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경기는 MBC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1. 의미있는 평가전
잉글랜드는 세계 최강이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몇 안되는 축구 강국이다.
이런 팀과 평가전을 치를 수 있는 것이
개최국이 가진 프리미엄이요 또한 커다란 행운이다.
이런 강팀을 맞아 지지 않고 1:1로 선전했으니 강팀을 찾아 평가전을 치루려는
히딩크의 의도가 성공한 셈이다.
우리는 큰 대회를 앞두고 이기는 '맛'을 느끼게 하려고,
또는 주변의 이목을 의식해서 약한 팀을 불러 상대한 적이 몇번 있었다.
결국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준다고 볼 때
그 방법은 결코 옳지 않은 방법이라는 것이 입증된 셈이다.
다만 한가지 아쉬운 점은 잉글랜드가 제 실력을 다 발휘했다고 볼 수 없는
경기였다는 점이다.
우선 베컴이나 제라드 등 주요 선수들이 결장했고,
또한 시차 등 컨디션 조절이 채 안된 상태라는 점이 그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원인인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우리와 달리
느슨했다는 점이 아쉽다.
정신력이 유난히 강조되는 축구라는 경기에 있어서 정신적인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그런 면에서 잉글랜드는 이날의 경기보다 좋은 멤버와 컨디션,
그리고 경기에 임하는 자세를 달리 해서 나올 본선에서는 다른 경기를 보일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이날의 스코어에 만족해서는 안될 것이다.
월드컵에서 우리와 상대할 나라들도 정신무장을 새롭게 하고 경기에 임할 것이다.
2. 설기현, 언제가 되어야 믿음직한 모습을 보여줄 것인가?
이날 최전방 공격수로 선발 출장한 설기현 선수는 아직도 컨디션을 못찾고 있다.
최근 6개월간 제대로된 플레이를 본 적이 없다.
경기에 영향을 줄만한 몸 상태라면 선발에서 제외되었어야 하고
컨디션을 회복하지 못했다면 개인적으로도 문제가 있다.
이날 경기처럼 몸싸움에도 제공력에도 문제가 있다면
앞으로 월드컵에서 뛰긴 힘들 것이다.
무엇이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몸도 무겁고 자신감도 없어 보인다.
얼른 자신감을 찾는 것이 개인으로나 팀으로나 도움이 될 것이다.
첫경기가 열리는 남은 15일 동안 제 컨디션을 찾았으면 한다.
설기현은 이날 전반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다 후반 초반 안정환과 교체되었다.
3. 이천수, 그렇게 축구하면 안된다.
이천수 얘기를 하기전에 잠깐 설명할 부분이 있다.
선수들이 가진 경기력 외에 정신적으로 중요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얼마나 흔들림없이 자신에게 냉정할 수 있냐는 부분이다.
주로 훌륭한 선수들은
지고 있을 때나 이기고 있을 때나 변함없는 플레이를 한다.
그런 선수가 많은 팀은 지고 있거나 이기고 있을 때도 흥분하지 않고
평소 훈련한 대로 축구를 한다. 아주 중요한 부분이다.
한국의 홍명보나 일본의 나카타 선수가 주목을 받는 이유도
언제나 흔들림없이 플레이를 한다는 점이다.
흥분을 잘한다는 것은 두가지가 있다.
우선 심장이 약한 경우다.
큰 대회나 중요한 순간에 발이 땅에 붙어버리는 것처럼 긴장하는 경우다.
속된 말로 '얼었다' 또는 '쫄았다'는 경우다. 우리 팀에도 그런 선수가 몇 있다.
그런가 하면 또 하나의 경우는 무언가 잘 해보려고, 무언가 보여주려고
지나치게 흥분한다는 점이다. 이 역시 속된 말로 '오바한다'고 한다.
이 경우에 해당하는 대표적 선수가 최용수와 이천수다.
이날의 이천수 선수의 플레이를 보면 이 경우에 잘 맞아 떨어진다.
전 경기의 선전과 강팀을 만나
세계의 이목이 집중된 경기에서 무언가 '튀어보려고' 했다.
팀의 승리를 위한 플레이라기 보다 자신이 무언가 보여주려는 의욕이 앞섰다.
나는 이날 이천수의 플레이를 히딩크 감독이 눈여겨 보았으리라는 생각이다.
후반 차두리의 교체 투입이 예상되었으나
이천수보다 컨디션이 안좋은 최태욱과 교체되었다.
아마 이천수의 이런 문제는 본선에서도 딜레마가 될 지 모른다.
4. 잉글랜드 축구
잉글랜드는 강하다.
힘의 강함은 눈에 띄게 차이가 났으며 힘이 좋을 뿐만 아니라 빠르다.
한발 앞선 볼처리는 우리 팀의 공격이 번번히 끊겨 역습을 초래했다.
그러나 마이클 오웬을 제외한 공격진은 예상보다 날카롭지 못했다.
오웬과 투톱을 이룬 헤스키도 예리한 맛이 없고
후반에 나왔다는(이 선수를 화면에서 보지 못해서 나왔는지 안나왔는지도
모르겠다) 세링험도 위력적이 못하다.
아마도 이 문제는 잉글랜드 팀의 고민거리일 것이다.
오웬이 빠진 후반은 오히려 밀리는 듯한 인상을 주었으니
잉글랜드도 죽음의 조에서의 예선이 걱정될 것이다.
5. 고비를 넘기고 반전으로
전반 20분경에는 잉글랜드의 강한 압박에 수비수들이 허둥지둥댔다.
지난 경기와 달리 공을 걷어내기에 급급했으며 공격 또한
단단한 상대 수비와 뛰어난 제공권에 밀려 제대로 된 전진을 못하고
불안하게 공을 뒤로 돌렸다.
중요한 점은 그럴 때 또 실점을 하면 대책없이 무너진다.
5:0 스코어는 시간 문제다.
그런데 우리는 그 고비를 잘 넘겼다.
이 부분은 우리가 강팀 잉글랜드를 만나 한골을 넣었다는 부분보다 훨씬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는 전반에 보여준 홍명보 선수의 중거리 슛이 큰 힘이 되었다.
비록 득점과 연결되진 않았지만 시원한 한방은 분위기를 바꾸었으며
모든 선수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었다.
그런 면에서 홍명보의 플레이는 여러 의미가 있다.
후반에 하프라인 근방에서 상대의 역공을 반칙으로 막는 장면에서는
그 노련함이 돋보인다.
(나중에 뉴스에 홍명보의 인터뷰하는 장면을 얼핏 보았는데
경기 MVP에 선정된 듯하다.)
후반 초반에 홍명보는 적진 깊숙이 공격에 나서
매우 뛰어난 볼 배급을 보여주었는데
그것이 작전의 일부인지 아닌지 궁금하다.
한국 축구는 아주 특이하게도 플레이 메이커가 없다.
세계적으로도 찾기 힘든 독특한 경우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미드필더 싸움에 충실하고 압박도 강하다.
선수들 체력도 강해졌고 경기를 풀어가는 것도 자연스럽다.
'이 팀에는 다비즈가 없다!'라는 히딩크의 판단이 이제 그 결실을 찾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런 부분으로 볼 때 윤정환의 기용엔 다소 인색할 것으로 예상된다.
6. 그외 선수들
안정환은 여전히 컨디션이 좋다.
한국 선수들 중엔 가장 기본기가 안정적이고 드리블도 뛰어나다.
후반에 아주 좋은 드리블로 적진을 돌파하다 상대 태클에 넘어졌는데
주심은 파울로 인정하지 않았다.
페널티킥이거나 혹은 라인 바로 앞에서의 프리킥이었는데 매우 아쉽다.
하지만 그것 또한 강팀의 프리미엄이다.
축구를 많이 본 사람은 주심의 휘슬과 강팀의 관계가 어떤 것인지 잘 알 것이다.
김태영 대신 들어온 김남일은 선전했다.
다만 후반 끝무렵에 하프라인 부근에서 고통스러운 자세로 서있었는데
곧이어 상대와 충돌 뒤 들 것에 실려나가면서 이민성과 교체되었다.
김남일은 중요한 선수다.
몸도 그리 좋지 않았는데 부상 정도가 염려된다. 꼭 있어야 할 선수다.
잉글랜드 같은 스타일이라면 최태욱보다는 차두리가 나을 것이다.
차두리는 후반의 후반에 교체되어 상당히 좋은 돌파를 보여주었다.
시간이 갈수록 향상되는 기량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대감을 가지게 한다.
그의 미래를 계속 지켜보는 것도 축구팬의 기쁨일 것이다.
이제 잉글랜드와 평가전은 끝났다.
5일 뒤에는 또 하나의 강팀 프랑스와 평가전을 치룬다.
하지만 이 경기는 다소 김빠진 경기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우리는 첫 경기가 6월 4일이지만
프랑스는 개막일인 5월 31일에 경기를 해야 하는 팀이니
절대 무리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우리도 무리하지 말자.
어떤 식으로 실점을 하는지 프랑스의 강한 수비벽을 뚫을 수 있을지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어 보자.
이제 월드컵은 시작되었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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