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글 긴 얘기

체험으로 느끼는 속담의 교훈

아하누가 2024. 6. 30. 01:28


1

군대에 있을 때의 일입니다.
시도 때도 없이 보초 근무에 나가는 경비중대에서 근무했기 때문에
정상적인 생활은 꿈도 꿀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배설의 생리현상 또한 시도 때도 없이 신체적 현상과
주변 상황이 허락하는 시점을 찾아 알아서 처리해야 했습니다.

 

어느날 초소에서 보초 근무를 하고 있는데 고참이 똥 누고 오겠다며
약간 떨어진 산기슭으로 갔습니다.
갈려면 좀 멀리 가지 빤히 보이는 눈앞에 자리 잡고 앉아 있는 놈을 보니
웃음이 나왔습니다. 한편으론 ‘순찰자가 옵니다!’라고 큰 소리로
장난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습니다만

후환이 두려워 애써 간지러운 입을 꾹 다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고참은 내가 있는 쪽을 바라보며

계속 싱글싱글 웃는 것이 아니겠어요?
참 살다보니 별 놈 다봤습니다. 남이 똥 누는 장면도 보기 힘들지만
그렇다고 똥 누면서 실실 웃는 놈은 더더욱 첨 봤으니까요.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 나도 고참이 되었습니다.
쫄따구에게 초소를 맡기고 산속으로 볼 일을 보러 올라갔습니다.
돌발 상황이 발생할까 걱정되어 멀리가진 못하겠더군요.

근처에 대충 자리를 잡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쫄따구를 쳐다보게 되었습니다. 차마 엉덩이를 보여주긴 싫었습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자꾸 웃음이 나오지 뭡니까?
왜 그런가 했더니 풀숲에 쪼그리고 앉아 있으려니 바람에 흔들거리는 풀들이
엉덩이를 어루만지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정말 간지러워서 웃음이 안 나올 수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문득 옛말 하나가 생각났습니다.
무슨 일을 하기 위해 남에게 아쉬운 부탁을 할 때 기분 맞춰주는 것을
누군가가 이렇게 표현했던 것이 생각났습니다.


‘X구멍을 살살 긁는다’

 

정말 실감나는 표현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속담입니까?

 

 


2
친구 한 녀석이 콘도회사에서 일합니다.

덕분에 가끔씩 공짜로 콘도에 놀러가곤 합니다.
스키를 즐기는 친구는 이게 웬 떡이냐며 광분하곤 합니다만
나는 스키를 즐기긴커녕 만져본 적도 없고

친구 자동차로 따라 가니까 차비도 안 드니
그저 쫓아가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그때는 겨울이어서 제법 스키장이 활기차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스키 시즌에 와보기는 처음이었습니다.
스키장 구경 한번 하겠다고 슬로프라고 하는 곳까지 갔습니다.
하지만 타는 사람이나 즐겁지 구경하는 사람에게는 그저 춥기만 할 뿐이었습니다.
다행히 스키는 만져본 적만 있다고 내게 자랑하는

한 친구와 같이 있게 되어 그리 심심하진 않았는데 다

만 춥고 배가 고파서 일단 무언가 먹어야 했습니다.

매점에 가니 음식 가격이 무척 비쌌습니다.
제일 싼 것이 감자를 구워 파는 것이었는데

그것도 자그마치 한개에 1,300원이었습니다.
둘이 합쳐도 돈이 3,000원이 채 안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아무 것도 안사긴 더 쪽팔려서 감자 두개를 주문했습니다.
물론 싸달라고 했지요. 거기서 어떻게 먹겠습니까?
그리고는 주문한 감자가 나올 때까지 애써 시선을 피하며
친구와 각자 다른 곳을 보고 있었습니다.

아무 생각없는 종업원은 얄밉게도 음료수는 뭘로 할 거냐고 물었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럴 때는 종업원들이 친절하게 물어봅니다.

목소리도 유난히 컸습니다.
친구와 나는 서로 대답없이 다른 곳만 계속 봤습니다.
뭘 보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봤습니다.

잠시 후 주문한 감자가 나오고 그 친구와 나는 봉투를 재빨리 집어들고
빠른 걸음으로 매점을 벗어났습니다.

어느 정도 떨어진 거리에 와서 봉투를 펴고는 둘이 깜짝 놀랐습니다.
봉투 안에 들은 것은 감자가 아니라 치킨이었습니다.
급하게 집어 오느라고 남이 주문한 걸 잘못 집어 온 것이었습니다.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 것은 시간이 훨씬 지나 집에 돌아올 때서야 들었고
일단은 ‘땡잡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친구는 한술 더 떠서 ‘신의 은총’이라는 되지도 않는 말을 인용했습니다.
아무 때나 ‘신의 은총’이란 표현을 사용하면 벌받는다고 하려다가
어쩌면 이것이 신의 은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억지로 하기로 했습니다.

어쨌든 둘이서 미친 놈처럼 먹었습니다.

한참을 먹다보니 무언가 허전했습니다.
하지만 왜 그러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저 먹는 행동만 기계적으로 반복하고 있었는데
친구 녀석이 혼잣말로 중얼거리는 소릴 듣고 왜 허전했는 지 알 것 같았습니다.
친구가 말했습니다.

 

“허~ 이 사람들은 콜라도 안 시켰나?”

 

맞습니다. 콜라가 없어서 허전했던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는 갑자기 머리속을 스치는 옛 속담이 떠올랐습니다.
‘물에 빠진 놈 건져주니 보따리 내놓으라 한다’는.

 

 


3
예전에 아주 높은 곳에 산 적이 있었습니다. 사는 곳이 얼마나 높은지
우리 집을 남들이 이렇게 불렀습니다.

 

‘약수터에 물 뜨러 내려가야 하는 집’

 

그런 집에 가려면 보통 끔찍한 일이 아닙니다.
언덕 입구에서부터 몇번씩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는 늘 허영호 대장처럼
집을 향해 올라갑니다.
제일 힘든 2/3 지점에 도착하면 조그만 강아지 한마리가 나타나서 짖어댑니다.
조그만 놈이라 그런지 짖는 소리도 아주 얍샵합니다.
신체적으로 매우 지쳐 극한 상황에 처했을 때
그 강아지 소리가 얼마나 얄밉게 들리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그때마다 발로 한 번 힘껏 차주려고 그 놈을 쫓아갑니다.
하지만 워낙 지쳐있는 상태인데다 그 강아지는 집 근처에서 짖다가
바로 집안으로 뛰어들어가기 때문에 달리 방법이 없었습니다.

집 안에 들어가면 더 크게 짖습니다.
되지도 않는 목소리로 짖다가 노래방에서 가끔 있는 소리처럼

‘삑사리’나는 소리도 들어봤습니다.

개가 짖다가 ‘삑사리’나는 걸 들으신 분 계시나요?

아무튼 대단히 짜증스런 놈이었습니다.
언젠가 잡히기만 하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비장한 결심을 늘 하곤 했습니다.
그 결심은 매우 비장하여 평소에도 보신탕을 즐겨먹었음은 물론
체력적인 안배를 늘 염두하면서 그 강아지를 잡는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여지없이 그 지점에서 그 강아지가 또 짖었습니다.
나도 여지없이 쫓아갔습니다. 그런데…
아주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졌습니다.
그 강아지가 매일 쏙 쏙 잘도 들어가던 그 집 대문이 닫혀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 녀석은 어쩔 줄을 몰라 했습니다.
머리통으로 대문을 힘껏 받다가 비틀거리기도 했습니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니 고개를 푹 숙이고 이렇게 짖었습니다.

 

‘깨갱.....’

 

너무나 가소로워 몇번 쓰다듬었습니다. 그리고 나즈막히 말했습니다.

 

“까불지 마라.....”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문이 열렸습니다. 주인이 문을 열어줬나 봅니다.
이 녀석, 아니 이 개새끼는 집으로 총알 같이 들어가더니

예전처럼 짖어대기 시작했습니다.
평소보다 더 발악을 하며 짖었습니다.
어이가 없어서 나는 그저 혼잣말로 중얼거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개새끼....”

 

그리곤 갑자기 옛말이 떠올랐습니다.


 

‘똥깨도 자기 집에선 강하다....’

 

 


4
속담은 우리 선조들이 남긴 소중한 재산입니다.
직접 경험해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자신의 생활에 이를 응용할 수 있다는 것도
매우 현명한 일입니다.
선조의 지혜가 자꾸만 잊혀져가는 요즘, 흥미있게 기억할 수 있는
속담 몇가지라도 떠올리면서 선조들의 지혜를 배웁시다.
아마도 우리의 처세를 더욱 현명하게 해 줄 겁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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