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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어린 시절에 어른들이 네 소원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하곤 했습니다.
학교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 걸 발표하는 시간도 있었으니까요.
하지만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 질문이 세상에서 가장 유치한 질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같은 질문을 하는 선생님께
‘그딴 거 말하면 이루어지기나 하나요?’ 라며
한편으론 똘똘한 목소리로, 다른 한편으론 싸가지없는 말투로
마치 세상 다 산 것 같은 사람처럼 대답했다가 매만 엄청나게 맞았습니다.
엄청나게 밀려오는 배신감과 함께 소원이라는 것은 단지 이루어지기전에는
아무 것도 아닌 것이라는 옆집 할아버지 같은 생각이
소원에 대한 나의 모든 관념을 점점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다가 중학생이 되어서 국어 교과서에 나오는, 첫째도 이 나라의 독립이요,
둘째도 이 나라의… 라는 김구 할아버지의 소원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글로 인해 소원이라는 것은
이루어지기 힘든 것이라는 생각이 점차 확연해졌고
소원이란 단어가 가지는 실현 불가능한 의미에 적잖이 실망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의 소원은 대체 어떤 것일까? 라는 생각을 늘 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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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어른이 되어서 현실적으로 가능할 만한 소원이 생겼습니다.
바로 그것은 백화점 - 그것도 커다란 백화점 - 안에서
한달 동안 사는 것이었습니다.
듣는 사람은 그것이 무슨 소원이나 되느냐고 생각하겠지만
당시 내게는 매우 신선한 발상이었습니다.
신선한 정도가 아니라 생활의 짜릿한 충격이었습니다.
심지어 그 기이한 발상에 스스로도 놀라곤 했었습니다.
지하 식당에서 밥 먹고 침대 파는 곳에 가서 잠 자고, 가전제품 파는데서
TV나 비디오 보고 그래도 심심하면 엘리베이터 안내하는 아가씨하고 농담하고…
그렇게 한달을 사는 겁니다. 물론 다 공짜지요.
책 보고 싶으면 책 파는 곳에서 책 가져와서
가구 파는 곳의 소파에 드러 누워서 책 보고.
윗층에 있는 식당에서 술도 먹고,
옷 파는 데 가서 이옷 저옷 입으며 패션쇼도 하고......
그리고 운동이 모자라면 운동기구 파는데서 헬스하면서 사는 거지요.
하지만 이 소원은 가까운 친구한테 말했다가
그 친구의 어이없는 표정을 본 이후로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나만의 오랜 소원이었습니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었지만
이상하게도 그 소원은 기억속에서도 오래가지 못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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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또 한가지 소원이 생겼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하는 케이블TV 방송이 생기는 게 저의 소원입니다.
무슨 말이냐면, 내가 살고 움직이는 것들이 모두 TV프로그램이 되는 겁니다.
나의 두 눈은 방송 카메라가 되고 나의 귀는 오디오가 되는 거죠.
즉 내가 축구경기장에서 축구를 보고 있으면
시청자들은 축구중계 방송을 보고 있는 것이고
음악회에 가면 음악회 연주실황을 보는 겁니다.
또 극장에 가면 그 프로는 ‘영화특급’정도가 될 것이고
이상한 술집에 가면 ‘시사고발 프로그램’이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일을 하거나 친구 만나는 일들은 모두 시트콤드라마가 되고
바둑 두면 바둑프로그램, 해외여행가면 기행 다큐멘타리가 되는 겁니다.
그럼 뉴스는 어떻게 하냐구요? 그것도 걱정없습니다.
저녁 9시에 집에서 내가 다른 방송의 뉴스를 보면 됩니다.
아무 때나 YTN뉴스를 봐도 됩니다. 신문을 봐도 됩니다.
어린이 프로도 걱정없습니다.
아침에는 아들 후연이하고 노니까 바로 ‘뽀뽀뽀’가 됩니다.
또한 가끔씩 성인용 영화도 방영해야 하니까
내 의지와 관련없이 시청자를 위해서 무언가 한다고 생각하니
그것도 상당히 도덕적인 갈등이 없어져서 무척 즐겁기만 했습니다.
다만 한가지 문제라면 아주 이쁘고 잘 생긴 사람들이 자주 등장해야 하는데....
어떻습니까? 이 소원이 이뤄질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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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하면 꼭 잊혀지지 않고 생각나는 얘기가 하나 있습니다.
바로 영화 ‘알라딘’에 나오는, 요술 램프의 요정이 들어주는 세가지 소원입니다.
내가 감동적으로 받아들인 얘기는
요술램프가 들어주는 세가지 소원이 아니라
요술램프가 절대로 이루어줄 수 없는 세가지 소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관심있게 지켜보신 분들은 아실 겁니다.
그 세가지는 이렇습니다.
첫째, 누군가를 죽이는 일.
둘째, 이미 죽은 누군가를 살려내는 일.
셋째, 남으로 하여금 자신을 사랑하게 하는 일.
바로 이 세 가지는 절대로 들어줄 수 없는 소원이라 했습니다.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죽고 사는 문제만큼 사랑의 중요함을 말해주는 것 같기도 하고
가장 중요한 것은
인간과 생명의 존엄함이라는 말을 해주는 것도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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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누가 들어주고 이루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결국 소원이란 위의 세가지 경우를 빼면
결국 모든 것을 자신이 이루어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로 이제 더 이상 허무한 소원은 말하지 않습니다.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내가 알고 있는 주변의 사람들이 아무 일 없이
평화롭게 살기만을 바라는,
전혀 쉽게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은 나의 오래전부터의
작은 바람만 있을 뿐입니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