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얘기

나의 기타이야기

아하누가 2024. 7. 1. 00:54

 

 

1

기타를 처음으로 친 때가 초등학교 5학년 때였습니다.
그때는 기타를 끌어 안기엔 기타가 너무도 커서

방바닥에 뉘어 놓고 가야금 튕기듯이 기타를 쳐야 했습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누나들이 매번 놀렸는데도 뭐가 좋은지 열심히 쳤습니다.
그러다가 중학교 2학년이 되어서 비로소 기타가 몸에 들어왔습니다.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듬해 박대통령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물론 그 얘기는 지금 하려는 얘기와는 전혀 관련없는 얘깁니다.

 

 

 

2
군대에 있을 때는 기타가 더 치고 싶었습니다.
물론 군대에도 기타는 있습니다만 내가 주로 치던 클래식 기타가 아니었고
또한 아무나 치는 것도 아니어서 매일 구경만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보초 근무 시간을 이용해

힘들게 구한 악보를 한장 가지고 초소에 올라가
나무 판자에 볼펜으로 그린 기타로 연습을 했습니다.
그리고는 모두가 잠든 밤에 기타가 있는 총 보관실 안으로 들어가
조용한 소리로 낮에 연습한 곡을 징징거리는 쇠줄 키타로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눈물 나는 장면이 아닐 수 없었지요.

피아노를 배우는 종이건반은 오래전에 있었어도
종이 기타는 아마 세계에서 최초일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리고 기타를 칠 수도 없는 상황이면서도 뭐가 아쉬운지

손톱은 늘 기르고 다녔습니다.
내무검사하면 꼭 지적을 받았습니다.

팔굽혀펴기(일명 푸샵)를 200번 한 적도 있었습니다.

팔굽혀펴기 200번하면 어떻게 되는 줄 아십니까?
손이 달달달 떨려서 숟가락 잡고 입에 밥을 넣기도 힘듭니다.
그러면서도 마치 이 시대의 ‘장인’인양
길게 자란 손톱을 바라보며 흡족해 하고 있었습니다.

 

 

 

3
첫 휴가를 나오니 그나마 아슬아슬하던 집이 쫄딱 망해버렸습니다.
가전제품까지 모두 빚장이들이 집어갔습니다.
아마 군에 있는 내게는 일부러 연락을 하지 않았던 것 같았습니다.
허망한 눈으로 집안을 둘러보는데 여동생이 다락에서 기타를 꺼내왔습니다.
내가 무척이나 아끼던 기타였습니다.
여동생과 막내는 무언가 큰 일이라도 했다는 것 같은 늠름한 표정들이었습니다.
물론 아무리 빚장이라도 기타를 뭐하러 집어 가겠습니까?
하지만 동생들의 모습은 오래도록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케이스를 열고 5번줄을 튕기는 순간 모든 근심이 다 사라지는 것 같았습니다.
아직도 잊을 수 없는 소리입니다.

 

 

 

4
결혼을 앞둔 때였습니다.
기타 케이스를 열었는데 4번 줄이 끊어져 있었습니다.
한달에 한번 정도 기타줄 전체를 교환하기 때문에

줄이 끊어진 적은 없었습니다.
이상한 불안감이 주위를 맴돌았습니다. 불길한 예감마저 들었습니다.
옆에 있던 막내 동생이 아무 일도 아닐 거라고 애써 태연하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알고 있습니다.
막내는 내가 얼마나 불안해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이 얘기는 내가 아내와 형제를 구분해서 얘기할 때 항상 하는 내용입니다.
아내는 잘 모릅니다.

왜 기타줄이 끊어진 것을 보고 불길한 생각을 해야 하는지
아내는 알 방법이 없습니다.
끊어진 기타줄을 보고 어느 정도 불안한 느낌인지 아내는 모를 겁니다.
다만 형제니까 알 수 있습니다.

 

 

 

5
1884년에 구입한 기타가 아직도 있습니다.

아직도 흠 하나 없이 제 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혼 이후 기타를 치진 않습니다.
달리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고 그저 손에 안 잡히고 있을 뿐입니다.
아들 녀석이 태어나 걸어다니게 되었을 즈음 정서함양을 해준답시고
오랜만에 기타를 쳤던 적이 있었는데
마침 아들 녀석이 뭘 잘못 먹었는지 바로 토해버렸습니다.
불효라는 단어가 갑자기 머리를 스쳤습니다.

그게 가장 최근에 친 기타였던 것 같습니다.

 

 

기타를 가장 열심히 치던 20대 중반, 문득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내가 언제까지 이 기타를 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그리고 평생동안 할 것만 같았던 그 일은 결국 손을 떼었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로도 10년이나 기타를 쳤으니

한편으로는 꽤 오래동안 함께 했었다고도 생각됩니다.

물론 아직도 오른 손가락 손톱은 흉한 모습으로 자라 있습니다.

 


이 이야기는 별로, 아니 전혀 유머러스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기타 얘기 만큼은 오래전부터 하고 싶었던 얘기였지요.
예전에 열심히 기타를 쳤던 것처럼 요즘은 인터넷 유머 사이트에 글을 많이 씁니다.
취미면서 또한 생활처럼 되었지요.

하지만 요즘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언제까지 이런 식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몇년째 인터넷을 지켜보면서

이제는 내 얘기가 이해되지 않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는,
그리고 남의 얘기가 내게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는,
당연한듯 하지만 한편으론 쓸쓸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무래도 공감할 수 있는 사람들끼리 세월을 함께 해야 할 것만 같습니다.

 

 

 

 

 

 

아하누가

기타이야기 한줄 더 생겼습니다.

지금은 더 좋은 기타가 두대 더 있습니다.

중학생인 둘째 아들이 기타를 매우 잘 치기 때문입니다.

 

 

'짧은 글 긴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술값, 그 영원한 숙제  (0) 2024.07.05
사무실 화장실에 얽힌 말못할 이야기  (1) 2024.07.01
안타까운 일들  (0) 2024.06.30
나이 이야기  (0) 2024.06.30
나의 소원  (0) 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