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어느 유명 관광지에서든 일본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단체관광으로 다니기 보다는 혼자서 혹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가이드북에 의지한 채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는 일본사람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외국에서 만나면 얼핏 가까운 사이 같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과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특히 나처럼 70년대에 중학교 교육을 받은 세대라면
강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베트남에서도 일본인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 중 내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지만 반갑지 많은 시선으로 그들을 본다.
어쩌면 속 좁은 나만의 감상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중의 어느 날 이른 아침.
신카페(Shin Cafe. 여행사)를 통해 메콩델타 여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메콩델타 투어는 구찌 터널과 함께 사이공에서 맛볼 수 있는 괜찮은 여행코스다.
작은 보트를 두세 번 나누어 타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을 거슬러 오르며
그들의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메콩강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코스다.
한국의 유명한 백화점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버스에 오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약 30명이 함께 출발했는데
대부분 유럽에서 온 백패커 Back Packer. 배낭여행자 들이다.
주로 40세 이상의 부부들이 많은데 휴가를 이용해 아시아 투어에 나선 듯싶다.
이러저리 둘러보니 한국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아무렴 어쩌겠나. 외국에 왔으니 이럴 땐 오히려 혼자 다니는 게 편하지.
한국의 어느 백화점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신카페 버스.
투어를 기다리는 일행들.
하루 종일 이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 코스라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뭉치기 시작한다.
매우 자연스러운 이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전형적인 과정이다.
자리에 앉아 문득 옆자리를 보니 동양인 한 사람이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이 녀석이다.
입고 있는 복장 상태나 표정으로 보아 딱히 묻지 않아도 얼굴에 이렇게 쓰여 있다.
쪽. 바. 리
가깝고도 멀다는 이웃나라 일본.
다른 나라 사람에겐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일본인.
그 일본 녀석이 혼자 앉아 있다.
이동 중 잠깐 쉬는 시간으로 차가 주유소에 정차한 틈에 녀석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일본 사람치곤 비교적 유창한 영어다.
"난 네 나라 사람이 아니라네."
첫 대화부터 딴지를 걸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 거라 생각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로 단지 일본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왠지 기분 나빴다.
세계가 한 지붕이 되고 점점 더 좁아지는 이런 때에
단지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나쁘다면 참 딱한 발상이겠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니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지로 떠나는 차 안은 유럽에서 온 40~50대 커플로 가득 차 있었다.
차 안의 여행자 중 동행이 없는 사람은 그 일본 녀석과 나, 둘 뿐이었다.
이후 녀석은 혼자 왔다는 이유로,
그리고 비교적 젊은 사람이라는 동질감으로
항상 내 근처에 자리 잡았고, 좋든 싫든 나 역시 이와 같은 공감대로
녀석과 많은 시간을 할 수밖에 없었다.
29살. 사진작가.
터키에서부터 동쪽으로 남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녀석은
이미 집을 나선지 7개월에 접어들었다 한다.
내가 녀석에게서 조금이나마 호감을 느낀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된다는 점과 녀석이 사진작가라는 이유였다.
일본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면 상당히 의사전달이 잘 된다.
일단 떠오른 그 이유는 문화적 동질감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문화적 동질감이 의사소통의 직접적 영향은 될 수 없었고,
다시 곰곰이 이유를 살펴보니 바로 같은 동사(動詞)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이유 또한 정확하진 않다. 그저 내 생각이 그럴 뿐이다.)
이 일본인 여행객이 가지고 다니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보니
전문 사진작가답다.
거리 풍경이며 사람들의 표정, 핵심과 주제를 놓치지 않는
노련한 테크닉이 사진에서 바로 느껴진다.
같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접어들 무렵 그가 내게 제안했다.
그다지 능동적인 붙임성이 좋지 않은 일본 사람들인데 녀석은 이상하게 잘 따라다녔다.
"내일은 뭐 할 거니?"
"(반말하지 마. 임마!) 내일? 아직은...."
"구찌터널 같이 안 갈래? 나 그거 신청했는데."
".....?"
사실 나도 내일의 일정을 구찌터널 관광으로 잡았다.
다만 구찌터널과 카오다이 사원을 함께 하는 종일 코스가 있고
꾸지터널만 다녀오는 반나절 코스가 있어 갈등하고 있을 뿐이었다.
녀석은 종일 코스로 잡았단다.
"글쎄...."
왠지 그 녀석하고 또 하루를 함께 움직이기가 내키지 않아 말꼬리를 흐리니
녀석은 계속 조른다.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일단 대화를 정리했는데도
녀석은 틈만 나면 내게 다가와 동행을 권한다.
어차피 나도 내일은 낮 시간엔 어딘가 가야 한다. 다른 약속은 저녁때 있다.
하지만 왠지 그 녀석하고 또 함께 행동한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종일 관광을 좀 벅차다. 반나절이 딱 좋은데...
메콩델타 당일 투어가 끝날 즈음
녀석이 또 조르기에 못이기는 척하고 같이 가겠노라 대답했다.
감정표현에 인색한 일본인답지 않게 약간의 호들갑을 떨며 좋아한다.
별 녀석 다 보겠네.
메콩델타 투어를 마치고 다음날 일정을 예약하기 위해 신카페에 돌아오니
대략 저녁 6시 30분.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녀석과
빠이빠이를 서너번 외치고 신카페로 들어갔다. 내일 관광 코스를 예약했다.
몇 번 봐서 낮이 익은 여직원이 자꾸 웃는다. 내가 좀 웃기게 생겼나?
그 순간 그 녀석이 들어왔다.
간다고 손 흔들며 빠이빠이하고 헤어진 바로 그 일본 녀석이 신카페에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 너 안 갔네? 왜 왔어?"
약간 눈초리를 내려 깐 녀석은
주섬주섬 자기 영수증을 여행사 직원에게 보이더니 내게 말한다.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일정 변경하려고..."
"....!"
사이공에 도착한지 이미 60여 시간이 지날 무렵. 처음으로 한국말이 나왔다.
"이런, 개새X."
녀석은 잠시 머뭇거리는 행동을 몇 차례 보이다
변경된 일정표를 들고 슬며시 내 앞에서 사라졌다.
절대,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일이 더럽게 됐다.
나도 사실 내일 종일 일정을 필요 없다.
여직원에게 나도 변경 신청을 했다. 종일 투어에서 반나절 투어로.
영수증이 다시 나왔다. 시간과 날짜를 확인하는데
갑자기 눈에 이상한 단어 하나가 들어왔다.
내 이름 밑에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BAE YONG JOON
Japanese
이런 X새들. 또 한국말로 욕이 나왔다.
"야! 내가 왜 쪽바리야! 매니저 좀 나오라 해요. 오케?"
내가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고 흥분된 행동을 보이자
곧 매니저인 듯한 사람이 나타났다. 또 따졌다.
"내가 코리안이라고 몇 번 말했지요?
근데 여기 왜 쪽바리라고 써 있나요?"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은 별 일 아닌 걸로 시끄럽게 한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영수증을 던지듯 건넸다.
"이거 당장 고쳐주시죠!"
매니저는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사과를 한 뒤
하얀색 사무용 수정액을 꺼내 쓱쓱 지운다.
"이봐요!
그렇게 말고 컴퓨터에 입력된 걸 고치란 말입니다!!!!!!!"
매니저는 계속 이해 못할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외국사람들 눈에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그게 그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거야 그 사람들 사정이고 당장 기분 나쁜 사람은 나다.
또한 일본에서 보는 한국과 한국에서 보는 일본의 시각은 천지 차이다.
한마디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감정이다.
세상이 국제화되고 일본과 문화교류도 시작한 마당에
이게 웬 국수적이며 폐쇄적 사고냐고 탓할 사람도 있겠지만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일이다.
세대가 점점 변하고 세상이 변할수록 일본을 대하는 감정은 변하겠지만
기본적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답답하겠지만 이건 현실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끼리 좋은 감정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한나라도 없으니까.
* * *
예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니 후이부 Huy Vu. 26. 영어강사 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말에도 관심이 많아
읽고 쓰는 것을 할 줄 아는 이 녀석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그러면서도 꾸준히 공부하는 녀석의 학구열은 놀랍기만 하다.
그날따라 녀석이 한국말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교재를 통해서도 공부할 수 없는
사회적 은어나 속어를 가르쳐준다니 후이부는 매우 좋아했다.
이미 받아 적을 노트를 꺼내고 내 입만 쳐다보고 있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고 은어나 속어는 그런 사회 현상의 한 단면이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언어 학습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있는 후이부를 쳐다보던 내가 그의 펜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그의 노트에 또박또박 천천히 적었다.
쪽. 바. 리.
"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그러면 한국말도 배우기 힘들어..."
이렇게 시작한 내 한국말 강의는 그날 늦은 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하누가
2003년 11월. 메콩델타 투어를 마치고
세계 어느 유명 관광지에서든 일본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단체관광으로 다니기 보다는 혼자서 혹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가이드북에 의지한 채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는 일본사람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외국에서 만나면 얼핏 가까운 사이 같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과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특히 나처럼 70년대에 중학교 교육을 받은 세대라면
강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베트남에서도 일본인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 중 내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지만 반갑지 많은 시선으로 그들을 본다.
어쩌면 속 좁은 나만의 감상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중의 어느 날 이른 아침.
신카페(Shin Cafe. 여행사)를 통해 메콩델타 여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메콩델타 투어는 구찌 터널과 함께 사이공에서 맛볼 수 있는 괜찮은 여행코스다.
작은 보트를 두세 번 나누어 타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을 거슬러 오르며
그들의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메콩강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코스다.
한국의 유명한 백화점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버스에 오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약 30명이 함께 출발했는데
대부분 유럽에서 온 백패커 Back Packer. 배낭여행자 들이다.
주로 40세 이상의 부부들이 많은데 휴가를 이용해 아시아 투어에 나선 듯싶다.
이러저리 둘러보니 한국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아무렴 어쩌겠나. 외국에 왔으니 이럴 땐 오히려 혼자 다니는 게 편하지.
한국의 어느 백화점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신카페 버스.
투어를 기다리는 일행들.
하루 종일 이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 코스라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뭉치기 시작한다.
매우 자연스러운 이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전형적인 과정이다.
자리에 앉아 문득 옆자리를 보니 동양인 한 사람이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이 녀석이다.
입고 있는 복장 상태나 표정으로 보아 딱히 묻지 않아도 얼굴에 이렇게 쓰여 있다.
쪽. 바. 리
가깝고도 멀다는 이웃나라 일본.
다른 나라 사람에겐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일본인.
그 일본 녀석이 혼자 앉아 있다.
이동 중 잠깐 쉬는 시간으로 차가 주유소에 정차한 틈에 녀석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일본 사람치곤 비교적 유창한 영어다.
"난 네 나라 사람이 아니라네."
첫 대화부터 딴지를 걸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 거라 생각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로 단지 일본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왠지 기분 나빴다.
세계가 한 지붕이 되고 점점 더 좁아지는 이런 때에
단지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나쁘다면 참 딱한 발상이겠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니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지로 떠나는 차 안은 유럽에서 온 40~50대 커플로 가득 차 있었다.
차 안의 여행자 중 동행이 없는 사람은 그 일본 녀석과 나, 둘 뿐이었다.
이후 녀석은 혼자 왔다는 이유로,
그리고 비교적 젊은 사람이라는 동질감으로
항상 내 근처에 자리 잡았고, 좋든 싫든 나 역시 이와 같은 공감대로
녀석과 많은 시간을 할 수밖에 없었다.
29살. 사진작가.
터키에서부터 동쪽으로 남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녀석은
이미 집을 나선지 7개월에 접어들었다 한다.
내가 녀석에게서 조금이나마 호감을 느낀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된다는 점과 녀석이 사진작가라는 이유였다.
일본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면 상당히 의사전달이 잘 된다.
일단 떠오른 그 이유는 문화적 동질감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문화적 동질감이 의사소통의 직접적 영향은 될 수 없었고,
다시 곰곰이 이유를 살펴보니 바로 같은 동사(動詞)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이유 또한 정확하진 않다. 그저 내 생각이 그럴 뿐이다.)
이 일본인 여행객이 가지고 다니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보니
전문 사진작가답다.
거리 풍경이며 사람들의 표정, 핵심과 주제를 놓치지 않는
노련한 테크닉이 사진에서 바로 느껴진다.
같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접어들 무렵 그가 내게 제안했다.
그다지 능동적인 붙임성이 좋지 않은 일본 사람들인데 녀석은 이상하게 잘 따라다녔다.
"내일은 뭐 할 거니?"
"(반말하지 마. 임마!) 내일? 아직은...."
"구찌터널 같이 안 갈래? 나 그거 신청했는데."
".....?"
사실 나도 내일의 일정을 구찌터널 관광으로 잡았다.
다만 구찌터널과 카오다이 사원을 함께 하는 종일 코스가 있고
꾸지터널만 다녀오는 반나절 코스가 있어 갈등하고 있을 뿐이었다.
녀석은 종일 코스로 잡았단다.
"글쎄...."
왠지 그 녀석하고 또 하루를 함께 움직이기가 내키지 않아 말꼬리를 흐리니
녀석은 계속 조른다.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일단 대화를 정리했는데도
녀석은 틈만 나면 내게 다가와 동행을 권한다.
어차피 나도 내일은 낮 시간엔 어딘가 가야 한다. 다른 약속은 저녁때 있다.
하지만 왠지 그 녀석하고 또 함께 행동한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종일 관광을 좀 벅차다. 반나절이 딱 좋은데...
메콩델타 당일 투어가 끝날 즈음
녀석이 또 조르기에 못이기는 척하고 같이 가겠노라 대답했다.
감정표현에 인색한 일본인답지 않게 약간의 호들갑을 떨며 좋아한다.
별 녀석 다 보겠네.
메콩델타 투어를 마치고 다음날 일정을 예약하기 위해 신카페에 돌아오니
대략 저녁 6시 30분.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녀석과
빠이빠이를 서너번 외치고 신카페로 들어갔다. 내일 관광 코스를 예약했다.
몇 번 봐서 낮이 익은 여직원이 자꾸 웃는다. 내가 좀 웃기게 생겼나?
그 순간 그 녀석이 들어왔다.
간다고 손 흔들며 빠이빠이하고 헤어진 바로 그 일본 녀석이 신카페에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 너 안 갔네? 왜 왔어?"
약간 눈초리를 내려 깐 녀석은
주섬주섬 자기 영수증을 여행사 직원에게 보이더니 내게 말한다.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일정 변경하려고..."
"....!"
사이공에 도착한지 이미 60여 시간이 지날 무렵. 처음으로 한국말이 나왔다.
"이런, 개새X."
녀석은 잠시 머뭇거리는 행동을 몇 차례 보이다
변경된 일정표를 들고 슬며시 내 앞에서 사라졌다.
절대,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일이 더럽게 됐다.
나도 사실 내일 종일 일정을 필요 없다.
여직원에게 나도 변경 신청을 했다. 종일 투어에서 반나절 투어로.
영수증이 다시 나왔다. 시간과 날짜를 확인하는데
갑자기 눈에 이상한 단어 하나가 들어왔다.
내 이름 밑에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BAE YONG JOON
Japanese
이런 X새들. 또 한국말로 욕이 나왔다.
"야! 내가 왜 쪽바리야! 매니저 좀 나오라 해요. 오케?"
내가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고 흥분된 행동을 보이자
곧 매니저인 듯한 사람이 나타났다. 또 따졌다.
"내가 코리안이라고 몇 번 말했지요?
근데 여기 왜 쪽바리라고 써 있나요?"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은 별 일 아닌 걸로 시끄럽게 한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영수증을 던지듯 건넸다.
"이거 당장 고쳐주시죠!"
매니저는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사과를 한 뒤
하얀색 사무용 수정액을 꺼내 쓱쓱 지운다.
"이봐요!
그렇게 말고 컴퓨터에 입력된 걸 고치란 말입니다!!!!!!!"
매니저는 계속 이해 못할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외국사람들 눈에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그게 그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거야 그 사람들 사정이고 당장 기분 나쁜 사람은 나다.
또한 일본에서 보는 한국과 한국에서 보는 일본의 시각은 천지 차이다.
한마디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감정이다.
세상이 국제화되고 일본과 문화교류도 시작한 마당에
이게 웬 국수적이며 폐쇄적 사고냐고 탓할 사람도 있겠지만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일이다.
세대가 점점 변하고 세상이 변할수록 일본을 대하는 감정은 변하겠지만
기본적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답답하겠지만 이건 현실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끼리 좋은 감정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한나라도 없으니까.
* * *
예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니 후이부 Huy Vu. 26. 영어강사 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말에도 관심이 많아
읽고 쓰는 것을 할 줄 아는 이 녀석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그러면서도 꾸준히 공부하는 녀석의 학구열은 놀랍기만 하다.
그날따라 녀석이 한국말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교재를 통해서도 공부할 수 없는
사회적 은어나 속어를 가르쳐준다니 후이부는 매우 좋아했다.
이미 받아 적을 노트를 꺼내고 내 입만 쳐다보고 있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고 은어나 속어는 그런 사회 현상의 한 단면이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언어 학습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있는 후이부를 쳐다보던 내가 그의 펜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그의 노트에 또박또박 천천히 적었다.
쪽. 바. 리.
"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그러면 한국말도 배우기 힘들어..."
이렇게 시작한 내 한국말 강의는 그날 늦은 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하누가
2003년 11월. 메콩델타 투어를 마치고
세계 어느 유명 관광지에서든 일본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단체관광으로 다니기 보다는 혼자서 혹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가이드북에 의지한 채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는 일본사람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외국에서 만나면 얼핏 가까운 사이 같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과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특히 나처럼 70년대에 중학교 교육을 받은 세대라면
강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베트남에서도 일본인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 중 내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지만 반갑지 많은 시선으로 그들을 본다.
어쩌면 속 좁은 나만의 감상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중의 어느 날 이른 아침.
신카페(Shin Cafe. 여행사)를 통해 메콩델타 여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메콩델타 투어는 구찌 터널과 함께 사이공에서 맛볼 수 있는 괜찮은 여행코스다.
작은 보트를 두세 번 나누어 타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을 거슬러 오르며
그들의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메콩강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코스다.
한국의 유명한 백화점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버스에 오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약 30명이 함께 출발했는데
대부분 유럽에서 온 백패커 Back Packer. 배낭여행자 들이다.
주로 40세 이상의 부부들이 많은데 휴가를 이용해 아시아 투어에 나선 듯싶다.
이러저리 둘러보니 한국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아무렴 어쩌겠나. 외국에 왔으니 이럴 땐 오히려 혼자 다니는 게 편하지.
한국의 어느 백화점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신카페 버스.
투어를 기다리는 일행들.
하루 종일 이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 코스라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뭉치기 시작한다.
매우 자연스러운 이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전형적인 과정이다.
자리에 앉아 문득 옆자리를 보니 동양인 한 사람이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이 녀석이다.
입고 있는 복장 상태나 표정으로 보아 딱히 묻지 않아도 얼굴에 이렇게 쓰여 있다.
쪽. 바. 리
가깝고도 멀다는 이웃나라 일본.
다른 나라 사람에겐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일본인.
그 일본 녀석이 혼자 앉아 있다.
이동 중 잠깐 쉬는 시간으로 차가 주유소에 정차한 틈에 녀석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일본 사람치곤 비교적 유창한 영어다.
"난 네 나라 사람이 아니라네."
첫 대화부터 딴지를 걸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 거라 생각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로 단지 일본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왠지 기분 나빴다.
세계가 한 지붕이 되고 점점 더 좁아지는 이런 때에
단지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나쁘다면 참 딱한 발상이겠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니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지로 떠나는 차 안은 유럽에서 온 40~50대 커플로 가득 차 있었다.
차 안의 여행자 중 동행이 없는 사람은 그 일본 녀석과 나, 둘 뿐이었다.
이후 녀석은 혼자 왔다는 이유로,
그리고 비교적 젊은 사람이라는 동질감으로
항상 내 근처에 자리 잡았고, 좋든 싫든 나 역시 이와 같은 공감대로
녀석과 많은 시간을 할 수밖에 없었다.
29살. 사진작가.
터키에서부터 동쪽으로 남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녀석은
이미 집을 나선지 7개월에 접어들었다 한다.
내가 녀석에게서 조금이나마 호감을 느낀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된다는 점과 녀석이 사진작가라는 이유였다.
일본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면 상당히 의사전달이 잘 된다.
일단 떠오른 그 이유는 문화적 동질감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문화적 동질감이 의사소통의 직접적 영향은 될 수 없었고,
다시 곰곰이 이유를 살펴보니 바로 같은 동사(動詞)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이유 또한 정확하진 않다. 그저 내 생각이 그럴 뿐이다.)
이 일본인 여행객이 가지고 다니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보니
전문 사진작가답다.
거리 풍경이며 사람들의 표정, 핵심과 주제를 놓치지 않는
노련한 테크닉이 사진에서 바로 느껴진다.
같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접어들 무렵 그가 내게 제안했다.
그다지 능동적인 붙임성이 좋지 않은 일본 사람들인데 녀석은 이상하게 잘 따라다녔다.
"내일은 뭐 할 거니?"
"(반말하지 마. 임마!) 내일? 아직은...."
"구찌터널 같이 안 갈래? 나 그거 신청했는데."
".....?"
사실 나도 내일의 일정을 구찌터널 관광으로 잡았다.
다만 구찌터널과 카오다이 사원을 함께 하는 종일 코스가 있고
꾸지터널만 다녀오는 반나절 코스가 있어 갈등하고 있을 뿐이었다.
녀석은 종일 코스로 잡았단다.
"글쎄...."
왠지 그 녀석하고 또 하루를 함께 움직이기가 내키지 않아 말꼬리를 흐리니
녀석은 계속 조른다.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일단 대화를 정리했는데도
녀석은 틈만 나면 내게 다가와 동행을 권한다.
어차피 나도 내일은 낮 시간엔 어딘가 가야 한다. 다른 약속은 저녁때 있다.
하지만 왠지 그 녀석하고 또 함께 행동한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종일 관광을 좀 벅차다. 반나절이 딱 좋은데...
메콩델타 당일 투어가 끝날 즈음
녀석이 또 조르기에 못이기는 척하고 같이 가겠노라 대답했다.
감정표현에 인색한 일본인답지 않게 약간의 호들갑을 떨며 좋아한다.
별 녀석 다 보겠네.
메콩델타 투어를 마치고 다음날 일정을 예약하기 위해 신카페에 돌아오니
대략 저녁 6시 30분.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녀석과
빠이빠이를 서너번 외치고 신카페로 들어갔다. 내일 관광 코스를 예약했다.
몇 번 봐서 낮이 익은 여직원이 자꾸 웃는다. 내가 좀 웃기게 생겼나?
그 순간 그 녀석이 들어왔다.
간다고 손 흔들며 빠이빠이하고 헤어진 바로 그 일본 녀석이 신카페에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 너 안 갔네? 왜 왔어?"
약간 눈초리를 내려 깐 녀석은
주섬주섬 자기 영수증을 여행사 직원에게 보이더니 내게 말한다.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일정 변경하려고..."
"....!"
사이공에 도착한지 이미 60여 시간이 지날 무렵. 처음으로 한국말이 나왔다.
"이런, 개새X."
녀석은 잠시 머뭇거리는 행동을 몇 차례 보이다
변경된 일정표를 들고 슬며시 내 앞에서 사라졌다.
절대,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일이 더럽게 됐다.
나도 사실 내일 종일 일정을 필요 없다.
여직원에게 나도 변경 신청을 했다. 종일 투어에서 반나절 투어로.
영수증이 다시 나왔다. 시간과 날짜를 확인하는데
갑자기 눈에 이상한 단어 하나가 들어왔다.
내 이름 밑에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BAE YONG JOON
Japanese
이런 X새들. 또 한국말로 욕이 나왔다.
"야! 내가 왜 쪽바리야! 매니저 좀 나오라 해요. 오케?"
내가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고 흥분된 행동을 보이자
곧 매니저인 듯한 사람이 나타났다. 또 따졌다.
"내가 코리안이라고 몇 번 말했지요?
근데 여기 왜 쪽바리라고 써 있나요?"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은 별 일 아닌 걸로 시끄럽게 한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영수증을 던지듯 건넸다.
"이거 당장 고쳐주시죠!"
매니저는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사과를 한 뒤
하얀색 사무용 수정액을 꺼내 쓱쓱 지운다.
"이봐요!
그렇게 말고 컴퓨터에 입력된 걸 고치란 말입니다!!!!!!!"
매니저는 계속 이해 못할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외국사람들 눈에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그게 그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거야 그 사람들 사정이고 당장 기분 나쁜 사람은 나다.
또한 일본에서 보는 한국과 한국에서 보는 일본의 시각은 천지 차이다.
한마디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감정이다.
세상이 국제화되고 일본과 문화교류도 시작한 마당에
이게 웬 국수적이며 폐쇄적 사고냐고 탓할 사람도 있겠지만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일이다.
세대가 점점 변하고 세상이 변할수록 일본을 대하는 감정은 변하겠지만
기본적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답답하겠지만 이건 현실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끼리 좋은 감정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한나라도 없으니까.
* * *
예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니 후이부 Huy Vu. 26. 영어강사 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말에도 관심이 많아
읽고 쓰는 것을 할 줄 아는 이 녀석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그러면서도 꾸준히 공부하는 녀석의 학구열은 놀랍기만 하다.
그날따라 녀석이 한국말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교재를 통해서도 공부할 수 없는
사회적 은어나 속어를 가르쳐준다니 후이부는 매우 좋아했다.
이미 받아 적을 노트를 꺼내고 내 입만 쳐다보고 있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고 은어나 속어는 그런 사회 현상의 한 단면이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언어 학습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있는 후이부를 쳐다보던 내가 그의 펜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그의 노트에 또박또박 천천히 적었다.
쪽. 바. 리.
"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그러면 한국말도 배우기 힘들어..."
이렇게 시작한 내 한국말 강의는 그날 늦은 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하누가
2003년 11월. 메콩델타 투어를 마치고
세계 어느 유명 관광지에서든 일본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단체관광으로 다니기 보다는 혼자서 혹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가이드북에 의지한 채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는 일본사람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외국에서 만나면 얼핏 가까운 사이 같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과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특히 나처럼 70년대에 중학교 교육을 받은 세대라면
강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베트남에서도 일본인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 중 내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지만 반갑지 많은 시선으로 그들을 본다.
어쩌면 속 좁은 나만의 감상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중의 어느 날 이른 아침.
신카페(Shin Cafe. 여행사)를 통해 메콩델타 여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메콩델타 투어는 구찌 터널과 함께 사이공에서 맛볼 수 있는 괜찮은 여행코스다.
작은 보트를 두세 번 나누어 타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을 거슬러 오르며
그들의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메콩강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코스다.
한국의 유명한 백화점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버스에 오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약 30명이 함께 출발했는데
대부분 유럽에서 온 백패커 Back Packer. 배낭여행자 들이다.
주로 40세 이상의 부부들이 많은데 휴가를 이용해 아시아 투어에 나선 듯싶다.
이러저리 둘러보니 한국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아무렴 어쩌겠나. 외국에 왔으니 이럴 땐 오히려 혼자 다니는 게 편하지.
한국의 어느 백화점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신카페 버스.
투어를 기다리는 일행들.
하루 종일 이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 코스라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뭉치기 시작한다.
매우 자연스러운 이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전형적인 과정이다.
자리에 앉아 문득 옆자리를 보니 동양인 한 사람이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이 녀석이다.
입고 있는 복장 상태나 표정으로 보아 딱히 묻지 않아도 얼굴에 이렇게 쓰여 있다.
쪽. 바. 리
가깝고도 멀다는 이웃나라 일본.
다른 나라 사람에겐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일본인.
그 일본 녀석이 혼자 앉아 있다.
이동 중 잠깐 쉬는 시간으로 차가 주유소에 정차한 틈에 녀석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일본 사람치곤 비교적 유창한 영어다.
"난 네 나라 사람이 아니라네."
첫 대화부터 딴지를 걸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 거라 생각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로 단지 일본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왠지 기분 나빴다.
세계가 한 지붕이 되고 점점 더 좁아지는 이런 때에
단지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나쁘다면 참 딱한 발상이겠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니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지로 떠나는 차 안은 유럽에서 온 40~50대 커플로 가득 차 있었다.
차 안의 여행자 중 동행이 없는 사람은 그 일본 녀석과 나, 둘 뿐이었다.
이후 녀석은 혼자 왔다는 이유로,
그리고 비교적 젊은 사람이라는 동질감으로
항상 내 근처에 자리 잡았고, 좋든 싫든 나 역시 이와 같은 공감대로
녀석과 많은 시간을 할 수밖에 없었다.
29살. 사진작가.
터키에서부터 동쪽으로 남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녀석은
이미 집을 나선지 7개월에 접어들었다 한다.
내가 녀석에게서 조금이나마 호감을 느낀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된다는 점과 녀석이 사진작가라는 이유였다.
일본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면 상당히 의사전달이 잘 된다.
일단 떠오른 그 이유는 문화적 동질감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문화적 동질감이 의사소통의 직접적 영향은 될 수 없었고,
다시 곰곰이 이유를 살펴보니 바로 같은 동사(動詞)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이유 또한 정확하진 않다. 그저 내 생각이 그럴 뿐이다.)
이 일본인 여행객이 가지고 다니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보니
전문 사진작가답다.
거리 풍경이며 사람들의 표정, 핵심과 주제를 놓치지 않는
노련한 테크닉이 사진에서 바로 느껴진다.
같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접어들 무렵 그가 내게 제안했다.
그다지 능동적인 붙임성이 좋지 않은 일본 사람들인데 녀석은 이상하게 잘 따라다녔다.
"내일은 뭐 할 거니?"
"(반말하지 마. 임마!) 내일? 아직은...."
"구찌터널 같이 안 갈래? 나 그거 신청했는데."
".....?"
사실 나도 내일의 일정을 구찌터널 관광으로 잡았다.
다만 구찌터널과 카오다이 사원을 함께 하는 종일 코스가 있고
꾸지터널만 다녀오는 반나절 코스가 있어 갈등하고 있을 뿐이었다.
녀석은 종일 코스로 잡았단다.
"글쎄...."
왠지 그 녀석하고 또 하루를 함께 움직이기가 내키지 않아 말꼬리를 흐리니
녀석은 계속 조른다.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일단 대화를 정리했는데도
녀석은 틈만 나면 내게 다가와 동행을 권한다.
어차피 나도 내일은 낮 시간엔 어딘가 가야 한다. 다른 약속은 저녁때 있다.
하지만 왠지 그 녀석하고 또 함께 행동한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종일 관광을 좀 벅차다. 반나절이 딱 좋은데...
메콩델타 당일 투어가 끝날 즈음
녀석이 또 조르기에 못이기는 척하고 같이 가겠노라 대답했다.
감정표현에 인색한 일본인답지 않게 약간의 호들갑을 떨며 좋아한다.
별 녀석 다 보겠네.
메콩델타 투어를 마치고 다음날 일정을 예약하기 위해 신카페에 돌아오니
대략 저녁 6시 30분.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녀석과
빠이빠이를 서너번 외치고 신카페로 들어갔다. 내일 관광 코스를 예약했다.
몇 번 봐서 낮이 익은 여직원이 자꾸 웃는다. 내가 좀 웃기게 생겼나?
그 순간 그 녀석이 들어왔다.
간다고 손 흔들며 빠이빠이하고 헤어진 바로 그 일본 녀석이 신카페에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 너 안 갔네? 왜 왔어?"
약간 눈초리를 내려 깐 녀석은
주섬주섬 자기 영수증을 여행사 직원에게 보이더니 내게 말한다.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일정 변경하려고..."
"....!"
사이공에 도착한지 이미 60여 시간이 지날 무렵. 처음으로 한국말이 나왔다.
"이런, 개새X."
녀석은 잠시 머뭇거리는 행동을 몇 차례 보이다
변경된 일정표를 들고 슬며시 내 앞에서 사라졌다.
절대,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일이 더럽게 됐다.
나도 사실 내일 종일 일정을 필요 없다.
여직원에게 나도 변경 신청을 했다. 종일 투어에서 반나절 투어로.
영수증이 다시 나왔다. 시간과 날짜를 확인하는데
갑자기 눈에 이상한 단어 하나가 들어왔다.
내 이름 밑에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BAE YONG JOON
Japanese
이런 X새들. 또 한국말로 욕이 나왔다.
"야! 내가 왜 쪽바리야! 매니저 좀 나오라 해요. 오케?"
내가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고 흥분된 행동을 보이자
곧 매니저인 듯한 사람이 나타났다. 또 따졌다.
"내가 코리안이라고 몇 번 말했지요?
근데 여기 왜 쪽바리라고 써 있나요?"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은 별 일 아닌 걸로 시끄럽게 한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영수증을 던지듯 건넸다.
"이거 당장 고쳐주시죠!"
매니저는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사과를 한 뒤
하얀색 사무용 수정액을 꺼내 쓱쓱 지운다.
"이봐요!
그렇게 말고 컴퓨터에 입력된 걸 고치란 말입니다!!!!!!!"
매니저는 계속 이해 못할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외국사람들 눈에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그게 그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거야 그 사람들 사정이고 당장 기분 나쁜 사람은 나다.
또한 일본에서 보는 한국과 한국에서 보는 일본의 시각은 천지 차이다.
한마디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감정이다.
세상이 국제화되고 일본과 문화교류도 시작한 마당에
이게 웬 국수적이며 폐쇄적 사고냐고 탓할 사람도 있겠지만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일이다.
세대가 점점 변하고 세상이 변할수록 일본을 대하는 감정은 변하겠지만
기본적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답답하겠지만 이건 현실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끼리 좋은 감정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한나라도 없으니까.
* * *
예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니 후이부 Huy Vu. 26. 영어강사 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말에도 관심이 많아
읽고 쓰는 것을 할 줄 아는 이 녀석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그러면서도 꾸준히 공부하는 녀석의 학구열은 놀랍기만 하다.
그날따라 녀석이 한국말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교재를 통해서도 공부할 수 없는
사회적 은어나 속어를 가르쳐준다니 후이부는 매우 좋아했다.
이미 받아 적을 노트를 꺼내고 내 입만 쳐다보고 있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고 은어나 속어는 그런 사회 현상의 한 단면이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언어 학습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있는 후이부를 쳐다보던 내가 그의 펜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그의 노트에 또박또박 천천히 적었다.
쪽. 바. 리.
"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그러면 한국말도 배우기 힘들어..."
이렇게 시작한 내 한국말 강의는 그날 늦은 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하누가
2003년 11월. 메콩델타 투어를 마치고
세계 어느 유명 관광지에서든 일본 사람을 자주 볼 수 있다.
우리나라처럼 단체관광으로 다니기 보다는 혼자서 혹은 두 사람이 짝을 지어
가이드북에 의지한 채 이곳저곳을 부지런히 다니는 일본사람을 자주 발견할 수 있다.
외국에서 만나면 얼핏 가까운 사이 같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그들과의 거리는 상당히 멀다.
특히 나처럼 70년대에 중학교 교육을 받은 세대라면
강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다.
베트남에서도 일본인을 발견할 수 있다.
여행 중 내게 어떠한 피해도 주지 않았지만 반갑지 많은 시선으로 그들을 본다.
어쩌면 속 좁은 나만의 감상인지도 모르겠다.
여행 중의 어느 날 이른 아침.
신카페(Shin Cafe. 여행사)를 통해 메콩델타 여행을 하기로 한 날이다.
메콩델타 투어는 구찌 터널과 함께 사이공에서 맛볼 수 있는 괜찮은 여행코스다.
작은 보트를 두세 번 나누어 타고
인도차이나 반도의 젖줄인 메콩강을 거슬러 오르며
그들의 삶의 터전이라 할 수 있는 메콩강과 함께 호흡할 수 있는 코스다.
한국의 유명한 백화점 로고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버스에 오르니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약 30명이 함께 출발했는데
대부분 유럽에서 온 백패커 Back Packer. 배낭여행자 들이다.
주로 40세 이상의 부부들이 많은데 휴가를 이용해 아시아 투어에 나선 듯싶다.
이러저리 둘러보니 한국 사람은 나 혼자 뿐이다.
아무렴 어쩌겠나. 외국에 왔으니 이럴 땐 오히려 혼자 다니는 게 편하지.
한국의 어느 백화점 로고가 선명히 새겨진 신카페 버스.
투어를 기다리는 일행들.
하루 종일 이 일행과 함께 움직이는 코스라
나처럼 혼자 온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서서히 뭉치기 시작한다.
매우 자연스러운 이 현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매우 전형적인 과정이다.
자리에 앉아 문득 옆자리를 보니 동양인 한 사람이 앉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바로 이 녀석이다.
입고 있는 복장 상태나 표정으로 보아 딱히 묻지 않아도 얼굴에 이렇게 쓰여 있다.
쪽. 바. 리
가깝고도 멀다는 이웃나라 일본.
다른 나라 사람에겐 느끼지 못하는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몰려온다는 일본인.
그 일본 녀석이 혼자 앉아 있다.
이동 중 잠깐 쉬는 시간으로 차가 주유소에 정차한 틈에 녀석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느 나라 사람이냐?"
일본 사람치곤 비교적 유창한 영어다.
"난 네 나라 사람이 아니라네."
첫 대화부터 딴지를 걸었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상황에서 나와 비슷한 느낌을 가질 거라 생각하는데,
나 역시 마찬가지로 단지 일본 사람이라는 것만으로 왠지 기분 나빴다.
세계가 한 지붕이 되고 점점 더 좁아지는 이런 때에
단지 일본 사람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분이 나쁘다면 참 딱한 발상이겠지만
막상 그런 상황이 되니 기분이 나빠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여행지로 떠나는 차 안은 유럽에서 온 40~50대 커플로 가득 차 있었다.
차 안의 여행자 중 동행이 없는 사람은 그 일본 녀석과 나, 둘 뿐이었다.
이후 녀석은 혼자 왔다는 이유로,
그리고 비교적 젊은 사람이라는 동질감으로
항상 내 근처에 자리 잡았고, 좋든 싫든 나 역시 이와 같은 공감대로
녀석과 많은 시간을 할 수밖에 없었다.
29살. 사진작가.
터키에서부터 동쪽으로 남쪽으로 이동 중이라는 녀석은
이미 집을 나선지 7개월에 접어들었다 한다.
내가 녀석에게서 조금이나마 호감을 느낀 것은
커뮤니케이션이 원활하게 된다는 점과 녀석이 사진작가라는 이유였다.
일본 사람과 영어로 대화하면 상당히 의사전달이 잘 된다.
일단 떠오른 그 이유는 문화적 동질감 때문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문화적 동질감이 의사소통의 직접적 영향은 될 수 없었고,
다시 곰곰이 이유를 살펴보니 바로 같은 동사(動詞)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이 이유 또한 정확하진 않다. 그저 내 생각이 그럴 뿐이다.)
이 일본인 여행객이 가지고 다니는 작은 디지털 카메라에 찍힌 사진들을 보니
전문 사진작가답다.
거리 풍경이며 사람들의 표정, 핵심과 주제를 놓치지 않는
노련한 테크닉이 사진에서 바로 느껴진다.
같이 점심식사를 마치고 오후에 접어들 무렵 그가 내게 제안했다.
그다지 능동적인 붙임성이 좋지 않은 일본 사람들인데 녀석은 이상하게 잘 따라다녔다.
"내일은 뭐 할 거니?"
"(반말하지 마. 임마!) 내일? 아직은...."
"구찌터널 같이 안 갈래? 나 그거 신청했는데."
".....?"
사실 나도 내일의 일정을 구찌터널 관광으로 잡았다.
다만 구찌터널과 카오다이 사원을 함께 하는 종일 코스가 있고
꾸지터널만 다녀오는 반나절 코스가 있어 갈등하고 있을 뿐이었다.
녀석은 종일 코스로 잡았단다.
"글쎄...."
왠지 그 녀석하고 또 하루를 함께 움직이기가 내키지 않아 말꼬리를 흐리니
녀석은 계속 조른다.
생각해보겠다고 하고 일단 대화를 정리했는데도
녀석은 틈만 나면 내게 다가와 동행을 권한다.
어차피 나도 내일은 낮 시간엔 어딘가 가야 한다. 다른 약속은 저녁때 있다.
하지만 왠지 그 녀석하고 또 함께 행동한다는 게 별로 내키지 않았다.
그리고 종일 관광을 좀 벅차다. 반나절이 딱 좋은데...
메콩델타 당일 투어가 끝날 즈음
녀석이 또 조르기에 못이기는 척하고 같이 가겠노라 대답했다.
감정표현에 인색한 일본인답지 않게 약간의 호들갑을 떨며 좋아한다.
별 녀석 다 보겠네.
메콩델타 투어를 마치고 다음날 일정을 예약하기 위해 신카페에 돌아오니
대략 저녁 6시 30분.
내일 아침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녀석과
빠이빠이를 서너번 외치고 신카페로 들어갔다. 내일 관광 코스를 예약했다.
몇 번 봐서 낮이 익은 여직원이 자꾸 웃는다. 내가 좀 웃기게 생겼나?
그 순간 그 녀석이 들어왔다.
간다고 손 흔들며 빠이빠이하고 헤어진 바로 그 일본 녀석이 신카페에 들어왔다.
나를 보더니 약간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어? 너 안 갔네? 왜 왔어?"
약간 눈초리를 내려 깐 녀석은
주섬주섬 자기 영수증을 여행사 직원에게 보이더니 내게 말한다.
"갑자기 약속이 생겨서 일정 변경하려고..."
"....!"
사이공에 도착한지 이미 60여 시간이 지날 무렵. 처음으로 한국말이 나왔다.
"이런, 개새X."
녀석은 잠시 머뭇거리는 행동을 몇 차례 보이다
변경된 일정표를 들고 슬며시 내 앞에서 사라졌다.
절대, 절대로 미안하다는 말은 하지 않은 채. 갑자기 일이 더럽게 됐다.
나도 사실 내일 종일 일정을 필요 없다.
여직원에게 나도 변경 신청을 했다. 종일 투어에서 반나절 투어로.
영수증이 다시 나왔다. 시간과 날짜를 확인하는데
갑자기 눈에 이상한 단어 하나가 들어왔다.
내 이름 밑에 이렇게 표기되어 있다.
BAE YONG JOON
Japanese
이런 X새들. 또 한국말로 욕이 나왔다.
"야! 내가 왜 쪽바리야! 매니저 좀 나오라 해요. 오케?"
내가 필요 이상으로 과격하고 흥분된 행동을 보이자
곧 매니저인 듯한 사람이 나타났다. 또 따졌다.
"내가 코리안이라고 몇 번 말했지요?
근데 여기 왜 쪽바리라고 써 있나요?"
매니저로 보이는 직원은 별 일 아닌 걸로 시끄럽게 한다는 듯
대수롭지 않은 눈길로 나를 바라보고 있다. 영수증을 던지듯 건넸다.
"이거 당장 고쳐주시죠!"
매니저는 미안하다는 형식적인 사과를 한 뒤
하얀색 사무용 수정액을 꺼내 쓱쓱 지운다.
"이봐요!
그렇게 말고 컴퓨터에 입력된 걸 고치란 말입니다!!!!!!!"
매니저는 계속 이해 못할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외국사람들 눈에는 한국인이나 일본인이나 그게 그 사람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거야 그 사람들 사정이고 당장 기분 나쁜 사람은 나다.
또한 일본에서 보는 한국과 한국에서 보는 일본의 시각은 천지 차이다.
한마디로 가해자와 피해자의 감정이다.
세상이 국제화되고 일본과 문화교류도 시작한 마당에
이게 웬 국수적이며 폐쇄적 사고냐고 탓할 사람도 있겠지만
기분 나쁜 건 기분 나쁜 일이다.
세대가 점점 변하고 세상이 변할수록 일본을 대하는 감정은 변하겠지만
기본적 감정은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다.
조금 답답하겠지만 이건 현실이다.
세계 어느 나라든 국경을 접하고 있는 나라끼리 좋은 감정 가진 나라는
지구상에 단 한나라도 없으니까.
* * *
예약을 마치고 호텔로 돌아가니 후이부 Huy Vu. 26. 영어강사 가 기다리고 있었다.
한국말에도 관심이 많아
읽고 쓰는 것을 할 줄 아는 이 녀석은 한국말을 잘 하지 못한다.
해본 경험이 없기 때문이라는데
그러면서도 꾸준히 공부하는 녀석의 학구열은 놀랍기만 하다.
그날따라 녀석이 한국말에 대해 자세히 물었다.
교재를 통해서도 공부할 수 없는
사회적 은어나 속어를 가르쳐준다니 후이부는 매우 좋아했다.
이미 받아 적을 노트를 꺼내고 내 입만 쳐다보고 있다.
언어는 사회를 반영하는 것이고 은어나 속어는 그런 사회 현상의 한 단면이다.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 그것은 언어 학습에 커다란 도움이 될 것임이 분명하다.
받아 적을 준비를 하고 있는 후이부를 쳐다보던 내가 그의 펜을 빼앗아 들었다.
그리고 그의 노트에 또박또박 천천히 적었다.
쪽. 바. 리.
"이 단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한국 사람을 이해할 수 없고,
그러면 한국말도 배우기 힘들어..."
이렇게 시작한 내 한국말 강의는 그날 늦은 밤까지 이어지고 있었다.
아하누가
2003년 11월. 메콩델타 투어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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