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빨리 얘 좀 봐요!”
집에 들어오니 아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온갖 호들갑을 떨며
큰 아들 후연이를 쳐다보라고 손짓한다.
옷 갈아입고 세수하지 않은 것은 물론 아직 신발도 벗지 않았지만
아내가 저렇게 호들갑을 떨 때 박자를 맞추지 않으면 몹시도 피곤한 하루가 된다.
“뭔데 그래?”
늘 그랬듯이 속으로는 절대로 대단한 일은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겉으로는 매우 관심있는 표정을 의도적으로 만들어가며 아내에게 물었다.
아내 말에 따르면 가루로 된 비타민 C를 먹고 있는데
아들 후연이가 자기도 달라며 보채더란다.
그래서 몇 방울, 아니 몇 가루 남은 것을 입에 톡 털어주니 그 신맛 때문에
후연이가 오만가지 찌그러진 인상을 다 짓더라는 것이다.
그 표정이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아내는 아직도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표정으로
내게 계속 보라고 하고 있는중이었다.
이 얘기를 듣고 오래전의 일들이 생각났다.
아기에게 신맛 단맛 보여주는 것은 바로 나의 전매특허 아니었던가?
큰 아들 후연이가 아주 어렸을 때 자두 갈아먹이고 손목에 피를 안 통하게 한 다음
전기를 먹이던게 바로 나 아니었던가? 그러나 그 엽기적 행동이
책을 통해 일일이 까발려지면서부터 감시의 눈길이 한층 강화되어
특기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잠깐 잊고 있었던 그 화려한 재미를 아내가 다시 일깨워 주다니
한편으로는 오도방정을 떨 만큼 반가왔지만
또 한편으론 많이 변한 아내의 모습에 적잖이 놀라고 있었다.
후연이는 그 신맛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지 아프리카 원시인과 흡사한 표정을 한 채
계속 침만 흘리고 있다.
“여보, 얘 표정도 좀 볼래요?”
아내는 신이 났는지 시키지도 않은 2차 공연을 위해 둘째 아들 의연이를 번쩍 들고 나왔다.
의연이 나이가 이제 5개월. 저 나이면 내가 후연이에게 고추장 먹여서
2시간 동안 울린 바로 그 나이다.
아내는 내가 보는 앞에서 의연이의 볼을 손가락으로 가볍게 툭 쳤다.
그러자 의연이는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까르르 웃고 있었다.
내 자식이어서 그렇겠지만 아기가 웃는 모습은 참 귀엽다. 아마도 어떻게 하면
아기가 웃는지 많은 연구를 통해 알아낸 것을 내게 보여주려는 모양이었다.
“어라? 이게 아닌데?”
하지만 나의 아름다운 생각과는 달리 아내는 뭐가 잘못 돌아간다는 표정을 짓더니
이번에는 손바닥으로 의연의 뺨을 제법 세게 쳤다.
하지만 여전히 의연이는 까르르 웃으며 엄마의 재롱을 즐기며 이름 그대로
의연한 자세로 웃고 있었다.
궁금한 내가 물었다.
“뭘 할려구 그래?”
알고 보니 아내는 의연이가 울기 직전의 표정이 너무 귀엽다며
아기를 울리려고 시도하는 중이었다.
그러한 자신의 의도가 전혀 적용되지 않음을 느낀 아내는 급기야 양손으로
의연이의 뺨을 퍼버벅! 쳤다.
고개가 좌우로 한바퀴씩 돌아갈 정도의, 5개월된 아기가 느끼기에는 몹시 강력한 파워였다.
드디어 아기가 울기 시작했는데 귀엽기는커녕 우는 아기의 모습이 측은하기만 했다.
“봤죠? 봤죠? 재밌죠?”
재밌을 리가 있나.
사람이 변해도 유분수지, 그렇다고 아무 잘못도 없는 어린애에게 무지막지한 폭력을
휘두르다니 이는 실로 있을 수 없는 파렴치한 행동이 아닐 수 없다고 느끼고 있었다.
후연이가 어렸을 때 내가 자두나 레몬을 먹인 건 넓게 생각해서
인생의 쓴맛과 신맛을 알려주고, 맛을 구분할 줄 아는 신경발달 능력을 키워주려는
학습적 의도였지만 아내의 방법은 어린 아기에게 맷집을 키워주려는 것에 불과하기 때문에
조직폭력계로 발을 들여 놓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면
이 방법은 몹시도 비교육적이라는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둘째 아들을 낳고는 아내는 많이 변했다.
첫 애를 낳았을 때처럼 지나치게 애지중지 하지도 않고
그저 아기는 아기답게 자라도록 생각하고 있다.
한편으로는 변했다기 보다는 원래 엄마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들만 둘이어서 그런지 집안 분위기가 아기자기함은 별로 없고
가끔씩 돌발되는 폭력과 터프, 그리고 과격함이 집안 분위기를 맴돌곤 했다.
그나마 한명뿐인 여자가 여자 역할을 잘 해야 하는데
가끔씩 남자 뺨을 치고도 남을 일만 벌이고 있으니 그도 그럴만한 일이다.
* * *
그 일이 있고 나서 나도 예전의 추억들이 아름다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새롭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또한 아기를 괴롭히는 전공 분야에 대한 학구적 열망이 불쑥 솟아 오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오랜 연구 끝에 상대적으로 더 재미있을 것 같은 큰아들 후연이를
빙글빙글 돌려 어지럽히는 놀이를 찾아 냈다.
시간만 나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상황에서든 빙글빙글 돌렸다.
특히 사무실에서 쓰는 회전의자는 그 효과가 출중하여 10여 바퀴 돌리고 일으켜 세우면
후연이는 삼룡이가 되어 비실비실 바닥을 헤매다 아무데나 쓰러져
자신의 눈에는 아직도 빙글빙글 돌아가는 천정을 바라보며 깔깔대며 웃곤 했다.
그 모습이 얼마나 재밌었는지 시간만 나면 빙글빙글 돌리고 또 돌리고 이리저리 돌리고
또 돌렸다. 한번은 속도를 최상급으로 올려
후연이의 평형감각 및 균형감각을 최대한 마비시켜 오바이트 직전까지 어지럽히겠다는
사악한 생각으로 후연이를 안은 채 그 자리에서 20바퀴쯤 돌았는데
어지러워야 할 후연이는 멀쩡히 서 있고 빙글빙글 돌아버린 내가 그만 빙글빙글 돌아버려
천정이며 집안 벽이 이리저리 날라다니는 처절한 참상을 겪은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이후로 나의 기술은 더욱 완숙해져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돌릴
능력마저 갖추게 되었다. 다만 후연이 녀석이 싫다는 기색이 없는게 조금 재미없긴 했다.
* * *
“여보, 요 앞에 마트 좀 같이 가요!”
일요일 저녁. 아내가 시장에 가잔다.
뭐 일요일이면 늘 하는 일이니 그러려니 하고 네 식구 모두 집을 나섰는데
후연이 녀석이 자신도 유모차에 같이 타겠다며 투정을 부린다.
하도 투정이 심하길래 겨우 자리를 만들어 유모차 앞에 걸터 앉히고 마트로 갔다.
유모차에서 내린 후연이는 땅에 발을 딛기 무섭게 갑자기 푹 쓰러졌고
얘가 왜 이러나 생각하고 있는 내게 아내는 친절하게도
다리가 저려서 저러는 거라고 말해주었다.
저렇게 불편하게 앉아 있으니 다리가 저릴만 했다.
유모차 앞턱에 다리를 걸쳐 놓았으니 저려도 한참이나 저릴 것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던 어느 순간 갑자기 머리속을 무언가 강하게 때리고 지나갔다.
그렇다. 왜 이 방법을 이제야 알았을까?
유모차에 두 녀석을 모두 태우려면 그 자세밖에 없으므로
당연히 후연이는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비실비실 삼룡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은 회전의자에 후연이를 앉혀놓고 빙글빙글 돌리는 것보다 더 흥미로운 일이다.
뿐만 아니라 어차피 두녀석을 함께 데리고 나가야 이 상황이 연출되므로
집에서는 자상한 아빠의 인식을 심어줄 수도 있는 일석이조의 효과까지 얻을 수 있다.
이 상황을 보며 새로운 방법을 알게 된 사실이 환장할 듯 기뻤지만
그것은 차후에 아내의 감시를 피해서 혼자 즐겨야 하는 것이니 만큼
애써 아무 것도 아닌 척 위장하며 훗날의 더 큰 즐거움을 그리고 있었다.
아마 아내가 변화된 모습을 몇번 보여주긴 했지만 만약에 내가
이것을 취미나 오락 차원에서 즐긴다는 사실을 알면 당장 아내는 내 다리를 꽁꽁 묶어
피를 안 통하게 할 것이다. 이왕 묶은 다리 번지 점프를 시켜준다며
옥상에서 던져버릴 지도 모른다.
그러니 이런 일들은 당연히 아내가 없을 때 벌여야 하는 일일 수 밖에 없다.
그러저런 생각에 쏟아지는 웃음 억지로 참으며 다리가 저려
쩔쩔매고 있는 후연이를 쳐다보고 있는데 갑자기 아내가 알듯모를 소리를 한다.
“후연아! 그럴 땐 어떻게 하라고 했지?”
“......?”
하지만 나의 생각과는 달리 아내는 이미 그 계통의 전문가가 되어 있었다.
아내 뿐만 아니라 아들 후연이 녀석도 그 상황을 놀이 아닌 놀이로 즐기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세상엔 무서운 놈들 또한 많다는 생각도 더불어 들었다.
아내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녀석은 익숙한 자세로
손바닥에 침을 잔뜩 묻히고는 코에 부지런히 바르고 있었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