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첫 번째방문이었지만 후이부(Huy Vu 남. 당시 26세)라는 젊은 친구를 알게 된 것은
베트남 여행에 큰 도움을 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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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베트남 여행에서 가장 많은 도움을 받은 사람은
후이부(Huy Vu)라는 젊은이다.
여행에서 알게 된 이 친구는 현재 사이공의 한 영어학원에서 강의를 한다.
대학에선 테크놀러지를 전공했는데 첫 직장에서 월급이 시원찮아 그만두고
지금은 영어강사로 일하고 있다.
대학 졸업 후 초봉이 약 80달러였으나 지금은 200달러 정도 받는다고 하니
이것으로 그들의 생활수준과 물가 수준을 대충 가늠할 수 있겠다.
캐나다에서 공부한 실력답게 좋은 발음을 가지고 있으며
다른 언어에도 관심이 많아 유창하진 않지만 대충 6개 국어를 한다.
한국말에도 관심이 많아 읽고 쓰는 것이 어느 정도 가능한데
다만 말을 해본 일이 드물어 말은 아직 서툴다.
가끔 서로 통하지 않는 단어가 있을 때 한자로 써주면 그 뜻을 이해하니
정말 완벽한 커뮤니케이션이 된다.
한국어를 공부한 덕에 한국 문화도 제법 이해하고 있어
‘형’이라는 호칭을 가르쳐주었더니 여행 기간 내내 붙임성 좋게
형 소리를 멈추지 않는다. 한번은 그가 내게 물었다.
“형, 한자(漢字)를 몇 자나 쓸 수 있어요?”
“글쎄. 한 2,000자 정도?”
“그럼 읽는 것은요?”
“음...한 4,5000자?”
사실 오래전부터 개인적으로 한자에는 관심이 많았다.
언젠가 한번 무료한 시간을 이용해서 알고 있는 한자를 써본 적이 있는데
대충 그 정도 쓴 적이 있다.
물론 단지 뭔가 돋보이려는 욕심 때문에 조금 뻥을 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전혀 근거 없는 허풍만은 아닌 셈이다.
후이부는 매우 놀랍다는 듯 쳐다봤다.
자신에게 가장 어려운 공부가 아마도 한자를 쓰고 읽는 것이었으리라.
얼른 한마디 덧붙였다.
“한국 사람들은 대부분 그 정도는 읽어.”
그래서 그랬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아무튼 이후로 후이부는 나와 한국 사람에 대한 인식이 매우 좋아졌다.
그런 후이부 덕에 사이공에 대한 많은 정보와 지식, 그들의 문화를 잘 알게 되었다.
길도 안내해주고 이것저것 설명도 해주고,
녀석이 좋아하는 한국말에 대한 강의도 잊지 않았으니
비교적 재미있게 보낸 셈이다.
사이공은 호치민의 옛 이름이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호치민보다 사이공을 더 좋아한다는 사실도
그를 통해 알았다.
민족의 영웅이자 온 국민이 ‘호 아저씨’라 부른다는 호치민이라는 인물도
반드시 모든 사람이 다 좋아하지는 않는다는 사실도 알았다.
후이부는 호치민이라는 인물에 대해
그리 좋은 인상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이후로 나도 호치민을 사이공이라 부르기 시작했다. 물론 그 이유만은 아니다.
어쩐지 사이공이라는 어감이 훨씬 더 어울리고 운치 있다.
한국말 배우기를 좋아하는 후이부에게 당시 내가 가르쳐준 한국말은
사회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은어, 속어 등이었다.
당시 유행하던 킹카, 내가 쏜다, 허리가 휜다, 냄비근성, 번개(벙개) 등등이었는데
한국의 문화와 이에 따른 언어의 변화를 재미있게 설명하려고 시도했었다.
나름대로 후이부는 독학으로 공부한 기본적인 한국말 실력이 있어
오히려 이런 사회적이며 구어적인 표현에 관심이 많았다.
열심히 받아 적는 녀석의 노트 뒷장엔
한자로 된 오언절구를 열심히 공부한 흔적이 보인다.
베트남에 오기 전 후이부의 부탁으로 서점에 가서 한국어 교재를 샀었다.
그런데 처음 보는 한국어 교재에 당황한 내가 대충 골랐는데
막상 현지에 와보니 녀석의 수준이 내가 예상한 그 이상이라
내가 사온 교재가 무용지물이 되었다.
다음 달부터 한국어 강좌 하나를 더 맡을지도 모르겠다며 고맙다 하니
어째 좀 쑥스럽다.
그런 후이부 덕에 사이공에서 아주 좋은 경험을 했다.
어느 저녁시간 후이부가 강의하는 학원에 찾아가
그곳 학생들과 함께 수업을 받았던 기억이 그것이다.
* * *
강의가 있던 날, 후이부의 강의실에 찾아갔다.
학생은 10명 남짓, 모두 여학생이었다.
베트남이란 나라는 모든 일에 있어서 여성이 남성보다 더 활동적이고
주도적인 입장이 되는 나라다. 영어교육 역시 마찬가지다.
수업이 시작되고 후이부가 따로 내 소개를 하지 않아
멀뚱멀뚱 주변만 살피는 지루한 시간이 진행되고 있었다.
약 한 시간 가량이 지나자 후이부는 내 소개를 했다. 이 녀석 하는 짓이 참 똘똘하다.
“지금 여기 있는 이 낯선 손님은 베트남 사람이 아닙니다.
베트남 말이라곤 하나도 할 줄 모르고 영어만 할 줄 아니,
이 분이 어디서 오셨는지 어떤 일을 하는지, 몇 살인지 알아보세요.”
“......!”
그렇다. 녀석은 이런 이벤트를 위해 어색한 한 사람이 수업에 들어와 있음에도
굳이 소개를 하지 않고 이 시간을 기다렸던 것이다. 생각할수록 똘똘한 녀석이다.
수줍은 듯 어색한 듯 수업에 참가한 여학생들(나이는 모두 성인으로,
20대 초반부터 30대까지 있었다.) 슬슬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아직 기초반이어서 그런지 나이가 몇이냐? 어디서 왔느냐 등 매우 초보적인 질문이었다.
그래도 선생의 권위를 위해 간단한 단답형으로 대답하지 않고
이왕이면 내가 할 수 있는 긴 문장으로 대답했다.
발음에도 매우 신경썼다. 혀도 많이 굴렸다.
본의 아니게 나는 수업의 주인공이 되었고, 또한 수많은 학생 콩카이들의
주목을 받았다.
아마도 이런 경험은 보통의 관광객이라면 도저히 할 수 없는 경험이었을 것이다.
일단 당시만 해도 한국이라는, 이미지 좋은 국가의 배경이 있겠다,
상대는 영어를 배우려고 하는 사람들이겠다,
적어도 나보다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인 동시에 후이부의 제자들이었으니
상대적으로부자(?)인 내가 저녁이라도 샀어야 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엔
아직 초보적인 그들의 언어구사능력도 있었다.
말이 잘 통하지 않으니 이 얼마나 답답한가.
어쨌거나 그때의 추억은 참으로 신선했고
여행에서 주는 여러 가지 즐거움 중에 가장 신선한 경험이었을 것이다.
어느 덧 베트남의 영어 열풍도 상당히 높아져
많은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데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TV 연예 프로그램에서 연예인이 외국의 학교를 찾아가는 장면을 보여주는 것 마냥
내가 그 주인공이 되어 있었으니 그것도 참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추억이다.
* * *
사이공에 다니는 수많은 오토바이를 보며
나는 왜 이곳엔 오토바이가 이리 많을까 생각했었다.
우선 첫 번째 이유는 일년 내내 도로가 얼지 않는 날씨 때문일 테고
두 번째는 경제적이면서도 빠른 기동력 때문일 거라 생각했었다.
그러다 막상 현지에 와보니 몰랐던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이공에는 산이 없다. 모든 지역이 평평하다.
그러니 그 사실 또한
오토바이가 교통수단으로 적합할 것이라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었다.
후이부에게 물었다.
“왜 사이공엔 오토바이가 많다고 생각해?”
그러자 후이부의 대답은 내 예상과 달랐다.
“미국의 영향이 적어서 차가 없지요.”
“....?”
이것이 후이부 만의 생각인지 아니면
대부분의 베트남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생각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그 복잡한 미국과의 관계가
생활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는 사실 만큼은 분명한 것 같았다.
그러나 이제 베트남은 전쟁 당시의 베트남이 아니다.
아직 초록색 복장의 공안(경찰)이 위압적인 자세로 거리를 활보하고 있고,
사회주의 국가 특유의 투박함은 남아 있지만
머지않은 시간에 선진화되고 서구화될 것이다.
생각에 잠겨 길을 걷는데 관공서가 보이자 후이부가 말을 건넨다.
“형, 나는요 우리나라 정부에 불만이 매우 많아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나도 그래.”
“......?”
녀석은 이해하지 못할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베트남에서 바라보는 한국은 모든 면에서 발달한 선진국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람 사는 사회는 어디라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그 또한 곧 알게 될 것이다.
아하누가
2003년 11월. 후이부가 영어를 가르치는 호치민의 어느 영어학원에서.
강의에 열중하고 있는 베트남 청년 후이부(Huy Vu).
외국어에 관심이 많은 인텔리 청년이다. 아래 사진은 후이부가 강의하는 학원 입구.
여자들의 사회진출이 활발한 나라답게 수강생은 대부분 여자들이다.
여행중에 방문한 후이부의 집. 호치민의 평범한 가정이다.
촬영카메라 윗 사진 2장 Minolta Dimage-X
아랫 사진 NIKON Collpix E-5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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