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누구나 그렇겠지만 한번쯤은
소설을 써보고 싶은 꿈을 가지고 있던 적이 있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그리 욕심이 없었는지
남들이 그런 생각할 때도 별 다른 생각없이 살았습니다.
그러다 주변에 한두명씩 그런 사람을 만나게 되는 횟수가 잦아지면서
‘나도 한번 소설을 써봐?’라는 터무니 없고 파렴치한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문장력은 생각지도 않고 스토리 구상에만 몰두하여
결국 한편의 내용을 완성한 적이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유치의 극치겠지만 나름대로는 대단한 작품이었습니다.
제목도 <동그라미 세우기>라는 그럴듯한 제목이었는데 시작은 이렇습니다.
편의상 남주인공 이름은 정인이로 여자 주인공 이름은 지현이로 하겠습니다.
정인은 숨에 가뿐 듯 거친 숨을 몰아쉬며 지현에게 말한다.
“헉~ 안돼~ 나 도저히 더 이상은 못하겠어...”
이게 시작입니다. 그래도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 발단 부분에 야리꾸리한 상상을
자극시키면서 시작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보입니다.
주 내용은 이렇습니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을 가진 주인공 정인은
성격을 바꾸어 보려고 오토바이를 배운다.
재미가 붙은 정인은 오토바이를 열심히 타고 다리도 몇번 부러진다.
결국 정인은 세계 모터싸이클 대회에서 우승하며
박력있는 사람으로의 변신에 성공한다.
물론 그 고난의 과정에 여주인공 지현도 등장하고 좌절과 고통의 순간도 나오고
또한 몇가지 멜로성 짙은 부분도 나오지요.
여기까지는 그저 평범한 얘기라구요? 맞습니다.
하지만 하이라이트는 그것이 아닙니다.
정인은 결국 세계에서 오토바이를 제일 잘타는 사람이 되었지만
그에게 가장 원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게 바로 자전거를 배우는 일이었습니다.
정인은 자전거를 못탑니다.
처음 도입 부분은 이미 오토바이 챔피언이 된 정인이
지현에게 자전거를 배우다 자꾸만 넘어지는 장면입니다.
이 멋진 스토리를 친구들에게 해주니 친구들은 나를 소 닭 보듯 쳐다봤습니다.
사실 원래의 내용은 세계 다이빙 챔피언이 수영을 못해서
배우려다 결국 실패하고
다이빙 할 때 마다 옆에서 튜브를 던져 준다는 설정이었는데
너무 허구인 것 같아 이렇게 바꾸었다는 부연 설명을 했는데도
표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너무 명작이었기 때문일까요?
2
두번째 작품에 들어 갔습니다.
이번엔 범죄 및 수사에 관련된 내용을 소재로 잡았습니다.
제목도 <위조지폐 사건>이라고 그럴 듯하게 붙였습니다.
내용은 대충 이렇습니다.
어느 범죄 조직에서 위조 지폐를 만들기로 결정한다.
그러나 위조지폐로 만들어질 화폐를 놓고 의견이 분분하다 (바로 여기서
갖가지 유형의 인간상을 통해 인간성을 회복하자는 의미들이 담깁니다).
분분한 의견 때문에 수 많은 인간 관계의 갈등을 겪다가 결국
전 세계 위조지폐범 사상 유래가 없는 동전을 위조하기로 결정한다.
단위는 가장 적발될 확률이 적은 10원짜리. 하지만 5억원을 들여 제작한 기계가
동전 20만개를 찍고 고장나 범죄 조직은 빛만 잔뜩 지고 막을 내린다.
인간의 허황된 꿈을 현실적으로 일깨워주고 권선징악을 새삼 확인시켜주며
화폐를 깨끗하게 사용하자는 좋은 의미를 담고 있는 내용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간의 모습을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의 모습을 되돌아보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는 대단한 명작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 혼자만의 생각이었고
이 스토리를 들은 친구들의 표정은 그전과 그리 다를 게 없었습니다.
한 친구는 연신 하품만 해댔지요.
범죄집단이라는 소재가 평범한 사람들에게 어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일단 수긍하기로 했습니다.
3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번엔 컬트적인 요소를 띤 작품에 도전하게 됩니다.
제목은 <소설이라는 제목의 소설>입니다. 벌써 제목부터 심상치 않지요?
내용은 이렇습니다.
소설가 지망생 정인은 글을 쓰기 위해 갖은 경험을 일부러 시도한다.
4시간 남은 열차표를 사서 그 동안의 어떤 해프닝을 기대해보기도 했고
늦은 밤 행인에게 시비를 걸어 경찰서 신세를 지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상황이라는 자책으로 정인은 괴로워 한다.
결국 경험에 의한 소재를 포기하고 귀동냥을 다닌다.
산따라 강따라 귀한 경험을 들으려 많은 노력을 한다. 만나는 사람들의 얘기를
감동적으로 듣지만 많은 얘기들이 소설을 이루기에는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여
결국 정인은 소설을 쓰는 일에 실패하고 만다.
이런 내용입니다. 근데 도대체 이게 무슨 내용이냐구요?
소설이 끝나고 마지막 장에 작가의 에필로그가 한줄 덩그러니 나옵니다.
이런 말이 적혀 있죠.
‘그러나 나는 한편의 소설을 썼다’
4
세월이 또 흘렀습니다.
이제는 단순히 소설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내용을 반드시 영화로 만들겠다는 의지까지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번엔 진짜 명작입니다. 기대하셔도 됩니다.
제목도 영화를 의식해서 지었습니다.
<제목> 1812년
벌써 제목에서 흥미가 유발되지 않습니까?
1812년에 무슨 일이 있었냐면, 프랑스의 나폴레옹이 하는 전쟁마다 이기니까
간댕이가 부어서 러시아를 공격하러 갔다가 험한 원정길과 추위,
그리고 러시아 군의 ‘철수 작전’에 말려 엄청 터지고 왔습니다.
그 이후로 나폴레옹은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걷게 되었지요.
러시아의 음악가 차이코프스키는 이를 기념하려
<1812년 서곡>이라는 명작을 만듭니다.
유명한 곡이니 들으시면 모두 ‘아! 이거!’하며 고개를 끄덕이실 겁니다.
그런 이유로 예술의 나라라는 프랑스에서는 치졸하게
아직도 이곡은 절대로 연주하지 않는답니다.
또 참고로 이 곡에는 대포 소리가 나오는데 연주시에는
실제로 무대위에 대포를 가져다 놓고 소리만 나는 포탄을 쏘기도 합니다.
배경은 이렇고 주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인공 레옹은 프랑스계 미국인 바이올리니스트다.
음악가답지 않게 그는 걸프전에 포병으로 참전한 경험도 있다.
그런 그가 속해 있는 교향악단에서
러시아 대통령 방문 축하 연주회에 <1812년 서곡>이
선정되어져 있는 사실을 알고 그의 광기 어린 행동이 시작된다.
바로 축포 소리를 위해 무대 위에서 터지는 대포에 실제로 포탄을 몰래 장전하여
연주회장을 쑥대밭으로 만드는 계획이었다.
치밀하게 준비된 이 계획을 눈치챈 주인공 형사는 극적으로 폭탄 제거에 성공,
장엄한 음악이 흐르고 실망한 레옹의 표정은 크게 클로즈업되고
<1812년 서곡>의 웅장함과 함께 영화는 막을 내린다.
어떻습니까?
이 내용이 영화로 만들어지면 이 영화는 세계 최초로 시도되는
종합 버라이어트 장르의 영화입니다.
왜 그런지 자세히 설명하면 -
음악이 주된 소재니까 - 음악영화
걸프전 장면이 조금 나오니 - 전쟁영화
형사의 치밀한 추적이 나오니 - 추리영화
주인공의 광기어린 행동으로 보아 - 사이코 드릴러
필연적으로 등장할 수 밖에 없는 러브신이 있으니 - 애정 영화
주인공의 과거 회상장면에 조폭이 잠시 등장하므로 - 갱스터무비
기승전결의 구분이 애매하여 - 컬트무비
다양한 영상의 기법 도입으로 인한 - 포스트 모더니즘
결국 평화를 지킨다는 - 휴먼 드라마
이외에도 별게 다 있습니다만 그냥 참습니다.
그동안 구상했던 제 작품들을 보시니 어떻습니까?
제가 소설을 쓴다고 나서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그냥 이런 글이나 쓰면서 가정을 지키고 있는 게 좋을까요?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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