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얘기

안타까운 일들

아하누가 2024. 6. 30. 01:37


 

1

꽤 오래전 일이라 정확한 시기는 잘 모르겠고

아마 고등학교에 다닐 무렵으로 기억됩니다.
그 당시에는 요즘도 가끔 볼 수 있는,

그물을 쳐놓고 동전 먹은 기계가 야구공을 던지면
방망이로 치는 바로 그 야구연습장이 우후죽순으로 곳곳에 들어서던 때였습니다. 
그 이후 그 야구연습장이 돈을 벌어 규모를 뻥튀기 시켜 골프연습장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전혀 근거없는 얘기며 뿐만 아니라
지금 하고자 하는 얘기와 아무 관련이 없습니다.

 

 

어느날 아버지 심부름으로 어떤 곳에 갔다가 시간도 남고 심심해서
그 야구연습장에 들어가 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날따라 약을 먹었는지 아니면 다른 무슨 일이 있었는지
마치 신들린 듯한 타격을 하게 되었지요. 아마 요즘 한참 유명세를 타고 있는
맥과이어나 세미 소사가 봤으면 ‘형님’이라고 불렀을 지도 모르고
LA 다저스 감독이 봤으면 당장 스카웃하려 했을 지도 모릅니다.

내 방망이에 맞고 빨래줄 같이 날라가는 공들을 보면서
야구선수를 시키지 않은 부모님을 잠시 원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날. 당시 어떻게든 꼬셔보려는 여학생을 만났습니다.
이리저리 눈치보며 길을 걷고 있는데
갑자기 눈앞에 그런 야구연습장이 보이는 게 아니겠어요?
두말 할 것 없이 당당한 자세로 들어갔습니다.
뭐 그런 걸 하냐는 그 여학생의 말도 무시하고

예전에 볼 수 없던 당당한 자세로
웃옷을 벗어 들고 있으라며 폼을 잡기도 했지요.

 

하지만 여기까지 읽으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예상할 수 있는 것처럼
결과는 비참하게 끝났습니다. 공이 15개 정도 나왔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방망이에 스치는 한개의 공이 지나갔을 뿐입니다.

그외는 모두 다 헛손질이었습니다.
비참했습니다. 갑자기 투수가 박찬호로 바뀌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니, 오래전이니까 최동원이나 박철순으로 비교해야 되나요?

아무튼 너무나 답답하고 안타까와 미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제는 이렇지 않았다고 그 여학생에게 강변하자
그 여학생은 모든 것을 다 안다는 말투로 고개를 끄덕이며 내게 말했습니다.

 

“그래... 다 안다니까....”

 

이런 답답한 심정은 당하지 않은 사람은 모릅니다.

그 다음날 혼자 들린 야구연습장에서 역시나

또 다시 홈런타자임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2
얼마전 토요일, 사무실 근처로 오래전 친구들이 찾아 왔습니다.
오랜만에 만나는 반가운 친구들이었기에 기분 좋게 저녁식사를 하고

술 한잔하러 자리를 옮겼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도 끝날 즈음 더 좋은 자리에서 한잔 더 할 것을 결정했고

그라운드의 잇점을 가진 내가 앞장서서 안내하기로 했습니다.
술이야 못 마시지만 어차피 그 근방은 내가 제일 잘 아는 곳이었고
또한 내게는 믿고 있는 무언가가 하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게 뭐냐구요?

 

다름 아닌 호객행위를 하는 이른바 삐끼였습니다.
그 동네엔 그런 업무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어찌나 많은지
자기들은 세금도 한푼 안 내면서 늦은 시간에 퇴근하려면

여기저기서 붙잡는 바람에 집에도 못 갈 정도였으니까요.
그 생각으로 술집에서 나왔는데

이상하리 만큼 그날따라 아무도 보이지 않았던 겁니다.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지요.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토요일엔 술집이 영업만 하지 아가씨도 마담도
출근도 하지 않는답니다. 그러니 당연히 삐끼가 있을 리가 없지요.

 

하지만 그 사실을 알 리 없었던 나는

그 순간 대한민국은 물론 전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행동을 실천에 옮기게 됩니다. 바로 삐끼를 찾아 다닌 것이었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일 같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기가막힐 일이었습니다.
삐끼가 손님을 찾으러 돌아다닌다면 말이 되지만 손님이 삐끼를 찾아 다닌다니
이게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어쨌든 골목 골목을 부지런히 찾아 다녔습니다.
친구들도 보기에 안스러웠는지

4개조로 나누어 각 블럭을 샅샅이 훑고 있었습니다.
제법 큰 길가에선 소리 높여 큰 소리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어이! 거기 삐끼 있냐?”
“야! 삐끼! 있으면 대답해 봐!”
“.......”
“삐끼님 계세요?”


 

급기야 내 행동을 빤히 쳐다보던 친구들이 그만 고생하고

다른 곳으로 가자고 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답답할 경우도 있습니까?

 

이곳이 삐끼가 많은 동네라고 몇번을 반복해서 설명해도 믿지 않았습니다.
결국 택시를 타고 삐끼가 많다는 신촌으로 갔습니다.
술을 먹으러 술집을 찾은 것이 아니라 오직 삐끼를 찾으러 다닌 겁니다.
세상에 삐끼를 이렇게 애타게 찾아다닌 적 있는 사람 또 어디 있을까요.

그 다음주가 되면서 나는 매일 저녁 사무실 앞길에서

많은 삐끼에 또 시달리게 됩니다.

 

 

 

3
군대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보초 근무에 열중하고 있는데 철조망 너머에 민간인이 불쑥 나타났습니다.
물론 훤한 대낮의 일입니다.
너무 놀라 바짝 긴장했지만 가만히 정신을 차리고 보니

연로하신 할머니 한분이었습니다.
물론 적군이 할머니로 변장을 하고 침투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잠깐 했지만
어느 누가 봐도 의심할 여지가 없는 - 우리의 어머니 같은, 우리의 할머니 같은 -
모습이었습니다.

이곳에 오시면 안 된다고 말씀드렸더니 그 할머니는 고사리를 따고 다니다가
이곳까지 오게 되었다고 말씀하셨지요.
그 연세에 오시기는 매우 험난한 길인데도 고사리를 따러 왔다니
눈물이 왈깍 올라왔습니다. 갑자기 어머니 생각이 났지요.
예전에 내가 쑥떡이 먹고 싶다고 괜한 말 했다가

어머님이 동네 야산에서 길을 잃으셔서 고생하신 일이 생각났습니다.

그때 할머니께서 내게 말했습니다.

 

 

“이쪽에는 하나도 없는데 철조망 안쪽에는 많구먼.

군인 총각, 고사리 좀 따주렴?”

 

 

할머니는 찾아도 보이지 않던 고사리가
내가 서 있는 철조망 안쪽에는 가득하다고 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허리가 부러지는 한이 있어도 그 근처에 있는 고사리란 고사리는
다 따 드리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이 나라를 지키는 군바리답게

믿음직스러운 말투로 할머니께 말했습니다.

 

 

“할머니, 이곳은 군사 지역이라 오시면 안돼요.
그리고 저는 보초 근무중인 군인이라 고사리를 따드릴 수 없답니다”

 

 

실망하는 눈빛으로 달리 어떤 행동도 할 수 없는 할머니를 보며

고개를 잠시 돌렸습니다.
이런 나를 보고 너무하다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난 고사리가 뭔지 모릅니다.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란 이유 때문인지 이미 말려진 새까만 고사리만 알지
땅에 피어 있는 고사리를

다른 풀들 틈에서 찾아낸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얘깁니다.
세상에 이렇게 답답하고 안타까운 일이 또 있을까요?
할머니를 내려 보내고 정말 눈물이 자꾸 났습니다.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 궁상맞게 울면 안되는데 말입니다.

 

 

다음날 남은 시간을 이용해 시골에서 자란 쫄따구와 함께 그곳에 갔습니다.
그 친구에게 고사리를 보이는대로 따라고 시켰습니다.
영문도 모르는 그 후배는 열심히 고사리를 땃고 꽤 많은 고사리들을
초소 지붕 위에 차곡차곡 널었습니다. 꽤 많은 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로 그 할머니는 다시 그곳에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가슴을 저미는 안타까운 일들은

오랜 시간이 흘러도 가슴에 작은 감동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런 오래 전 생각을 잠시 하다가 이내 현실로 돌아올 때는
작은 웃음만 입가에 남게 됩니다.

모든 일은 웃음으로 승화되는 것 같습니다.

 

 

 

 

 

 

 

아하누가

 

 

'짧은 글 긴 얘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무실 화장실에 얽힌 말못할 이야기  (1) 2024.07.01
나의 기타이야기  (1) 2024.07.01
나이 이야기  (0) 2024.06.30
나의 소원  (0) 2024.06.30
멋진 말 남기기  (0) 2024.06.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