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유머

아이보는 남자

아하누가 2024. 7. 2. 01:09


 

주말에 아내는 사무실을 옮긴다고 종일 사무실에 있었다.
토요일은 큰 녀석만 데리고 사무실에 나왔다.

어른들이 일하는 사무실에 아이 하나가 뛰어다니니 분위기 개판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게 유일한 방법인걸.

사무실 동료들에게는 예전에 밭에 일하러 나가시던 우리의 어머님 아버지를 생각하고
또한 그때 같이 나가 밭고랑 기어다니며

지렁이 주워 먹던 우리들 모습을 생각하라고 설득했다.

감성 어린 이 절묘한 비유에도 불구하고
한 직원은 절대로 자신은 지렁이를 주워 먹진 않았다고 열변을 토했다.
아마 더 혐오스러운 걸 집어 먹은 듯 했다.

그렇게 사무실에서 아이 하나에 부대끼며 오후를 보내고 집에 데리고 들어가
외출에서 돌아오신 할머니에게 다시 맡기고

사무실로 돌아오니 어느덧 저녁 먹을 시간.

하루가 너무도 정신없이 지나간다.

 

 

 

* * *

 

 

 

일요일 아침. 역시 사무실 이사로 인해 아침에 출근해야 하는 아내와
일요일 아침이면 축구하러 가야 하는 나는 자동차 한 대를 두고 싸우다
내가 아내를 데려다 주고 축구하러 가기로 합의했다.
아침 일찍 일어나 나갈 준비를 서두르니

부산한 분위기 때문에 잠에서 깬 큰 녀석 왈,

 

"아빠도 가고 엄마도 가면 난 어떻게 해에~ 잉~"

 

녀석, 아빠 엄마가 아주 가냐?
얼른 축구하고 돌아와 아내가 돌아온 오후 4시까지 아이 둘과 줄곧 씨름.
그것 참 힘든 일이다.

 

 

 

* * *

 

 

 

다른 맞벌이 부부와 달리 우리 집은 애 키우는 환경이 매우 좋은 편이다.
조그만 다세대주택 2층이 내가 사는 곳이고 3층이 처가니
아이를 키우는 맞벌이 부부가 가지는 환경으로는
대한민국에서 제일 좋다고 해도 될 것 같다.
게다가 나는 식구들이라곤 주변에 하나도 없으니 아이 엄마로서 시댁까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어서 그 환경은 더욱 좋은 셈이다.
그런데도 맞벌이하며 애 둘 키우기가 쉽지 않으니 그것 참......

이틀을 보내면서 하루종일 아이와 싸우며 지내야 하는 우리 장모님, 그리고
이 땅의 많은 주부들, 특히 환경도 좋지 않으면서 애를 키우는 이 땅의 맞벌이 부부들에게
작은 경외심을 표한다.

 

 


덧말 : 하지만 그렇게 생각한 이 시대의 불쌍한 30대 남편은
오 헨리의 소설에 나오는 당구 잘 치는 놈처럼 이 시간 이미 그 일은 까맣게 잊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 다들 그렇게 사는 모양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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