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인저리타임

2002년 5월 16일 한국 : 스코틀랜드 평가전 (부산)

아하누가 2024. 6. 29. 22:37


 

 

<부산에서 열린 이 경기는 TV를 통해 보았습니다>

 

 

 

1. 승리의 원인

 

모처럼 대표팀의 활기찬 기동력을 보여주며 4:1의 대승을 거두었다.
승리가 있으면 반드시 그 원인이 있게 마련, 그렇다면 통쾌하다고 할 수 있는
오늘의 승리에는 어떤 원인이 숨어있을까?

 

모처럼의 낭보를 폄하시키려는 생각은 조금도 없지만
승리의 원인은 불행히도 우리가 잘했다기 보다는 상대가 약했다는 것에 있다.
조금 아쉬운 부분이다. 폴란드를 대상으로 하는 경기였다지만
폴란드는 그렇게 약한 팀이 아니다.

스코틀랜드는 이미 월드컵 본선 진출에 실패했고 2004년 유럽선수권대회와
2006년 월드컵을 대비해 젊은 선수들로 구성된 팀이다.
멤버의 대부분이 잉글랜드 프리미어 리그에서 뛰고 있다고는 하나
A 매치 경력이 10경기가 넘는 선수가 거의 없는 어린 팀이다.
그러니 경기의 승부에 대한 의미가 없는 팀이며

이런 팀이 선전해주길 기대하는 것도 다소 무리가 있다.

다만 독일 출신 감독인 포그츠의 자존심에 일말의 기대를 가졌으나

준비되지 않은 팀은 아무 것도 보여주지 못했다.
오히려 스코틀랜드 입장에서 좋은 경험이 되었을 것이다.

 

 

 

2. 대 폴란드전에 대비한 시뮬레이션

 

시간도 저녁 8시에 맞추고 장소도 첫 경기인 폴란드전이 열리는 부산으로 정했다.
본격적인 홈그라운드의 잇점을 살리는 훈련에 들어간 셈이다.
후반20분 윤정환의 투입은 풀리지 않는 경기의 해결사 역할을 주문하고 있고,
지친 홍명보가 빠진 자리에 유상철로 대체하는 부분은
실전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상황을 염두해 둔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후반 30분 차두리, 최태욱의 투입은 히딩크 감독이 제일 어렵게 생각하는
좌우 공격수가 아직 확정되지 않았음을 볼 수 있다.
상대의 약한 기량으로 인해 이 용병술은 대단한 성공을 이뤘다.
교체로 들어온 안정환이 2득점을 했고, 교체하자마자 윤정환이 득점했으며
차두리 최태욱도 활발하게 움직이며 거의 득점과 다름없는 상황을 맞기도 했다.
우리 축구가 빠르고 단단해졌다.

특히 중앙 측면에서 어설프게 문전으로 띄우는 크로싱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
이 고질적인 뻥 축구는 '생각하는 축구'라는 명제 앞에 자취를 감추고
조금 더 선진적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는 매우 중요한 부분으로,

선수들이 전술 이해가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다는 뜻도 된다.
특히 눈에 띄는 건 볼을 캐칭하는 스타핑과 트리핑에서
매우 탄탄한 모습을 보였다는 점이다.
종전에 수많은 찬스를 볼컨트롤 실수도 무산시켰고,
컨트롤 한번의 실수가 곧바로 실점하고 연결되기도 했던 장면을 생각한다면
이 부분은 굳이 약한 상대라는 상대적인 면으로 해석하더라도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다만 좌우 측면 공격이 날카롭지 못했다.
폴란드는 측면 수비수들이 느리다. 그점을 어떻게 공략할 수 있는지
이날의 경기에선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의 첫 상대인 폴란드 골키퍼는

세계 최고의 골키퍼라는 점을 상기해야 한다.
두덱이었다면 첫 득점인 이천수의 개인기와 두 번째 득점인 안정환의 슈팅이
제대로 골문을 통과했을지 궁금해진다.

 

후반 최진철 대신 들어온 이민성의 투입은 부상중인 그가 출전이 가능한지
테스트하는 것 같다.

하지만 빈곤한 상대팀의 공격력 때문에 몸 상태를 체크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평가전은 강팀하고 해야 한다. 

 

 

 

3. 그림같은 4득점

 

최근 국가대표 경기를 보면서 2득점 이상 올린 경기도 드물었지만
4득점이 하나같이 흠잡을 데 없이 그림같이 연결된 것은 아마 처음인 듯하다.
하나하나 되집어보자.

 

첫 득점인 이천수의 득점은 중앙 미드필더로 활동하던 유상철의 롱킥에서 시작된다.
오프사이드를 피해 수비보다 앞서 가슴으로 정확히 볼 컨트롤,
침착하게 수비수와 골키퍼를 제쳤으나 마지막 드리블이 조금 긴 상태.
그러나 이천수는 마치 쇼트트랙 스타 선수마냥 다리를 밀어넣어 '기어코' 득점으로
연결한다. 특히 슈팅으로 연결된 마지막 볼처리는
이천수가 평소 얼마나 승부욕이 강하고 근성이 있는 선수이며 또한 이 경기에
얼마나 독한 각오를 했는지 보여준다. 이천수의 장점은 바로 그것이다.
이날 경기에서 이천수는 다른 선수보다 훨씬 가벼운 몸 상태를 보임으로
차두리 등 동료와의 경쟁에서 앞서가게 되었다. 남은 두 번의 평가전을 더 지켜보자.

 

두 번째 득점 역시 깔끔하다.
현란하게 상대 문전을 교란하던 드리블 끝에 안정환의 슈팅은 네트에 정확히 꽂혔다.
드리블이 조금 길었지만 상대수비수도 당황하고

또 주변에 동료선수들(공을 가지지 않고 있던 선수들 -

따라서 공을 가지지 않은 상태의 플레이가 얼마나 중요한 지 보여주는 대목이다)의

보이지 않는 도움으로 멋진 슛을 성공시킨다.
다만 아쉬운 점은 상대 골키퍼가 자신의 왼쪽으로 휘어져 들어가는 공을
왼쪽으로 쓰러지면 오른 손으로 쳐내려했다는 점이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이다.
골키퍼의 기량이 의심스러워지는 동작이다.

앞서 말했지만 폴란드의 두덱은 다를 것이다.

 

세 번째 득점은 활발하고 정확한 숏패스로 이루어진 작품에
마지막으로 윤정환의 너무도 완벽한 슈팅으로 득점에 성공했다.
교체된지 얼마 되지 않은 시간의 득점이라 윤정환 자신도 매우 기뻤을 것 같다.
오른쪽에서 짧게 밀어준 공을 오른 발로 세차게 감아 찬 슛.
바깥쪽으로 점점 휘어지며 가속이 붙는

그러한 슛은 골키퍼로서는 알아도 막을 수 없는 슛이다.

이 득점이 윤정환에게는 커다란 힘이 될 것 같다.

 

마지막이자 네 번째 득점은 약 7~8년전쯤에 우리 대표팀이
동대문 운동장에서 아르헨티나의 무슨 프로팀과 가진 평가전에서 나온
김도훈의 그림같은 오버헤드킥 이후 가장 멋진 골이다.
측면에서 땅볼로 패스된 공을 안정환이 가랑이 사이로 흘리고 골문으로 향하고
이때 뒤에 있던 윤정환이 다시 스루패스,

이를 잡은 안정환이 강슛할 듯하다 멋진 칩슛.
공은 골키퍼가 도저히 잡을 수 없을 만큼의 높이로 떠서
도저히 골문안으로 들어가지 않을 수 없는 정확한 각도와 지점과 높이로 들어갔다.
이런 득점은 하는 사람은 물론 보는 사람도 경탄하게 한다.
아마 이날 경기장을 찾은 축구팬은 5년 동안 나올 멋진 골 장면을
한번에 보았을 지도 모른다.
직접 가진 못했지만 부산의 관중석은

온통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음이 안봐도 눈에 선하다.

 

 

 

4. 옥의 티인 실점

 

통쾌한 득점의 환호도 잠시. 한가지 옥의 티가 있다면 실점 장면이다.
축구를 하면 실점할 수도 있겠지만

이날의 실점이 우리 팀에게 주는 의미는 매우 크다.
문전 프리킥으로 인한 헤딩슛을 허용한 이 실점은
대인마크의 실패와 부족한 제공력 장악 등 대 폴란드전을 생각했을 때
너무도 카다란 헛점을 한번에 보여주었다.
실점할 땐 실점하더라도 이런 식의 실점은 곤란하다.

우리나라 수비수는 모두 5명.

물론 송종국, 김남일, 유상철 등 멀티플레이어들이
수비에 중용될 수도 있지만 기존의 노장 트리오의 수비력은 다소 불안하다.
이런 문제는 앞으로 있을 잉글랜드전과 프랑스전에 다시 확인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비교적 안정된 수비력으로 확인되면 몰라도
만약 수비력의 빈곤이 드러난다면 16강은 비관적이다.

아까운 득점 찬스도 많이 놓쳤다.
축구 경기에서 득점찬스가 모두 득점에 성공할 수야 없겠지만
그래도 너무나 가까운 거리에서의 좋은 찬스를 놓쳤다.
현대 축구는 강한 미드필더 싸움으로 인해 슈팅찬스가 많이 생기지 않는다.
이점을 생각한다면 너무나 아쉬운 대목이다.

 

 

 

5. 경기외의 단상

 

중계를 맡은 MBC도 실전에 대비한 시뮬레이션 같다.
근래 보기 드물게 중계방송이 입체적이다.
차두리의 교체 투입 때 약간 캐스터가 오버했지만

그 정도야 그냥 애교로 넘어가자.

 

우리 선수들은 외국 선수와의 경기에서 항상 친근하지 못하다.
외국에서는 프로팀끼리도 한시즌에 두 번씩 밖에 못 만나니

경기후에 유니폼을 교환하는데
이땅에서 벌어지는 경기에선 그런 장면을 찾을 수가 없다.
중계방송 끝부분에 옷을 갈아입으려는 듯한 두선수를 보여주긴 했지만
후에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우리는 그런 사교에 너무 인색하다. 너무 쑥스러워 한다.
월드컵을 치루는 나라니 이제 그럴 필요없다.
경기가 아무리 치열했다고 해도 경기가 끝났으면 다 잊어야 하고 서로 격려해야 한다.

16강을 향해 한발씩 내딛고 있는 우리팀의 기량이 갈수록 단단해지는 것 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다음에 열리는 잉글랜드와 프랑스 평가전이고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전이다.

모든 것은 결과가 말해줄테니 팬들도 조금은 냉정하고,
그리고 조금은 묵묵히 기다려보자.
좋은 성적을 내는데에는 팬들도 일조해야 할 것이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