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프로그램 중에 오랫동안 은근히 인기를 유지하고 있는 프로그램이
바로 퀴즈 프로그램이다.
방송인이 아니라 일반인들이 나온다는 점에서 일단 신선하고,
지식으로 대결을 펼친다는 점에서도 흥미를 끌기에 충분하다.
그렇게 겨루는 지(知)의 대결은 보는 사람들의 지성도
한층 업그레이드 시킴으로
‘바보상자’의 오명을 상쇄시키기도 한다.
지금도 한참 주가를 올리고 있는 ‘생방송 퀴즈가 좋다’나
‘도전 골든벨’ 등이 그런 경우다.
그렇게 아름다운 지식의 대결만 있다면 참 좋으련만
불행히도 그런 퀴즈 프로그램만 있는 것은 아니다.
퀴즈 형식을 빌린 각 방송의 오락프로그램이야
방송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치자.
지금 말하고자 하는 딱한 퀴즈는 그런 오락 프로그램이 아니다.
오락 프로그램이나 교양 프로그램이나 할 것 없이 방송이 끝날 즈음
화면 하단의 자막을 통해 방송과 관련된 퀴즈가 나온다.
상품도 준다고 하고 정답을 응모할 전화번호가 대문짝 만하게 표시된다.
그것도 모자라 방송을 진행하는 진행자들이
친절하게 하나하나 읽어주는 퀴즈가 있다.
한번이라도 그런 퀴즈를 본적이 있는 사람이면 딱하다 못해
처참하기까지 한 몇 가지 퀴즈가 떠오를 것이다.
이런 식이다.
가수 ‘비’에 대해서 장시간 소개를 하고 나서 나오는 퀴즈.
<퀴즈> 부드러운 목소리로 여성 팬들을 사로잡은 이 남자의 이름은?
① 에이 ② 비 ③ 씨
이 정도라면 퀴즈의 차원을 넘어 예술의 경지에 이른다.
만약 친구나 동료가 이런 퀴즈를 낸다면
성질 급한 사람은 당장 뒤통수를 내려 쳤을 것이다.
전 국민의 판단 능력을 유치원 샛별반에 다니는 5세 어린이로 통일 시킨
사악한 퀴즈의 전형이다.
더욱이 이 방송사가 장학퀴즈를 필두로
‘퀴즈 아카데미’와 ‘퀴즈가 좋다’로 이어지는 훌륭한 퀴즈 방송을 했던
전통있는 방송사라 더욱 딱하다.
다른 퀴즈를 볼까?
어느 케이블 TV에서 오래전 드라마를 방영하며 나온 퀴즈.
다음 중 '별은 내 가슴에'의 남자 주인공은?
① 차인표 ② 구봉서
혹시나 정답을 맞히는데 실수를 할까봐 보기도 두개로 줄였다.
뿐만 아니라 오답을 확실히 알려줌으로써
정답을 맞히지 못하는 실수를 방지하는 친절한 배려를 보이고 있다.
이 퀴즈를 보는 시청자들은 웃어야 하는지 울어야 하는지,
정답을 맞히는 것보다 훨씬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한다.
이런 퀴즈는 어디서든 쉽게 찾을 수 있다.
어느 케이블 TV의 낚시 방송에서 나온 퀴즈
<퀴즈> 여수권의 섬으로 여름에 참돔이 많이 낚이며,
모기가 많아 유명한 이 섬의 이름은 무엇일까요?
① 파리섬 ② 모기섬
퀴즈란 것은 정답을 맞혔을 때 즐거운 느낌이 들어야 하는데
문제가 이 지경이면 정답을 맞히고도 기분만 더러워진다.
차라리 구구단 8단을 다시 한번 외우는 게 더 기분이 좋아질 것이다.
어느 방송의 퀴즈
<퀴즈> 파리가 앞다리를 비비는 이유는?
① 다리를 말리려고 ② 잘못을 빌려고
이 퀴즈는 놀랍게도 어린이 방송의 퀴즈다. 신선하다. 아니, 대단하다.
차라리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퀴즈가 더 교육적이고 지적이다.
나름대로 한 가지 상식을 알려주려는 참신한 의도가 보인다.
그러나 이런 경우를 보고 감동해야 한다니 이 또한 딱한 일이다.
그럼 이번엔 이런 퀴즈들의 정통을 이어받아 새로운 문제를 내 보겠다.
한번 맞춰보시길.
<퀴즈> 보기에도 멍청한 방송의 이런 퀴즈를 도대체 방송국에서는 왜 할까요?
① 통일하려고 ② 월드컵에서 우승하려고 ③ 돈 되니까
정답은 스스로 판단하면 된다.
TV만 틀면 보고 싶지 않아도 보게 되는 이런 퀴즈들이 줄줄이 널려 있다.
대한민국 의무교육의 존립 여부까지 위협하는 이 심각한 사태는
앞으로 어찌 될 것인가?
아마 계속 된다면 국민의 아이큐는 일년이 약 2 정도씩 줄어들 것이다.
* * *
보도를 보니 KBS는 이번 가을 개편부터
이러한 ARS 퀴즈를 폐지하기로 했다고 한다.
지금이라도 그런 한심한 제작을 중단하기로 했다니 정말 다행이라고
말할 줄 알았지?
불행히도 ‘전혀 아니올씨다’다.
폐지하기로 한 이유가 뭔가 했더니 최근 ARS 퀴즈의 품질이 낮아
시청자를 우롱한다는 여론과 방송위의 지적이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럼 그걸 여태 몰랐나?
시작하고서 생각해보니 자기들도 보기 딱했던 모양이다.
정치도 그렇고 방송도 그렇고
제발 국민들 수준을 얕잡아 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많은 제도와 방식이 도무지 국민들의 지적 수준은 안중에도 없는지
어떤 제한을 두지 않으면 마치 큰일이라도 날 것 같이 생각하고 있으니
이거야 말로 방송 퀴즈보다 더 딱한 일이다.
그나마 국민들 지적 수준이 높고 마음이 넉넉하니까
그런 딱한 퀴즈나 제도를 웃어 넘겨준다는 사실을 알고나 있는지 모르겠다.
아하누가
그 당시에 정말 하고 싶은 말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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