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칼럼-인저리타임

2002년 5월 26일 한국 : 프랑스 평가전 (수원)

아하누가 2024. 6. 29. 22:39


 


<이 경기는 MBC 방송의 중계를 TV로 보았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바로 써야 하는 관전평이 바쁜 일로 인해 잠시 늦어지다 보니
보도를 이미 많은 얘기들을 듣게 되었다.
이미 들어버린 얘기들은 냉정한 판단을 하는데 커다란 장애가 된다.
따라서 이번 경기는 경기의 내용적 분석보다
경기 외적인 내용들을 다루는 것이 더 합리적일 것 같다.

 

 

 

1. 지고도 이긴 것 같은 경기

 

경기가 끝나고 많은 사람들이 흥분했다.
2:3의 패배였는데도 사람들은 아직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왜 그럴까?
거기에는 세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세계최강팀인 프랑스와의 선전이다.
그것을 조금 더 자세히 분석해보면 힘과 힘, 스피드와 스피드의 대결에서
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기가 후반에 접어들면서 그 기싸움은 극에 달했다.
누군가는 분명히 허물어져야 하는 팽팽한 대립에서 오히려 상대를 앞섰다고,
상대가 먼저 쓰러졌다는 느낌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점은 그동안 우리팀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강대국에 위축되는 분위기와
유럽징크스를 말끔이 해소할 수 있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더욱이 상대가 정확히 1년전 0:5의 패배를 안긴 그 팀이며
그때보다 오히려 더 강한 전력으로 경기에 임했다는 사실이 그러한 점을
더욱 값지게 해주었다.

 

두 번째는 상대가 봐주었다는 느낌을 덜 받았기 때문이다.
큰 경기를 앞두고 벌어진 평가전에서 전력을 다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면은 우리팀 또한 마찬가지여서
후반 종반의 방심과 스코어의 패배 등 우리 역시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즉 우리도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인식되어 경기는 흠잡을 데 없이
팽팽한 접전이었음을 확인한 이유였다.

 

마지막은 절묘한 스코어였다.
흔히 펠레스코어라고 말하는 3:2의 스코어도 사람들을 열광시키기에 충분했고,
월드컵을 개최한 주인으로서 세계최강팀을 이긴다면
오히려 월드컵의 권위가 다소 줄어들지 않겠느냐는(?)

국민들의 넉넉한 마음씀씀이가
'아름다운 스코어'를 만들어 더욱 만족스럽게 했다는 점이다.
물론 이것 말고도 더 많은 이유로 사람들은 열광했지만
대략의 이유는 아마 그러했을 것이다.

 

 

 

2. 통쾌한 득점, 아쉬운 실점

 

첫골을 장식한 박지성의 득점은 가히 월드컵 수준이다.
그렇게 빠른 볼컨트롤과 빠른 타임의 슛,
그리고 지면으로부터 약 50cm의 높이로 날아가는 슛을 본 적이 있는지
기억을 더듬게 될 정도로 뛰어난 득점이다.
이런 득점에 흥분하지 않을 관중은 어디에도 없다.
박지성은 이 경기에서의 활약으로 완전히 최고의 컨디션을 유지하게 되었다.
첫 경기에서 긴장하지 않는다면 분명 좋은 플레이를 보일 것이다.

경기와는 약간 다른 내용이지만 박지성 선수가 인터뷰하는 것을 보면
참 말을 또박또박 조리있게 잘한다. 아마도 많은 사람이 그렇게 느낄 것이다.
하지만 동료 스타선수들에 비해 튀지않는 그 모습에 가리워져있을 뿐이다.
튀지는 않지만 강단이 있고 똑부러진 인터뷰를 한다.
그런 면에서 큰 경기를 앞두고 긴장하거나 흥분해서 제 기량을 발휘하지 못하는
실수를 범할 확률은 상대적으로 적은 것 같다.

 

두 번째 득점을 올린 설기현 선수는 이 득점이 개인적으로나 팀으로나
엄청나게 커다란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다소 침체에 빠진 듯한 모습으로 많은 사람들을 실망시키기도 했으니
이 득점으로 인해 설기현은 커다란 힘을 얻게 되었다.
본선을 앞둔 팀에 있어서는 매우 고무적인 현상이다.
첫 경기인 폴란드전에 주전으로 출장할 것이 유력해진다.
따라서 최용수의 출전 기회는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되었다.
아마도 히딩크 감독은 황선홍, 설기현 그리고 안정환 체제로

공격라인을 형성할 것이다.

 

 

멋진 득점에 비해 실점은 매우 아쉬운 부분이다.
실점한 3골이 모두 측면에서 올라온 크로싱에 의해 만들어졌다.
이는 중앙에서 대인마크를 해야 하는 수비진들의 문제로
공격의 성공에 도취할 것이 아니라 이 부분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본선에서의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없다.
첫 번째 실점은 두명의 수비수 사이로 뛰어들어

가위차기로 슛을 날린 트레제게를 대인방어 하지 못했고,

 

두 번째는 크로싱에 대한 송종국의 안이한 수비자세 때문이었다.
날아오는 공에 시선을 빼았겨 수동적으로 헤딩을 하려다
뒤에서 뛰어들어온 뒤가리를 놓쳤다.

세 번째 실점 또한 마찬가지로 수비에 참여한 설기현(수비참여는 좋았지만)이
낙하지점을 놓쳐 뒤에 있는 르뵈프에게 슈팅을 허용한다.
낙하지점이 틀렸다면 얼른 돌아서서 제2의 동작으로 수비에 임했어야 하는데
그냥 점프만 하고 공을 뒤로 넘겨 상대에게 여유를 주었다.
세 장면 모두 대인방어에 충실했다면 실점을 줄일 수 있었던 아쉬운 장면이다.

 

 

 

3. 종료 직전의 핸들링

 

2:3으로 뒤지던 경기 종료 직전.
우리 선수의 강한 슈팅이 넘어진 상대 수비수의 손에 닿는다. 핸들링이다.
그 위치에서 핸들링이면 페널티킥이다. 그러나 심판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자, 이부분은 상세히 집어보자. 바로 이 장면에서 생각나는 경기가 있다.

1994년 미국 월드컵 8강전 독일과 불가리아전,
그리고 1990년 이태리 월드컵 8강전 카메룬과 잉글랜드전이다.
이 두 경기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바로 애매하고도 모호한 상황에서 페널티킥이 선언된 경기다.
그 페널티킥으로 잉글랜드는 이겼지만 독일은 역전패당했다.
하지만 경기중 페널티킥이 가지는 경기 전반의 영향은 엄청나게 크다.

세계 축구는 강팀에 커다란 기득권이 있다.
정정당당한 스포츠에 이게 무슨 소리냐고 하겠지만

충분히 의심을 살만한 일이다.

다시 말해 강팀에는 너그럽고 약팀에겐 인색한 것이 바로 페널티킥이다.
이 점은 이미 우리도 잉글랜드와의 평가전에서도 겪었다.
하지만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개최국이라는 특징이
이런면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이 장면의 후일담이 재미있다.

어느 인터넷 게시판에서 어느 이용자가
주심이 그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선언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그 이유는 실축했을 때의 부담 때문이란다.
심판이 물론 그런 생각에서 페널티킥을 선언하지 않은 것은 아닐테고
이말 또한 농담이지만 매우 설득력있게 들린다.
승부가 중요한 게 아니라 분위기의 고조가 중요한 경기니 말이다.

심판이 핸들링 반칙을 선언하지 않자 우리 선수들이 강하게 항의하기 위해
심판에게 달려갔다. 달려간 사람이 윤정환, 유상철, 최성용, 박지성이었는데
일본인 주심에게 모두 일본말로 항의하더라나?

(위 4선수는 일본 J리그에서 뛰고 있거나 뛰었다.)

 

그리고 심판이 반칙을 선언하지 않자 관중석에서 물병이 날아들었다.
후에 알려진 얘기로는 물병을 던진 사람은 관중석에서 심한 욕설을 듣고
민망해서 어쩔줄 몰랐다고 한다.
월드컵 개최와 함께 관중들의 수준도 한층 세련되어 진 것 같아 흐뭇한 기분이다.
하지만 응원에서는 나약해선 안된다.
신사적이어야 하지만 남에게 위협을 주지 못할 응원은 필요없다.
예절은 지키되 상대를 주눅들게 하는게 바로 응원의 참 의미다.

 

 

 

4. 앞으로의 전망

 

6월 4일 첫 경기인 대 폴란드전이 중요한 정점이 될 것이다.
폴란드의 전력은 이미 많이 드러났고 문제점도 많이 드러났으니
이에 대한 대비책도 있을 것이다.
성남과의 연습 경기를 보니 황선홍 대신 이천수의 투입도 고려해볼 만하다.
그들의 오른쪽 윙백은 매우 느리다.

월드컵에 나설 선수들은 대충 정리가 된 것 같다. 깜짝쇼는 없을 것이다.
이 경기의 스타팅 멤버가 그대로 폴란드전에 나올 확률이 크다.
이미 상대에게 우리 멤버가 알려졌다고 불안해 할 필요는 없다.
누군가 말했다. 상대가 알아도 못 막는 것이 정말 뛰어난 전술이라고.

이어지는 본선에서의 승전보를 기대한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