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얘기

나이 이야기

아하누가 2024. 6. 30. 01:36


1

인터넷에서 알게 된 대학생이 있었습니다.
여학생이었는데 꽤  많은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친구처럼 잘 지냈습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도 자주 찾아오곤 했지요.

그런데 그 여학생이 어느날 나에게 학교 축제 때 같이 가자고 했습니다.
하하… 살다보니까 이런 일도 생기더군요. 물론 겉으론 점잖게 거절했습니다.
학생들 잔치에 어른이 가서 되겠냐며 점잔 떨었지만
사실은 좋아서 다리가 비비 꼬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행복함을 느낀 순간은 잠시였고
다음 순간 그 여학생은 아무렇지도 않은 목소리로  담담히 내게 말했습니다.

 

“우리 학교는 부모님 모시고 오면 공짜에요~ 공짜~”

 

그 이후로 ‘축제’소리만 들어도 눈물이 납니다.

 

 

 

2

머리를 자르러 미용실에 갔습니다.
내가 일하는 사무실 바로 밑 층에 제법 큰 미용실이 있어서
멀리 가기 귀찮아하는 성격을 가진 나는 대충 거기서 아무렇게나 깎습니다.
하루는 머리를 자르던 종업원 아가씨가 내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 손님한테 우리 아버지 냄새가 나요~”

 

아니… 그 아가씨가 적어도 25세는 되었으니까

아버지라면 최소한 50세는 되셨을텐데 그 냄새가 난다니요.

나도 그 냄새가 뭔지 알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더 약이 올랐습니다.
하지만 가위를 들고 있어서 달리 어떤 행동을 취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이후 그 미용실에 다시는 안가기로 했습니다.

 

 

 

3
내가 일요일 아침마다 어울리는 축구팀이 있습니다.

축구를 하러 모인 사람들이니까
나이도 제각각이고 하는 일도 제각각입니다.
어느 일요일 아침 후배 한 녀석이 내게 다가 왔습니다.

 

“형! 저........”

 

한참 머뭇거리길래 여자라도 한명 소개시켜준다는 얘긴줄 알고
조용한 곳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그 후배는 아주 조심스럽게 머잖아 곧 결혼하게 된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어쩐지 몹시 쑥스러워 하더군요.
그 후배 나이가 가만있자..... 이제 스물여덟인가 스물아홉인가 되었으니
그리 이른 것은 아닌 셈이지요.
한껏 환한 얼굴로 축하를 잔뜩 해주고는 돌아서려는데
녀석은 아직도 할 말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은 아주 조심스럽게 말했습니다.

 

 

“이거 좀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주례 좀 서주실래요?”

 

 

주례? 정말 살다살다보니 별 일이 다 생깁니다. 사회도 아니고 주례라구요?
성질이 나서 막 욕했습니다.
아마도 주례로서 자격이 없다는 사실도 금방 알았을 겁니다.

정말 별일이 다 있습니다.

 

 

 

4

아마 인터넷 유머사이트에 글을 쓰는 사람중에

내가 나이가 제일 많은 것 같습니다.
저 보다 많은 사람도 있었는데 요즘 안보이더군요.
처음엔 그 사실을 대충 확인하고는 무척 쑥스러웠는데 그것도 몇번 겪다 보니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실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나이를 먹으니 오히려 느긋한 여유가 생기고 또 나보다 조금 나이가 적은 분들이
유머란에 글쓰는 걸 쑥스러워 하다가도 날 방패삼아 쑥스러움이 줄어드니
그것도 나름대로 책임감이 생기더군요.
그리고 나이와 관계없이 많은 사람과 의견을 나눌 수도 있습니다.
그게 또한 통신이 가지는 커다란 장점이기도 하지요.

 

 

정말 나이가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얼마나 젊게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이제 미용실도 다시 가고, 가끔 대학 축제도 가봐야겠습니다.
요즘은 유머란에 제법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계셔서 반갑습니다.
어쩌면 정말로 웃음이 필요하신 분들일지도 모르는데 말이죠.
직장이야기를 쓰시는 분,

아내 이야기 또 남편 이야기를 아주 구성지게 써주시는 분들도
계셔서 조금 덜 외롭습니다.

그 분들 힘내시라고 이렇게 나이에 관한 몇 기억을 더듬어 보았습니다.

나이가 어리신 분들, 섭섭하시다구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금방 20대 되고, 또 30대 됩니다.

나이가 한살씩 먹어간다는 것- 그것은 절대로 슬픈 일만은 아닙니다.

 

 

 

 

 

 

 

 

 

 

아하누가

그러더니 벌써 50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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