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지금이 몇신데 아직도 안 자요?”
잠결에 눈을 뜬 아내가 늦은 밤까지 컴퓨터 앞에 앉아 있는
나를 보고 늘 그렇듯 잔소리를 한다.
이제 겨우 새벽 3시가 조금 넘은 시간인데 뭐 그리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얘기를 하고 있었다.
밤에 잠을 안자는 사람도 나요
밤에 잠을 안자서 그 다음날 피곤한 사람 또한 나일텐데
왜 아내가 이래라 저래라 하는 지 늘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런 정도의 지시나 명령에 가까운 잔소리라면
어머니나 아버지께 들어야 하는 잔소리가 아닌가.
그런데도 아내는 늘 무언가 자신의 맘에 들지 않으면
스스로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고 계속 잔소리를 하곤 했다.
내가 잠을 안자면 왜 아내가 답답한지 궁금하던 바로 그 순간에
아내는 잠꼬대 같은 말투로 남은 잔소리를 중얼거린다.
“잠을 잘 자야 키가 쑥쑥 크지....음냐음냐...”
뒤에 나오는 ‘음냐음냐’는 분명 잠꼬대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의성어일 테니 잠꼬대까지 잔소리를 한다는 사실이 입증되었으며,
앞 부분에 얘기한 ‘잠을 잘 자야 키가 쑥쑥 큰다’는 말은
의학적 근거가 없는 매우 무책임한 말이므로
아내의 잔소리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 또한 확인한 셈이다.
내 나이가 20대 보다 오히려 40대에 가까운 30대인데 그 나이에도 키가 크나?
그렇다면 잠 잘 자는 친구 용모는 지금 서장훈이 되어 있어야 정상인데
아직도 18살 때 키 그대로니 이야 말로 말도 안 되는 얘기임이 분명했다.
아내의 잔소리는 늘 그런식이다.
잔소리를 들어야 하는 입장의 누군가를 위해서라기 보다는
그저 옆에서 보기에 답답한 경우에 잔소리를 한다.
예를 들어 밥을 조금 먹으면 밥을 왜 조금 먹느냐,
밤 늦게 TV보면 왜 늦도록 TV를 보느냐 등등
자신의 독특한 취향과 정치적 노선이 조금만 다르다 싶으면
예의 잔소리를 시작하곤 했다.
야당 대변인을 했으면 몹시도 탁월한 능력을 발휘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마도 요즘 같은 정세에 아내가 국회의원이 되면
할 일이 무척이나 많았을 것이다.
날치기 통과 육탄 저지, 이거야 말로 아내의 전매특허 아닌가?
하지만 이런 말 잘못 꺼냈다간 그 틈을 이용해
아내가 이번에는 정계로 진출하겠다고 나설까봐 일부러 권하진 않았다.
잔소리라는 모든 것이 다 그렇지만 아내의 잔소리 또한
사람을 피곤하게 한다. 잔소리를 한다고
고쳐지거나 바뀌어지는 것도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아내는 늘 그렇게 잔소리를 했다.
아마 그것으로 인해 앞으로도 끊임없는 대립과 갈등이 반복될 것만 같다.
* * *
“아니, 왜 컵 놔두고 바가지로 양치질을 해욧!”
다음날 아침.
부지런히 이를 닦고 있는데 조금 벌어진 욕실 문틈으로
그 모습을 들여다 본 아내가 또 잔소리를 시작했다.
변태스럽게 남이 들어가 있는 욕실을 훔쳐 본 사실도 당장 따져야 하는 일이었지만
그 보다 아내의 잔소리에 대한 대응이 더 급했다.
“허허, 양치질은 바가지가 제격이지!”
늘 그랬듯이 나 또한 나름대로의 논리를 앞세워 반격에 나섰다.
이번에 사용된 논리는 평소에 주로 써먹는 것으로,
세상의 모든 사물은 그것이 어울리는 가장 적절한 상황에
사용되어야 한다는 것이 논리의 주내용이다.
즉 화장실은 적당히 지저분해야 하고, 유원지는 적당히 북적대야 하며,
동남아 관광은 퇴폐관광이 제격이라는 것이다.
이 논리를 조금 더 비약시키면 김밥은 소풍가서 먹는게
제격이고 삶은 계란은 기차안에서,
우동은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먹는 것이 가장 적절하게 어울리는 장소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양치질을 함에 있어도 마찬가지로
기다란 손잡이가 달린 물바가지에 물을 잔뜩 담아 양치질을 해야 가장 잘 어울리지
고급 파카글라스 유리컵이나 개성있는 머그잔은 전혀
어울리지 않다는 것이 나의 오랜 사고요 또한 주장이기도 했다.
물론 이때 바가지 색깔이 하늘 빛이 나는 파란색이면 더 제격이다.
이런 생각을 가진 내게 아내는 자신이 내 이빨을 닦아줄 것도 아니면서
양치질을 바가지로 한다고 바가지를 긁어대니
바가지로 양치질을 하던 내가 바가지로 내 머리통이라도
한 대 때려야 할 만큼 견디기 힘든 잔소리 아닌가?
아무리 생각해도 적재적소에 관한 논리와 이론,
그리고 국민적 관습과 정서에 견주어도 바가지를 선택한
나의 결정은 몹시도 탁월한 것이다.
또한 누가 뭐라해도 나의 이 이론과 선택은 몹시도 적절한 것이다.
하지만 그 탁월한 선택과 오묘한 이론에 근거한 행동도
반드시 옳은 것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잠에서 막 깨어난 아들 후연이가 욕실로 황급히 뛰어 들어와
잠시 두리번 거리다 내 손에 있던 바가지를 빼앗듯 낚아 채
자신의 사타구니에 바짝 붙이고 오줌을 싸기 시작했다.
녀석은 가증스럽게도 기다란 손잡이를 잡은 채 물을 담는
커다란 공간을 이용하여 오줌을 싸고 있었다.
녀석은 오줌을 싸면서도 ‘오줌싸는 놈 처음 보나?’는
의문 가득한 얼굴과 생리적 욕구해결의 시원한 표정을 동시에 지으며
마지막 한방울을 털어낼 때까지 내 얼굴울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녀석도 오줌은 바가지에 싸야 제맛이라는 논리를
가지고 있었던지 매우 당당한 자세로 볼일을 보고 있었다.
갑자기 개운해야 함이 정상인 양치질을 끝냈음에도
여러가지로 개운하지 않았다.
양치질을 하고 나서도 개운하지 않을 때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깨달으면서
정해진 이론만이 반드시 좋은 것이 아니라는 새로운 논리를
정립시켜야겠다는 잠깐의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가끔, 아주 가끔 아내의 잔소리도 필요하다.
아니, 앞으로는 아내의 잔소리를 좀더 신중히 귀담아 들어야겠다.
적어도 아기 오줌이 정력에 좋다는 최신 의학적 이론이 발표되기 전까지라도.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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