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의 겨울은 유난히 춥다.
난방시설도 충분하지 않은 내무반이 그렇고 풍족하지 못한 방한복이
또한 그러하며, 집을 떠나 있다는 마음의 허전함이
겨울을 매섭게도 춥게만 느끼게 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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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월 중순인데 중대에서는 내무반의 난방 시설을 가동하지 않는다.
엄연히 규정에는
11월말부터는 난방 시설을 가동하도록 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보다 더 추운 혹한기를 따뜻하게 보내자는 이유 하나로
아직까지 난방도 없이 견디고 있었다.
추위를 무척이나 싫어하는 김병장은 내내 불만으로 가득차 있었다.
군대에서 겨울나기라는 것만으로도 쉽잖은 일인데
난방 시설까지 없는 채로 겨울을 보내고 있음이 커다란 불만이었던 것이다.
난방 시설이란 다름 아닌 ‘패치카’라고 불리우는 커다란 벽난로로,
연탄가루 같은 탄가루를 뭉쳐서 연료로 사용하는데
그런대로 화력은 제법이어서
실내 만큼은 따뜻하게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좀더 추운 날을 생각해서 이 연료를 아끼자니
이해가 가기도 하지만 그래도 추운 건 추운 것일 뿐이었다.
며칠째 계속 김병장은 그 패치카에 언제 불을 지피는가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었다.
뭐랄까?
패치카에 불이 들어온다는 사실만으로도 한 겨울을 훈훈하게 보낼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길 것만 같았다고 할까?
그 생각은 김병장 뿐 아니라 중대원들 모두의 생각이었으므로
패치카에 불을 붙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서는 모두들 불만이 가득했던 것이다.
상사들도 이러한 분위기를 알고 있는지
어느 날 오후 중대장의 교육이 있다는 지시를 했다.
모두들 ‘패치카는 좀 더 있다 지필테니 조금만 참아달라’는 지시일거라
대충 짐작하고 마음의 준비들을 하고 있는 듯 했다.
* * *
중대장은 조금 미안했는지 그답지 않은 작은 목소리로 중대원들을 향해 묻는다.
“제군들! 요즘 날씨가 견디기에 추운가?”
추워도 그 상황에서 춥다고 대답할 군바리는 한명도 없을 것이다.
단순한 사고밖에 못하는 군바리지만
잔머리 하나 만큼은 다른 어느 사회의 구성원보다도 뛰어난 것이다.
“옛! 하나도 안 춥습니두아~!!!”
하지만 내심 미안했는지 중대장은 다시 묻는다.
“그러지 말고 솔직하게 얘기해 보도록! 춥나 안춥나?”
“예~ 전혀 안춥습니다!”
“여러분들이 솔직히 말해야 대책을 세울 것이 아닌가? 앙?”
중대장의 목소리에 조금씩 힘이 들어가면서 마치 화를 내려는 듯한 말투로
바뀌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나 곧 중대장은 냉정을 찾은 듯한 말투로 다시 물었다.
“예……. 춥진 않은데…….”
중대원들의 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춥단 말이야? 안 춥단 말이야?”
중대장이 다그치며 묻자 중대원들은 대답을 회피한 채
슬금슬금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김병장은 분위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느끼면서
질문의 의도를 파악하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중대장은 같은 질문을 여러번 반복했다.
“사실 ……. 좀 춥습니다”
한 사병이 이렇게 말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여기저기서 추워서 견디기 힘들다는 말과 함께
난방을 해야겠다는 말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몇명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나니 아까와는 다른 분위기였다.
온통 추워서 못견디겠다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오가는 말들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중대장이 입을 열었다.
“여러분들이 춥다고 하니 내 책임인 것 같아 나도 대책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모두들 반가운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며 난방 시작의 선포를 기다리는데
중대장은 엉뚱한 소리를 꺼낸다.
“여러분이 춥다고 하니 지금부터 자가발전을 실시한다. 자가발전 실시!”
“자가발전?”
“자가발전?”
군에 와서 처음듣는 용어였다. 잠시 분위기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소근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자가발전이 뭐야? 너 알아?”
“모르지……. 자기발전을 잘못 말한거 아닐까?”
“혹시 자위행위를 잘 못 말한 거 아닐까요?”
“넌 가만히 있어 임마!”
“그럼 부모에게 효도하라는 뜻 아닐까요?”
“너 좀 있다가 화장실 뒤로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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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후 중대원 모두는 군기가 빠졌다는 이유로 완전 군장을 한 채
연병장을 뺑뺑 돌고 있었다. 땀을 뻘뻘 흘리면서.
그 대열속에서 김병장은 또 하나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군대라는 곳은 인체가 가진 에너지가 참으로 무한한 것이라는 사실도
가르쳐주는 곳이라고.
아하누가
이 글을 쓴 시절이 1990년말이니 오래전 글이다, 어째 어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