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덧 밤 9시는 뉴스를 시청하는 시간대로 자리 잡았다.
저녁 식사하고 아직 잠자리에 들긴 이른 시간이니 TV 시청의 황금시간이다.
푹신한 소파가 있는 집은 소파에 몸을 기대고,
방바닥이 더 좋은 사람은 방바닥을 뒹굴며 시청하는 뉴스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편안한 휴식 시간이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편안한 휴식시간이 저절로 그려지는
아름다운 가정의 한 모습이지만
애석하게도 그 다음부터는 전혀 편안하지 않다.
뉴스에 나오는 세상 이야기들을 참고하여 살아가자니 눈앞이 깜깜해진다.
길을 걷자니 누군가 와서 몽둥이로 뒤통수를 칠 것 같고,
대중교통을 타자니 온통 주변엔 소매치기밖에 없는 것 같다.
또 직접 자동차를 운전하자니 음주운전 자동차가 와서 덮칠 것 같다.
부모들은 자식들 시험 잘못 봤다고 사고 칠까 두렵고
자식들은 부모님들 신용카드 빵꾸났는지 얼굴색 살피게 된다.
겨우 정신 추스르고 다른 사회 돌아가는 내용 좀 보려면
수십억 수백억 받아먹은 정치인 얘기 일색이다.
어디 그뿐인가?
각종 사회 범죄에서 끔찍한 사고 장면, 몰라도 되는 시시콜콜한 연예인 소식,
화재, 시위 현장 등 불가피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야기들.....
이쯤 되면 이건 뉴스가 아니라 공포다.
그러니까 오늘은 얼마나 공포심 불러일으키는 일들이 나를 놀라게 할지
매일매일 지켜보며 담력을 테스트를 하는 시간이 바로 뉴스 시청 시간인 셈이다.
아무리 우리네 일이라지만 참 딱한 일 아닌가?
한해를 마무리하고 또 새로운 한해를 맞이하는 경건한 시간이니 만큼
조금 더 잔인하고 조금 더 잔혹하며 조금 더 경악할 만한 사례는 과감히 생략했다.
날이 가면 갈수록 점점 더 뉴스의 내용이 무서워진다.
이러다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뉴스라는 단어 자체가 두려워지지 않을까.
* * *
한해의 마무리를 앞두고 어느 인터넷 포탈 사이트에서
<내년에 가장 보고 싶은 뉴스>를 조사하여 발표했다.
대충 내용을 훑어볼까.
1위 : 경제, 살아나다! - 주가 1500P 돌파!
2위 : 일자리 확대, 학력-연령제한 없앤다
3위 : 불법 정치자금 - 불우이웃에게 전액 기증
4위 : 남북관계 급진전 - 통일 눈앞
이런 내용은 보기만 해도 흐뭇한 웃음이 지어진다.
반가운 소식이 어디 이 정도 뿐이겠나. 생각해보면 줄줄이 있다.
어느 소매치기, 시민들에게 잡힐까 무서워 경찰 자진 출두
한류 열풍, 유럽에 이어 드디어 미국시장까지 점령
한국 축구 2006 월드컵 예선 순항
주택 남아돌아 집값 점점 하락
범죄자 없어 인원 감축당한 교도원들 시위
일본 열도 침식작용으로 3분의 1 가라 앉아.
기업에 손 벌린 국회의원 따귀 때린 기업인 구속
국내 입국 관광객 500만명 돌파
시위 줄어 전경중 희망자 육,해,공군 전출
미국 정부, 광우병 쇠고기 자기들이 다 먹기로
헐리우드 영화사, 아카데미 포기하고 부산영화제로 몰려
국방부, 로봇태권 브이 제작 성공
<환경특집> 바퀴벌레가 안 보인다!
이승엽, 일본 프로야구 홈런왕 등극
의무교육, 고등학교로 확대 실시
자연미인 인기, 성형외과 울상
이런 뉴스는 들어본 적이 없어서 그렇지
조금만 생각하면 내용을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 만큼 주옥같은 레파토리가 있다.
하지만 웃음 속에 숨겨진 불행한 사실 하나는
이런 뉴스들은 언제나 그저 연말이면 상습적으로 등장하는
철없는 바람으로 끝난다는 점이다.
그저 엉뚱할 것만 같은 발상을 보며
대리만족을 하고 있을 뿐이라는 사실이 안타깝다.
뉴스는 희망을 품고 있어야 하고 뉴스를 통해 희망을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뉴스에서 공포를 느낄만한 일들이 먼저 사라져야 한다.
그것이 아마 온 국민이 바라는 새해의 희망뉴스일 것이다.
언제나 이 사회에서 쓸 데 없는 일은 잘 찾아다니며
심각한 일은 필사적으로 외면하던 본 칼럼이 오랜만에 진지했다.
내년엔 진지하지 않은 글에도 넉넉하게 껄껄 웃을 수 있는 생활의 여유가
모두에게 생겼으면 한다.
아하누가
10년전 희망뉴스는 지금과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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