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에서 또 다른 여행을 떠나다

2003 베트남(호치민) 5화 - 모닝콜

아하누가 2024. 6. 26. 01:04


 

베트남의 분위기 상 밤늦은 시간까지 돌아다닐 곳도 없으니 일찍 잠자리에 들게 되고,

일찍 잠자리에 드니 일찍 일어나게 된다.

더욱이 2시간 늦은 시차 때문에 평소 일어나는 시간에 몸이 일어난다면,

그 시간은 아직 새벽 6시 이전이니 더욱 그렇다.

베트남을 재밌게 즐기는 방법은 밤늦게 까지 돌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새벽같이 일어나 부지런히 쏘다니며 낮시간을 즐기는 게 방법이다.

물론 그걸 알게 되는 데까지는 무려 3년이 걸렸다.

 

 

 

 

호텔을 조금 좋은 곳으로 옮기니

비로소 모닝콜이라는 세련된 단어가 생각나기 시작했다.

원래는 웨이크업 콜Wake-up call이라고 하고, 모닝콜은 전형적인 콩글리쉬다.

하지만 아침에 혼자 힘으로 일어나기 힘들 때

남이 도와준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으므로

단어의 정확도 여부는 전혀 중요하지 않은 얘기다.

 

 

그날은 아침 8시 30분에는 숙소 근처에 있는

신카페(Shin Cafe. 배낭여행객에 인기 좋은 현지여행사)에서 출발하는

메콩델타 투어에 참여하기로 한 날이다.

이런 날 늦잠으로 인해 늦게 일어나 돈만 날리고

낮 시간을 빈둥대는 끔찍한 일을 방지하게 위해 모닝콜을 부탁했었다.

모닝콜은 7시. 처음엔 7시 30분이라고 했다가 밤에 들어오면서 7시로 수정했다.

아무리 출발지가 코앞이라도 허둥대진 말아야 한다.

이거라도 놓치면 길고 긴 하루를 더욱 끔찍하게 보내야 한다. 일행도 없다.

 

 

아침에 눈을 떴다.

아직 익숙하지 않은 시차와 베트남 날씨, 그리고 새로 옮긴 호텔의 적응 실패로 인해

모닝콜의 효과도 확인하지 못한 채 6시 50분에 눈을 떴다.

평소 우리는 자신이 일어나야 하는 시간보다 일찍 일어났을 때

엄청난 행복감을 느낀다.

무려 10분이나 더 잘 수 있다는 생각, 그리고 비교적 잘 잤다는 생각 등이다.

그것이 학생이든가 또는 직장인의 신분이었다면

아마도 이 10분의 시간은 엄청난 행복을 가져왔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학생도 직장인도 아닌 행복한 여행자다.

늦지만 않으면 되는 여행자다.

설령 늦는다 해도 잔소리 듣지 않아도 되는 시간 많은 여행자다.

그런 생각이 들면서 잠은 다시 오지 않았고

부지런함으로 벌어들인 10분의 시간도 별로 가치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다시 시계를 쳐다봤다.

전날 구입한 짝퉁 롤렉스 시계는 시간도 잘 맞는다.

5분이 지난 6시 55분. 갑자기 화장실에 가고 싶다.

화장실 변기에 엉덩이 까고 앉아 담배 한대를 피워 물면

매우 행복한 아침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전날 부탁한 모닝콜이 생각났다. 조금만 있으면 모닝콜이 울릴 것이다.

그러니 계획한 화장실에서의 행복한 일정은 모닝콜 뒤로 미루기로 하고

시계를 쳐다봤다.

 

 

6시 56분. 4분 남았다.

TV를 켰다. 재미없다. 다시 시계를 봤다. 2분 남았다.

간밤에 도둑이 들지 않았는지 지갑 속의 돈을 확인했다. 변화가 있을 리 없다.

이제 1분 남았다.

창가로 다가가 창밖을 잠시 내다봤다. 30초 남았다.

29초, 28초... 드디어 정각.

 

 

그러나 모닝콜은 울리지 않는다.

잠시 이상하다 싶어 TV를 봤으나 한국과는 달리 시간이 나오지 않는다.

다시 시계를 봤다. 7시 1분이다.

나름대로 이유를 찾느라 생각에 빠진 뒤 시계를 봤다.

7시 2분이다. 조금 있으니 7시 3분이다. 이런....

프런트 데스크로 모닝콜을 날렸다.

 

 

“헤이! 모닝 콜 안 해?”

“지금 하려는 중인데요?”

“내가 7시에 해 달라 그랬잖아! 쾅! (전화 끊음)”

“......?”

 

 

 

프런트 데스크에 있는 직원은 매우 당황했을 것이다.

그리고 직원끼리 인수인계 사항을 적는 게시판에 이렇게 적었을 것이다.

 

 

 

 

‘한국사람 오면 모닝콜 시간 지킬 것!

일찍 일어나 시계 보고 있음!’

 

 

 

* * *

 

 

 

아주 오래전에 우리에게는 코리안 타임이란 것이 있었다.

선진 외국인들이 정확하지 않은 우리의 시간 개념을 빗대어 비웃듯 말한 것인데

요즘은 듣기 힘든 말이다.

약 15분 가량 늦어진다는 뜻을 내포한 이 단어는

현재 20세를 전후한 사람들은 잘 모를 수도 있는 단어다.

이 단어는 동남아 저개발국에 수출(?)되어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필리핀에 가면 필리핀 타임이 있고 베트남에 가면 베트남 타임이 있다.

단어만 다르지 단어의 생성과정이나 쓰임은

예전 우리의 코리안 타임과 다름이 없다.

 

 

아주 작은 단면을 보고 전체를 평가할 수는 없겠지만

베트남은 아직 시간 개념이 정확하지 않다.

시간 맞춰 떠나는 신카페의 투어버스도 한 번도 제대로 떠난 적이 없고

약속한 사람들도 한 번도 제 시간에 만난 적이 없다.

열대지방 특유의 느긋함도 있을 것이고

사회적인 분위기에도 그 이유가 있을 것이다.

시간을 잘 지킨다는 것, 시간의 중요성을 안다는 것,

그래서 남의 시간도 중요하다는 인식을 가진다는 것은

선진국과 후진국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다.

 

 

우리는 어떨까?

그전에 비해 시간을 잘 지킨다기보다 아마도 세계 최강의 정보통신국가답게

핸드폰의 다양한 활용으로 인해

약속시간 변경에 융통성이 많아진 것은 아닐지 모르겠다.

 

 

약속 시간은 무조건 잘 지켜야한다.

세련된 국민은 패션 감각 넘치는 복장으로 똘똘 뭉쳐진 국민이 아니라

약속을 잘 지키는 국민이다.

 

 

 

아하누가

2003년 11월. 사이공의 어느 미니호텔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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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전날 아마 나는 후이부의 오토바이를 얻어 타고 어느 대학교를 갔었다.

호치민에서는 유명한 대학이다.

후이부가 어딜 가고 싶냐고 물었을 때 나는 서슴없이 대학교라고 얘기했다.

왜 그랬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아마 여행의 극점을 찍으려고 시도한 건지 모르겠다.

 

 

호치민에 있는 인문사회과학 대학이다.

사진이 있는 기행기와 없는 기행기의 차이가 크다는 말에 실감하여 사진을 올리지만,

글의 주제는 모닝콜이다. 이건 분명히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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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필리핀 여행의 마지막 날.

호텔 프론트에 모닝콜을 부탁했었다.

혹시나 아침에 서두르다 마닐라에서 떠나는 비행기를 놓칠세라 걱정했으니까.

부탁한 시간이 되자 직원 직접 방문에 와서 문을 두드렸다.

전화기 상태가 안좋다며 직접 올라와 문을 두드리는 방식으로 손님인 나를 깨웠다.

진정한 모닝콜인 셈이다.

 

 

 

 

 

 

지루한 여행은 아직 끝날 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