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잘 알고 지내는 선배의 아이가 무럭무럭 커갈 무렵의 일입니다.
아기가 커가면 당연히 키도 자라고 몸도 커지는 현상이 나타나게 마련인데,
그러다보니 옆집 아이와도 비교하게 되고
혹시 우리 아이만 어디가 모자란게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 당시 선배의 부인은 아이의 이가 자라지 않는 것을 보고
심각한 걱정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남의 집 애들은 다 이가 있는데 왜 우리 애만 이가 나질 않느냐며,
평소 무관심에 대한 불만의 표시로 이빨을 바득바득 갈고 있었습니다.
그때 선배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이 세상에서 이가 안 난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어”
그 얘기를 전해 듣는 나도 가만히 생각하니 정말 그런 것 같았습니다.
여태까지 이가 생기지 않는다는 사람은 단 한명도 본적이 없었고
또한 그런 이상한 증세가 의학적으로 나타난 예가
어디에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나온 이가 나중에 빠지는 일이야 있을 수 있어도
애당초 이가 자라지도 않는 현상은
굳이 역사책이나 희귀한 사건을 기록한 책을 들추지 않더라도
아직 한번도 없었다는 것은 너무도 확실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그 얘기를 들은 선배의 부인 역시 여러번 생각해도
달리 걱정할 이유가 없다는 사실을 곧 알게 되었고
따라서 아까 바득바득 갈던 이를 가지런히 정렬시키고 있었습니다.
때로는 자세한 설명보다 한마디의 말이 남을 이해시키는데
훨씬 더 효과적인 설득이 됩니다. 백번 강의를 듣는 것 보다 한마디의 멋진 말이
상황을 이해시키는데 더없이 적절한 것만 같습니다.
2
클래식 음악회에 가는 것을 몹시 좋아하는 내가 직장에 다닐 때
비슷한 취미를 가진 후배와 클래식음악회에 즐겨 다닌 적이 있었습니다.
마침 그날도 무슨 음악회가 있어 잔뜩 기대를 하고
퇴근 시간을 기다리고 있는데,
퇴근 시간이 되어갈 무렵 또 다른 후배 사원이
나와 같이 클래식 음악회에 가려는 후배에게 말을 건넸습니다.
“어이! 최형! 오늘 김OO 콘서트 하는데 같이 안 갈래?”
하지만 나와 미리 선약이 있던 후배는
오늘은 클래식 음악회에 가는 날이라고 설명을 했고
그 얘기를 들은 또 다른 후배는 이를 비아냥거리는듯한 말을
혼잣말처럼 내뱉었습니다.
“이거 원 수준이 달라서...:”
그 말은 정말로 수준 차이에 대한 인식으로 들리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뭔가 남들과 다르게 티나게 행동하고 있다는 비아냥처럼
기분 나쁘게 들리기도 했습니다.
이럴 땐 일일이 변명을 해야 하는 건지 아니면 그저 수준 차이로 생각하라며
일부러 못 들은 척 해야 하는 건지 몹시 곤란한 입장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그말을 들은 후배는 조심스러운 말투로 이렇게 대꾸했습니다.
“수준이 다른 게 아니라 취향이 다른 거지!”
그 대답에 비아냥거리는 듯한 말투를 하던 그 사원은
무언가 할 말을 잃은 듯 했고,
그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 속에는 자신의 표현이 조금 심했다는 반성의 모습도
조금 보이는 것 같았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나도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표현이야말로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었던 것 같았습니다.
클래식 음악회에 가는 일이나 대중 가수의 콘서트에 가는 일이나
그것을 수준의 차이로 구별할 수는 없는 일이고,
다만 선호하는 취향에 있어서 그 차이만이 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고 보니 생각할수록 참으로 멋진 말이었습니다.
역시 멋진 말 한마디는
백번 천번 설명하는 것 보다 더 빠르게 이해되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예로부터 유명 인사의 명언들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오랜 시간 동안 진리로,
또는 명쾌한 답으로 인정되고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3
그런 몇가지 경험 이후로 멋진 말을 남기는 일에
오랜동안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야 말로 말만 쉬운 일이지 그런 멋진 말을 남기려면
그만큼의 노력을 해야 한다는 사실 또한 틀림없는 일이었습니다.
말에 맛이 남아 있고 또한 그 안에 새겨진 의미가 생명력을 발휘하려면
보통의 노력으로는 되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멋진 말을 남기기 위해서는
그 분야에 대해 남보다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하고
또한 그 일과 연관된 기타의 일에도 바른 시각으로 볼 줄 아는
인격적인 완성도 반드시 필요할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이 들고나니 왠지 그런 말을 남기는 일련의 일들이
모두 나와는 관계없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기 시작했습니다.
차라리 그런 시간에 주식투자에 신경써서
평생 쓰고 남을 만큼 돈이나 많이 벌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더 현실적이라는 생각이 들어가면서
그런 멋진 말에 대한 매력은 차츰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4
가끔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연세가 지극하신 어른들을 보게 됩니다.
내가 앉아 있는 주변에 그런 분이 오시면 얼른 일어나는 편이지만
가끔씩 꽤 먼 자리에서
자리 양보에 대해 젊은이들과 다투는 어른들의 모습도 보게 됩니다.
자리 양보의 예절에 있어 조금은 지나친 어른들도 있다는 것이
다툼을 유발하는 젊은이들의 논리인데,
이 점에서는 앞뒤 사정 막론하고
철저한 양보를 권하고 싶은 것이 개인적인 생각입니다.
어느 하루는 꽤 먼거리를 지하철로 이동하느라 어디엔가 자리를 잡고
그리 붐비지 않은 지하철안에서 여유롭게 신문을 펼치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역에서 어느 할아버지 한 분이 지하철을 타셨고
마침 내 앞에 서 계시기에 당연히 일어나며 자리를 양보해드렸습니다.
그러나 자리에 앉으실 줄 알았던 그 할아버지는 이를 완고히 거부하시면서
아직 자리를 양보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점잖게 일갈하시는 게 아니겠어요?
가만히 모습을 보니 연세는 꽤 많이 드셨지만 아주 정정하신,
젊었을 때의 강인한 기백이 엿보이는 그런 모습을 풍기고 있었습니다.
아직 젊은이들에게 자리를 양보받지 않을 정도로 건강하다는 것을
스스로의 커다란 위안으로 삼고 있는듯 당당한 자세로 서 있었습니다.
그때 무슨 생각이었는지 나는 그 할아버지에게 이런 말을 건넸습니다.
“하지만 어르신께서 그렇게 서 계시면
이 안에 앉아있는 모든 젊은이들이 욕을 먹습니다”
그러자 그 할아버지는 짧은 순간이었지만
무언가 곰곰히 생각하는 듯한 얼굴을 했고
이후 흔쾌한 표정과 말투로 ‘그럼 내가 앉지!’라며
자존심과는 그리 상관없는 분위기로 즐겁게 자리에 앉았습니다.
아마도 그 할아버지의 생각에는
자신의 건강에 대한 자부심과는 달리 사회적인 이목도 중요한 것이라는
극히 평범한 사실을 새삼 떠올렸을겁니다.
그리고는 지하철안에서 곰곰히 생각에 잠겼습니다.
내가 생각해도 내가 한 말이 유쾌한 분위기를 만든 멋진 말인 것 같았습니다.
오래전에 가졌던 멋진 말에 대한 갈망의 느낌도 조금씩 기억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굳이 자리 양보를 하지 않으시겠다는 어른들께는
젊은이들 생각도 해달라는 의사가 담긴 이 말을
꼭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지금의 건강을 잘 지켜서 언젠가 나이를 많이 먹었을 때
자리를 양보 받지 않아도 되는
멋진 어른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아울러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나도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할 나이가 되었을 때,
어느 젊은이가 내게 와서 ‘서 계시면 젊은 사람들이 욕을 먹습니다’라는
말을 내게 해주면 너무나도 기쁠 것만 같습니다.
젊은 시절의 내가 남긴 말이 세월이 지나도
그 생명력을 잃지 않을 만큼 멋진 말이었다는 것을
직접 확인하게 되니 말입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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