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얘기

개성에 대한 작은 감상

아하누가 2024. 7. 5. 01:11


 


1

대학교에 막 들어간 나이, 그러니까 혈기가 왕성하고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으며
또한 부딪히는 모든 일들이 새로운 경험으로 남게 되는 바로 그 시절에 친구들 사이에서
불던 유행의 바람은 이른 바 ‘개성’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개성이라 함은 남과 다른 자신만의 좋은 성격을 말하는 것인데
친구들은 이런 기본적 의미는 모두 망각한 채
그저 남들과 무조건 다르면 그것이 개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남들이 대부분 하던가 또는 했었던 웬만한 일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개성을 발휘한다는 것은 점점 더 힘들게 되었습니다.

 

 

바로 그 무렵, 친구들과 서울 근교의 강변으로 놀러가는 계획을 잡게 되었습니다.
놀러갈 때면 으레히 등장하는 내용인 일정이며 장소며 교통편등을 줄줄이 결정하고
각자 담당할 준비물을 결정할 차례가 되었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나서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누가 더 획기적인 준비물을 가져오나 해보자!”

 

처음에는 어디서 개가 짖는 줄 알았습니다.
놀러가는 데 필요한 것을 가져가야지 획기적인 물건이 무슨 필요가 있겠습니까?
따라서 그 제안은 참으로 어이가 없는 제안인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잠시 흐르고 나니 ‘누가 더 획기적인가’에 대한 주제가
강한 호기심으로 다가왔고
그 호기심은 각자 개성을 발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생각되었으며
또한 ‘누가’라는 단어에서 쓸데없는 승부욕이 발생하여 그 자리에 있던 모두는
이 제안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모두들 자신있는 표정을 지으며 흐뭇해하고 있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에 각자 비장의 카드 하나씩을 이미 마음속에 품어두었던 셈이었습니다.

 

 

 

2

최종 목적지인 어느 강변에 도착했습니다.
자리를 잡고 텐트를 치니 어느덧 짐을 정리하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성격 급한 친구가 자신있게 가방을 열며 자랑스러운 듯 무언가를 꺼내었습니다. 

 

“야, 세상에 이런 거 가지고 놀러오는 놈 봤어?”

 

큰 소리를 치며 의기 양양한 모습을 보이던 그 친구가 배낭에서 꺼낸 것은 베개였습니다.
그것도 화려한 장식의 침대에나 어울릴 만한 커다란 쿠션처럼 생긴 베개였습니다.
참으로 어이가 없는 일이었습니다.
어쩐지 그 친구의 평소 행실과는 너무도 다르게
매우 커다란 가방을 서울에서부터 가져온 것이었습니다. 

 

“야 임마! 뭐 그걸 가지고 그래?”

 

친구 한 녀석이 잠시 놀라는 틈에 만들어진 짧은 정적을 깨며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리고 그 녀석은 배낭에서 무언가 주섬주섬 꺼내기 시작했는데 그것은 다름 아닌
조그마한 밥상이었습니다.
아니 밥상이라기 보다는 술상이나 찻상이 더 어울릴만한 작은 상이었습니다.
크기는 작았지만 네모나게 각진 모양을 하고 있어서 가방에 담기에는 몹시도 어려운 것인데
용케도 담아 왔습니다. 그리고는 두 친구가 치열하게 싸웠습니다. 

 

“야! 그 베개는 어디에 쓰냐?” 
“왜? 베고 자려고. 너야말로 그 밥상은 뭐에 쓰냐?” 
“이거? 넌 바닥에서 밥 먹는지 모르지만 난 곱게 자라서 꼭 밥상에 먹어야 해” 
“뭐? 나야말로 곱게 자라서 청바지 둘둘 말아 베고 못 자!”

 

두 친구는 마치 베개파와 밥상파의 보스라도 된 것처럼
각자 가지고 온 물건들의 우수성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베개파는 베개를 잘 베고 자야 하는 의학적 논리를 앞세워 쿠션, 방석 등
기타 비슷한 물건들을 사촌으로 몰아
그 필요의 정당성과 자신의 획기적 발상을 주장했습니다.
이에 맞서 밥상파는 밥을 반드시 밥상에서 먹어야 하는 인체공학적 논리로 무장한 채
신체 여러 부분을 유린하며 자신의 획기적 선택에 대한 우수성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의 논쟁이 본격적인 단계에 오를 즈음
또 다른 친구가 이들의 말을 가로 막으며 나섰습니다. 

 

“겨우 베개하고 밥상 가지고 싸우냐?”

 

새로운 친구의 등장에 모두들 시선이 그에게 몰렸습니다.
그 친구가 자신의 가방에서 꺼낸 것은 앙증맞게 생긴, 갓이 달린 작은 전등이었습니다.
자신도 곱게 자란 탓에 잠잘 때에는 반드시 이 등을 켜야 잠이 온다며
혹시 누구 발전기 가져온 사람 없냐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발전기를 가져 온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가장 획기적인 물건을 가져온 사람으로
인정하겠다는 자신감이 넘치는 말을 하기도 했습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더욱이 친구들이 가져온 물건들을 주욱 나열하고 보니 참으로 어이없고
또한 괴기스럽기까지 했습니다.
개성도 개성이지만 말도 되지 않는 물건들을 야영지에 가져온 놈들이
갑자기 변태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보다 못한 내가 화제를 바꾸려고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야! 쓸데없는 말 말고 쌀이나 씻어! 밥이나 먹자!”

 

그러자 모두들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무언가 생각난듯한 놀라는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보았습니다.

 

 

“쌀?”
“너 가져왔냐?”
“아니, 너는?”
“……”

 

 

결국 우리는 밥을 해먹을 쌀이 없고 덮을 담요가 없어서 텐트 설치 3시간만에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서울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나는 돌아오는 기차안에서 힘들게 가져갔던 조그만 화분을 만지작거리며
애써 쓸쓸함을 달래고 있었습니다.

 

 

 

3

개성이라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것이 엉뚱한 발상이든 아니면 부질없는 상상이든 어찌 되었든 개성이란
몹시 중요한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또한 개성이라는 것은
남에게 일부러 보이는 것이 아니라 남의 눈을 통해 보여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개성이 매우 강조되는 사회인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모두가 같은 모습을 표현하려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저 남과 다르려고 하는 개성이 아니라 개성을 진정한 자신의 소신으로 표현될 때
분명 사고의 차원이 한걸음 발전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스스로 얼마나 개성적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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