
깔끔하게 정리되어 보기만 해도 멋진 음악이 나올 것만 같은 디자인이다.
독일 월드컵 티켓이 날아갔다는
좋지 않은 사실을 알려주는 징표였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게 더 좋은 상품처럼 착각이 들 정도였으니
시각의 착각은 판단의 혼돈을 불러온다는 사실은 확실한 듯하다.
이미 겉모습에 반했으니
이를 통해서 듣는 음악도 상당히 음질이 좋게 느껴졌음은 말할 것도 없다.
디자인은 처음부터 상업적인 의도를 안고 태어난 현대산업이다.
同價紅裳이라 하여 우리의 옛말에도 비슷한 의미가 이어오고 있으니
이왕이면 보기 좋은 것이 더 좋은 것이라는 사고는
어쩌면 옛날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인 모양이다.
특히 현대사회에 들어서면서 산업구조가 다양화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니
이왕이면 보기 좋은 물건을 만들어야 잘 팔릴 수 있게 되었음은 당연하다.
디자인이 세련된 상품이면 잘 팔려서 좋고
사는 사람도 기분 좋게 가지고 다닐 수 있어서 좋다.
그러니 디자인은 멋지고 세련된 것일수록 좋은 것이다.
그러나 이것이 모든 경우에 똑같이 적용될까? 그것은 아니다.
앞서 제시한 디자인이란 개념의 적용사례는
단지 경제적인 이익과 관련이 있는 상품에만 국한된 얘기일 뿐이다.
* * *
요즘 거리를 거닐다 보면 무언가 달라진 디자인이 하나 있다.
경찰차와 경찰 복장이 그것이다.
종전의 하늘색 자동차는 산뜻한 하얀 바탕에
청색과 노랑색의 라인으로 임팩트를 주어 깔끔하고 세련되어졌다.
경찰 복장 역시 마찬가지로 청색 상의에서 하얀색(빛의 각도에 따라
약간 미색으로도 보이는)의 세련된 복장으로 바뀌었다.
디자인이 가지는 목적중 하나가
사용하는 사람들에게 자부심을 가지게 한다는 점이다.
스스로 느끼는 촌스러움 때문에 없어졌던 자신감이
세련된 디자인 하나도 되찾을 수 있다면
그 디자인은 대단한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세련됨으로 자신감을 찾는 것은
디자인이 가지는 목적중 가장 중요한 것은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디자인의 목적은 의도에 충실한 것이다.
경찰차와 경찰복장이 바뀜으로서 당사자들은 자부심이 생겼을 지 모르나
자부심보다 더 중요한 것은 치안이라는 경찰 본래의 목적이다.
새롭게 바뀐 디자인으로 인해 경찰차와 경찰은 거리에서 눈에 띄지 않는다.
촌스러우나 독특한 색상으로 인해 쉽게 식별이 가능했던 경찰은 없어지고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차량과 동일한 색상의 경찰차와
고등학교 교복인지 쉽게 분간이 가지 않는 복장의 경찰만 남았다.
경찰은 치안을 위해 현장범을 체포하는 것보다
눈에 쉽게 띔으로서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 한다.
미국의 경찰은 근무시간 외에는 경찰차를 이용하여
사적인 시간을 가질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다 묵인하고 있다.
경찰관이 쉬는 날 가족을 데리고 경찰차를 이용하여
맥도널드 햄버거에 가는 것도 사실상 인정해준다.
맥도널드 주차장에 개인 자가용이 주차되어 있는 것보다
경찰차가 주차되어 있는 것이 범죄예방에 훨씬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그런 면에서 새롭게 바뀐 경찰차와 경찰 복장은 세련미만 추구했지
기본 목적을 수행하는 데에는 충실하지 못한 듯 싶다.
세련된 디자인으로 그나마 자부심을 찾았다면 그것 또한 문제가 있다.
경찰의 자부심은 세련된 디자인으로 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세워야 하는 것일 테니 말이다.
디자인의 진정한 의미는 가장 중요한 목적의 달성에 충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유머칼럼'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궐선거 (0) | 2024.02.21 |
---|---|
2006 독일월드컵 개막! 축제를 즐길 시간 (0) | 2024.02.21 |
영어 조기교육 (0) | 2024.02.21 |
현재 예상할 수 있는 미래의 모습 한가지 (0) | 2024.02.21 |
전문가 시대 (0) | 2024.02.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