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군병장 김병장의 군대이야기

의무실

아하누가 2024. 6. 30. 01:14


군대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이 군대 얘기를 들을 때 가장 믿기지 않는
얘기가 하나 있다.
군인들은 배가 아프다고 하면 배에다가 ‘빨간 약’을 발라준다는 얘기가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군대는 그렇지 않다.
나름대로 번듯한 의무실도 있고 의사 출신 군의관도 있으며,
관련 학문을 전공했거나 소정의 자격을 갖춘 위생병(의무병이라고도 한다)도
있어 군대에서도 얼마든지 좋은 진료를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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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장은 며칠째 고열에 시달리고 있었다.
하늘은 가을답게 눈이 시리도록 파란데 김병장은 심한 몸살로 인해
하늘의 파란색을 자꾸만 노란색으로 느껴지고 있었다.
하루는 부대안에 있는 의무실에나 가라는 주변의 권유에

훈련을 빠지고 내무반에 있는데 고참 한명이 다가왔다.

 

“어디가 그렇게 아퍼?”
“몸살인가 본데 좀 심한 것 같아 의무실에 가려 합니다”
“이런, 몸살 정도를 이기지 못해서 아프다는 소리를 하는가? 
나는 여태까지 한번도 의무실을 간적이 없었어. 
왠만한 아픔은 정신력으로 이겨내기 때문이지…….”

 

 

꽤 이성적인 사고를 가진 고참으로 좋은 느낌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었지만
김병장으로서는 듣기 싫은 말이었다.

하지만 군대에서 정신력을 강조하는데에는 별 대꾸가 있을 수 없었다.

김병장은 일단 참을 수 있는 데까지 참아보기로 했다.

 

 

이틀이 지났다.
참는 것도 한두번이지 고열을 동반한 몸살 기운도 견디기 힘든데
계속되는 훈련과 보초 근무까지 나서려니 도저히 버티기 힘들었다.
낮에는 맑은 가을 날씨지만 산속의 밤은
참으로 견디기 힘든 추위의 연속이었기 때문이었다.

결국 김병장은 의무실을 찾았다.
마침 그날은 중대원 대부분이 훈련 대신

부대 주변 농민들의 일손을 돕는 날이어서 비교적 여유가 있었다.

의무실에 막 들어서는 순간 이게 왠일.
바로 엊그제 정신력을 강조하며 의무실에 한번도 가지 않았다는 그 고참이
의무실에 있는 것이 아닌가?
눈이 휘둥그레진 김병장을 한번 계면쩍게 쳐다보던 그 고참은

쑥스러운 듯이 말했다.

 

“다른 것은 정신력으로 참았는데 이건 안되더라구…….”

 

 

고참은 엉덩이에 뾰루지라 불리우는 커다란 종기가 생긴 것이었다.

 

 

 

                   *          *          *

 

 

 

“몸의 증세에 대한 귀관의 의견을 말해보게…….”


 

군인답지 않은 군의관의 인자한 말투에 김병장은 조금 마음이 가벼워졌다.
몸의 증세에 대한 의견을 말하라니 잠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옛날에 부모님께 들었던 군대의 의무실하고는 너무도 달라졌음에
김병장은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이다.

 

 

“저의 미천한 생각으로는 아마도 바이러스 침투에 의한
감기 증세인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며,

이는 계속되는 훈련과 보초 근무의 반복으로
심신이 허약해져 몸속의 면역이 그 기능을 상실한바 고열을 동반한
몸살 증세가 계속 거동을 불편하게 하고 있는 것으로 사료됩니다”

 

 

대답을 마친 김병장은 스스로 뿌듯해 하고 있었다.
하지만 군의관은 곧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갑자기 큰 소리를 치기 시작했다.

 

 

“야 이자식이 정신이 있나? 없나?

아파 죽겠는지 안죽겠는지를 물어본거지 뭐가 어째?
완전히 군기가 빠졌구만. 지금부터 쪼구려 뛰기를 300개 실시한다. 실시!!!!”

 

 

김병장은 대한민국의 육,해,공 3군에서도 보기 드물게 의무실 한쪽 구석에서
쪼구려뛰기를 계속 폴짝거리며 뛰고 있어야 했다.
역시 이곳은 군대라는 곳이 틀림이 없다는 생각을 하면서.

 

 

쪼구려뛰기가 100개를 지날 무렵 갑자기 의무실에 급한 환자가 들어왔다.
같은 중대원인 이 사병은

오전에 농번기 일손을 도우러 나갔는데 논에서 벼를 베기 위해 낫질을 하다

그만 자신의 왼쪽 엄지 발가락을 낫에 베이고 말았다.
꽤 많은 피를 흘리면서 들어왔고

군의관은 예리한 눈으로 이리저리 살펴보다가 급히 소리쳤다.

 

 

“너 똑바루 안해!!!”

 

 

그 틈을 이용해서 쪼구려 뛰기를 잠시 멈추고 있던 김병장에게 한 소리였다.
그 예리한 관찰력과 침착함에 감동하며 김병장은 102개부터 소리높여 외치며
쪼구려뛰기를 다시 시작했다.

속으로 한개를 빼먹었다고 좋아하면서.

 

 

“아무래도 안되겠네. 몇 바늘 꿰매야겠어. 이봐 위생병! 마취 준비하도록!”

 

 

환자를 이리저리 살펴보던 군의관이 위생병에게 지시했다.

마취……?

쪼구려뛰기를 하던 김병장은 자못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늘로 꿰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놀랄 일이었는데 거기에 마취까지 하다니.
참으로 지금의 군대라는 곳은 예전에 어르신들이 말하던 그런 군대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군대라는 환경이 새삼 친숙하게 느껴졌다.
제대해서 사회에 나가면 군대 얘기를 긍정적으로 하리라는 마음도 먹으면서.

하지만 김병장의 그 생각은 오래가지 못했다.

 

위생병은 의무실에 입실한 환자중 건장한 사병 4명을 부르더니

꿰매야 할 환자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다리를 꼭 잡고 있게 하는 것이었다.
그걸 마취라고 부르는 모양이었다.

결국 환자의 비명과 몸부림은 마취의 힘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었고 수술은 계속 이루어지고 있었다.

그 장면을 보던 김병장은 이런저런 복잡한 생각으로

쪼구려뛰기를 계속하고 있으려니 감기 기운이 다 달아나 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김병장은 생각했다.
세계 어느 병원보다 군대의 의무실이 가장 치료 능력이 탁월하다고.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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