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건의 발단은 최중사라는 한 연구대상급에 해당하는 인물이
새로 전입오면서 시작된다(중사라는 계급은 장교도 아니고 사병도 아닌,
그 둘의 가교 역할을 하는 그런 계급이다 ).
최중사는 히스테리컬하면서도
착각성 우월감에 깊이 빠져 있는 그런 성격의 인물이었다.
그로 인해 육군병장 김병장의 고달픈 군생활은 황금기를 맞게 된다.
뭐가 그리 밉보였는지 최중사는 김병장만을 유독 괴롭혔다.
총 한번 잘못 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남의 실수나 잘못이라도 김병장은 홀로
특수 교육이라는 명목의 배려를 받곤 했다.
다만 그런 역경 속에서도 꿋꿋이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최중사가 중대원 전원에게 비정상적이고
이해 못할 성격의 - 한마디로 또라이라는
얘기다 - 소유자로 인식되고 있었으므로
그에게 유난히 밉보인, 시쳇말로 찍힌 김병장은 상대적으로 중대원 사이에서
많은 동정을 받음과 동시에
그 괴롭힘으로부터 잘 버티어 내는 점을 인정받은 수많은 찬사 때문이었다.
심지어 둘 사이에 어떤 얘기라도 오가면 그것은 중대의 빅뉴스로 전해지고
또 많은 동료 사병들이 ‘오늘 김병장이 한방 먹여주지 않을까……?’하는
기대까지 몹시 컸던터라
이미 김병장은 최중사에 관한한 많은 팬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는
처지가 되었고 따라서 최중사와의 갈등은 점점 더 심해져갔다.
그런 최중사는 당직 근무를 하는 날이면 꼭 이상한 교육을 시킨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어떠한 주제를 정해 놓고
거기에 관한 토론을 시키는 것이다.
토론 자체가 싫다는 것이 아니고 그 토론의 주제가 유치하기 이를 데 없으며
토론을 시키는 이유 또한 자신의 착각성 우월감을 과시하고자 하는
불순한 의도가 담겨져 있어 모두가 다 싫어하고 있던 시간이었다.
다만 유일한 즐거움이 있다면 그것은 김병장과 문제의 최중사 사이에 오가는
예리한 신경전 뿐이었다.
한마디로 이런 식이다.
최중사 : 귀관들의 카타르시스에 대한 개념은 어떠하며 병영생활에서 느끼는
카타르시스는 어떤 종류의 것인가?
중대원 : (무슨 개소리냐는 듯) 잠~ 잠~~~~
최중사 : 음~ 나는 우리 중대에서 김병장이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는데
(비꼬는 말투로) 김병장 생각은 어떤가?
김병장 : 저는 카타르시스가 뭔지 잘 모르는데요…….
중대원 ; (여기저기서 억지로 참는 웃음) 키득 키득…
최중사 : (울그락푸르락해지는 얼굴로) 오늘 토론은 여기서 끝!!!!
물론 그 이후에 김병장은 호된 고생을 하게 된다.
그래서 많은 중대원들이 최중사의 내무교육이 있는 날이면
육군병장 김병장을 보초 근무로 보내
계급에서 불리한 정면 대결을 피하게 하곤 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던 어느날 김병장은 문제의 최중사와 또 한번
그 유치한 토론 시간에 마주치게 된다.
* * *
최중사는 늘 하던대로 잔뜩 들어간 어깨의 힘을 감당하기 힘들다는 듯
자신이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지성적인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한다.
“다음 사례는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육
군 00부대의 한 사병이 군에 입대하기전 동거까지 하며
사귀던 여자 친구가 있었는데 그 여자 친구가 지금은 다른 남자와
동거를 한다고 한다.
그런데 그 남자는 다름아닌 그 사병의 친구라는 것이다.
문제의 이 사병은 지금 탈영직전이라고 하는데
귀관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하다고 보며
또 우리는 어떤 마음 자세로 군 생활을 하여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모두들 잠잠해졌다.
할말이 없어서라기 보다 대꾸하기가 싫은 이유에서다.
최중사의 토론은 항상 그런식이었다.
뻔한 결론과 뻔한 얘기를 오가게 하곤 중간중간에 끼여들어
덕담같은 한마디를 즐기는 것이었다.
늘 그래왔던 자연스런 모습으로 최중사의 눈은 김병장을 주시하고 있었고
모든 중대원 또한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김병장을 바라보고 있다.
결국 강제적 지명에 의해 본의 아닌 발언권을 행사하게 되었지만
김병장은 달리 할 말이 없었다.
할 말이라곤 뻔한 대꾸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저 많은 기대의 시선들을 외면할 수도 없었다.
김병장은 담담히 말했다. 그것은 있지도 않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라고.
만명에 하나 있을까 말까 한 일을 가지고 시간 허비하지 말자고.
토론 자체를 무시해 버리자는 의도였다.
주위의 동료 사병들이 고개를 끄떡이기도 하고
야릇한 미소를 짓기도 하면서 김병장을 무언으로 동조하고 있었다.
이제는 더 이상 밀리다가는 군생활이 힘들다고 느껴졌는지
최중사는 강공책을 쓰기 시작했다.
심하게 화를 내며 욕을 했다. 군대 생활 잘 하자고 하는 것인데
성의가 없다느니 내가 잘 살자고 하는 것이냐, 넌 동료 의식도 없느냐… 등등…
그리고는 토론을 계속하자고 한다.
아마도 이 험악한 분위기 안에서 자신의 의지대로 토론을 진행시키고,
나중에 이를 비교해서 김병장을 완전히 박살내려는 의도였던 것이다.
최중사는 이 분위기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로 모범 사병인 윤상병을 지목했다.
하지만 예상을 깨고 윤상병은 조용하지만 단호한 말투로 이렇게 말했다.
“아마도 두 남자는 특이한 동서의 관계로 발전되니까
앞으로 그 우정이 더욱 돈독해 질 것으로 생각됩니다”
“……?”
최중사는 뒤집어 질 노릇이었지만 모범 사병이라는 프리미엄과
차분하고 조리있는 말투에 성질 한번 낼 수 없었다.
다시 한번 주위를 험악하게 하더니 이번엔 또 다른 사병을 지목한다.
법대생 출신으로 고시 준비를 하고 있던 김상병은 또 이렇게 말했다.
“00에 관한 법 제 00조 0항과 최근의 몇 판례에 의해서
이 경우에는 사실혼으로 인정되므로 위자료 청구가 가능합니다”
* * *
이야기는 여기서 맺는다.
그 뒤의 일이야 읽는 사람의 상상에 맡기고.
10년이 지난 지금,
당시 윤상병은 육군병장 김병장과 같은 사무실에서 사업에 한창이고,
당시 김상병은 지방의 한 검찰청에서 검사로 재직중이며
지금까지도 우의를 다지고 있다.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조국을 지키던 한 군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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