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컴맹

아하누가 2024. 7. 6. 01:47


 

“그러니까 한번 누르면 켜지고 또 한번 누르면 꺼진다 이거죠?”
“그래, 아주 쉬워”

 

 

큰 아들 후연이가 다니는 놀이방에서 재롱 잔치가 있던 날,
혼자 참석하게 된 아내는 캠코더 작동법을 몇 번이고 되물었다.
캠코더 작동에 필요한 모든 작업들을 마치고 아주 간단한 최후의 조작법만
아내에게 설명하고 있던중이었다.
의외로 단순한 조작방법이 오히려 의심쩍은지 아내는 몇번이고 그 방법을 되물었다.
하긴 비디오 카메라의 작동 방법이 어찌 녹화 버튼을 반복해서 누르는 것 뿐이겠냐만
그밖의 방법들은 오히려 알면 알수록 피곤해지는 것이라 생각해서
간단한 방법만 알려주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째 아내의 표정이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다.

 

 

그날 저녁.
집에 들어와서 녹화해 둔 비디오를 보려고 카메라를 작동시키니
어째 녹화된 화면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것은 마치 인터넷에서 돌아다니는, 길거리 여자들 치맛속을 찍으려고 노력한 화면과도
비슷했으며 때로는 TV의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자주 보는,
정지된 화면에 말소리만 나오는 장면과도 흡사했다.
가만히 화면을 보면서 실제 상황을 예상해보니 아내는 한번 누르면 녹화가 되고
또 한번 누르면 녹화가 중지된다는 간단한 설명에 대한 순서를
어느 순간부터 엇갈리기 시작하여 찍어야 하는 순간은 캠코더를 꺼둔 채로
열심히 캠코더를 들고 아들 후연이의 모습을 쫓았으며,
꺼두어야 하는 순간은 녹화 버튼을 눌러 캠코더를 작동시킨 후 무릎 위에
다소곳이 올려두어 그런 화면이 보이게 된 것이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어서 몇마디 핀잔을 주니 작동법이 너무 간단해서 그랬다며
오히려 더 큰소리를 쳤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게 어찌 내가 작동법을 쉽게 가르켜준 탓일까?

 

이럴 땐 몹시 답답하다. 말을 하고 싶어도 입에서 말이 나오지 않는다.
그 증상은 된장찌개를 먹을 때 뜨거운 두부를 씹지 않고 그냥 삼킨 경우와 비슷해서
가슴이 꽉 막히는 동시에 말을 안 나오고 손짓 먼저 하게 되는,
다시는 경험하기 싫은 아주 무서운 경우다.
그 경우는 차라리 맛이나 있지 이 경우를 맛으로 비교하자면 아스피린을 삼키다가
목구멍 어딘가에 걸려 침 삼킬 때마다 씁쓸한 맛이 느껴지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렇듯 아내는 기계나 전자제품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다리미나 세탁기를 작동하는 것에 감동을 받아야 할 정도로.
그런 아내를 보면서 앞으로 컴퓨터를 모르면 세상 살기도 힘들어질텐데
고생 꽤나 하겠다는 걱정이 문득 들기도 했다.

 

 

             *          *          *

 

 

“어떻게? 음.... 내가 한메일은 잘 안 써서 모르니 이따 집에 들어가면 확인해보자구”

 

 

며칠 뒤 아내로부터 충격적인 전화가 왔다.
자신의 이메일 주소로 동료 직원이 메일을 보냈는데 내용을 확인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는 아내로는 매우 획기적인 사건이다. 인터넷의 ‘E’자도 모르는 아내가
이메일 주소를 만들고 이메일을 받았다니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내가 이렇게 놀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언젠가 급히 나갈 일이 있어 컴퓨터를 켜둔 채 나간 적이 있었는데
그때 전화로 아내에게 컴퓨터를 꺼달라고 부탁하고 방법을 설명해주었다.
아내는 내 설명대로 컴퓨터를 끄느라고 노력했지만 결국 끄지 못했고
나중에 집에 돌아와서 그 상황을 보니 참 가관이었다.
윈도우를 종료하면 화면에 이제 컴퓨터를 꺼도 된다는 메시지가 나타난다.
전원을 꺼도 된다는 메시지에 아내는 컴퓨터 본체에 있는 전원을 눌렀고 따라서 잠시후
또 다시 컴퓨터가 커지고, 부팅 후 다시 종료를 누르면 꺼도 된다는 메시지가 나타나고
이어 아내가 컴퓨터 전원을 누르면 또 다시 컴퓨터가 커지고.....
꺼지고 켜지는 일이 수차례 반복되어 아내는 가지고 있는 인내력이
이미 한계에 다달아 결국 컴퓨터 끄는 일을 포기하고 말았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은 컴퓨터라는 것은 집에 재산으로 분류된 항목이어서
아내가 컴퓨터를 집어 들어 창밖으로 던지는 끔찍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러한 엄청난 사건을 만들어 낸 아내의 컴퓨터 실력으로 미루어
아내가 이메일 주소를 만들고 이메일을 받았다는 사실이
커다란 놀라움으로밖에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하긴 요즘 세상이 어느 세상인데 그걸 모르겠는가.

컴퓨터, 특히 인터넷의 기술은 하루가 무섭게 발달하여 이제는 무언가를 따로 배우지 않고
간단한 설명만 보아도 모든 프로그램을 작동하지 않는가?
더욱이 곳곳에 컴퓨터와 전용선이 널려 있고 또한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의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요즘이니 알고 싶지 않아도 저절로 알게 되는 것이
또한 인터넷이다.
그러니 아내 역시 자연스레 인터넷을 알게 되는 것도 당연한 일인 셈이다.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아내가 신이 난 얼굴로 내가 말을 건네기도 전에 말을 시작한다.

 

“나 그거 알았어요. 그게요.....”
“응? 뭐가?”
“아, 한메일 보는 거 말이에요”
“참, 그래... 그거 어떻게 하는 거였어?”

 

아내는 새로운 발견의 기쁨이 몹시도 컸던지 마치 모르는 사람에게
자신의 해박한 지식을 설명하는 사람처럼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갔다.

 

“그게 이름을 누르는 게 아니라 메일 제목을 누르는 거더라구요. 이제 알았죠?”
“........”

 

 

 

          *          *          *

 

 

 

누구나 컴맹이 아니었던 사람은 없다. 다만 그 과정을 다들 잊고 있을 뿐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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