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태몽

아하누가 2024. 7. 6. 02:02



“무슨 태몽이 그래?”

 

 

큰 아들 후연이를 낳던 얘기가 나오면 아내는 언제나 태몽 이야기를 했다.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서 태몽에 관한 얘기가 화제가 될 때도 

아내는 언제나 같은 태몽 이야기를 했다. 

그때마다 나는 별로 신통치 않은 태몽 얘기가 이상했던지 늘 같은 대꾸를 하곤 했다. 

아내가 말하는 태몽은 대충 이런 내용이다.

 

꿈 속에서 아내가 어떤 숲길을 걷다가 밤나무 밑에 떨어진 밤을 주워 

손바닥에 감싸듯 꼭 쥐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나타나 그 밤을 달라고 했는데 

아내는 손에 꼭 쥔 채 절대로 주지 않았다고 했다. 

밤을 달라는 사람을 반쯤 죽을 정도로 팬 것 같은데 자라나는 아기에게 

나쁜 영향을 줄 지 몰라 그런 내용은 말하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이것이 간단히 정리한 태몽의 줄거리인데 내가 생각하기엔 별로 신통치 않다. 

알고 있는 태몽이 이미 성공한 사람들의 얘기뿐이어서 그런지 

아내의 태몽에 등장하는 밤이나 낯선 사람이 상서롭지 못할 뿐 아니라 

흔히 태몽에 항상 등장한다는 용이나 봉황, 최소한 호랑이 정도는 나와야 

태어난 아기가 큰 인물이 될 거라는 생각이어서 밤 얘기는 어째 신통치 않다는 생각이 

늘 앞서 있었다. 

하지만 아내는 처음 겪는 일이어서 그랬는지 그 태몽을 몹시 신성하게 여기고 있었으며 

또한 스스로도 매우 흥미롭게 생각하고 있었다. 

특히 태몽 얘기 중 가장 중요한 비중을 차지했던 것은 그 태몽을 통해서 세상에 나올 

아기가 사내 아이라는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으로 

아내는 태몽 이야기를 할 때마다 항상 그 얘기를 잊지 않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태몽에 대해 조금 안다고 하는 사람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어 

이런저런 얘기 끝에 아내의 태몽 이야기를 꺼냈다. 

비교적 태몽에 대해 많이 알고 있던 그 사람은 내 얘기를 듣더니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말을 이었다.

 

“원래 과일이나 꽃을 따는 꿈이 태몽인 건 맞는데 주로 그런 꿈은 딸이 나오는 태몽인데? 

  사내 아이들은 주로 동물이 나오지 않나?”

 

이미 아들이 나왔다는 소리에 그 전문가 아닌 전문가는 말꼬리에 약간 힘을 뺀 채 

조심스레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말해주기 시작했다. 

얼핏 맞는 말인 것도 같아 곰곰히 생각하니 태몽의 등장인물 및 주요 줄거리상 

아내가 태몽만으로 아들이 확실하다고 강력히 주장할 만한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밤꽃이 등장했다면 약간의 남성의 상징적인 의미를 억지로 붙여보겠는데 

아내의 꿈 얘기에 밤꽃은 전혀 등장하지 않을 뿐 아니라 밤꽃이 등장한다 해도 

그것은 꽃의 범주에 해당하기 때문에 다양한 해석으로 인한 혼란만 생길 상황이었다. 

그러한 사실은 순간의 궁금증으로 마음속 어딘가에 자리 잡았지만 

이미 세상에 나온 아이에 대한 예의가 아니었는지 어렵지 않게 잊혀지고 있었다. 

그래서 아내에게 언젠가 꼭 물어보겠다던 그 궁금증은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차츰 잊어가고 있었다. 

 

 

             *          *          *

 

 

제법 많은 시간이 흐른 어느 날, 친구 집들이 모임에서 태몽 이야기가 화제가 되었다. 

아내는 늘 그렇듯 예의 그 태몽 이야기를 했고 다른 사람도 각자의 태몽 이야기 또는 

태몽에 관한 이야기로 대화는 무르익고 있었다. 

불현듯 오래전 의문이 머리에 떠올랐고 

그 오래전 의문을 이제 물어볼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벅찬 설레임으로 다가왔다. 

사람이란 오래전 일을 기억하고 그 순간이 다가오면 그 내용과 상관없이 설레기 마련이다. 

 

“근데, 내가 어떤 전문가에게 들었는데 과일을 따던가 손에 쥐면 

 태몽은 태몽인데 딸이 나오는 꿈이라던데?”

 

아마추어 전문가를 일부러 전문가인양 앞세워 비교적 근거있는 내용이라는 암시를 줬고 

또한 아이의 태몽에 대해 전문가의 의견도 구할 줄 아는 

매우 가정적인 가장의 모습이라는 사실도 넌지시 포함되어 있는 아주 영악한 질문이었다. 

오래전 궁금증을 기억해낸 그 설레이는 순간에도 그런 잔머리를 굴릴 수 있는 

자신의 능력에 몹시 감동하고 있었다. 

그러한 오랜 의문을 들은 아내는 놀랄만도 했는데 전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 보았다. 

그리고 그 무표정한 얼굴은 점차 야릇하고도 의미심장한 웃음으로 변했으며 

주변의 사람들 또한 그 의미있는 듯한 표정의 변화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리고 아내는 아주 당당한 목소리로 자신의 태몽이 아들을 뜻할 수밖에 없음을 

자신있게 말해 주었다. 

 

 

“손에 쥔 밤이 두 알이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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