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속에서 또 다른 여행을 떠나다

2003 베트남(호치민) 10화 - STAR FRUIT

아하누가 2024. 6. 29. 23:00


 

 

 

열대지방을 방문할 때마다 눈에 띄는 낯선 과일이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흔히 볼 수 없고 열대지방에서만 발견하는 과일이다.

열대과일이라는 것이 현지에서 먹으면 맛이 상당히 좋지만,

가끔 우리나라에서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에 맛을 보면 당시의 그 맛이 살아나지 않는다.

현지와는 다른 기후와 환경의 차이 때문일 수도 있고,

현지에서 태양빛을 받고 익은 과일과 수출 경로에서 배안에서 익은 과일이

차이가 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열대지방에 놀러갔을 때 그곳에서 열대과일을 맛보는 것도

여행이 주는 또 하나의 즐거움인 셈이다.

 

 

 

 

  

 

길거리 카페에 앉아

후이부(26. 영어강사)와 함께 카페스어다를 한잔 마시고 있었다.

 

이렇게 생긴 놈이다.

 

 

 

 

진한 커피에 연유를 넣고 얼음과 함께 곁들인 냉커피다.

우리 입맛에도 잘 맞아 베트남을 방문하면 하루에도 서너잔씩 마신다.

지금 쓰고 있는 이 여행기는 필요한 장면을 그때그때 사진으로 생생하게 보여주고

가끔씩 목 운동도 시켜주는, 독자편의 위주의 친독자적 여행기다.

 

 

 

 

가격표도 있으니 가격이 궁금하신 분들은 참조하자.

그런데 뭐가 뭔지 모르겠다.

 

 

 

이런 얼음을 사용한다.

처음엔 배탈이 무서워 못먹다가 하루 지나고부터 먹기 시작했다.

 

 

나란히 두 개의 커피숍이 이웃하고 있었는데

저 언니들 보기 싫어서 옆집만 잤다. 못생긴 것들이 손님와도 아는 척도 안하고 맨날 빈둥거리고 있다.

 

 

 

 

 

 

 

 

 

마침 우리 앞으로 과일 행상이 지나가자 후이부가 말했다.

 

 

"형, 이거 안 먹어볼래?"

"뭔데?"

 

 

녀석이 추천해준 과일은 STAR FRUIT라는 과일이다.

딱히 적당한 이름이 없는지 계속 STAR FRUIT라는 말만 반복했다.

길쭉하게 생긴 과일을 조금 사서 카페에서 빌린 칼로 먹기 좋게 잘랐다.

물이 많은 이 과일은 시원한 맛이 일품인데

입에 씹히는 느낌과 질감은 자두나 토마토와 비슷하나 조금 더 딱딱한 느낌이다.

과일이라기보다는 채소에 가깝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렇게 생긴 과일이다.

 

 

 

이것을 칼로 자르면 이런 모양이 나온다.

 

 

이유는 잘 모르겠고 베트남과 태국에서만 자란다는 과일이라고 했다.

그런 과일을 먹으며 들은, 이 과일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가 인상적이다.

 

 

* * *

 

 

옛날 베트남에 어느 형제가 살았다.

형은 집안의 유산을 모두 물려받아 부자가 되었지만

욕심 많은 형은 동생에게 아무 것도 물려주지 않아

동생은 매우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그런 동생이 가진 것이라곤 오직 STAR FRUIT가 열리는 나무 한그루뿐이었다.

 

어느 해 봄.

커다란 독수리가 날아와 동생 집 마당에서 자라는 나무에 앉았다.

그리고 독수리가 동생에게 물었다.

옛날 얘기니까 독수리 정도라면

인간과도 막힘없이 의사소통을 할 수 있음은 당연하다.

 

 

"나, 이 열매 좀 먹어도 돼?"

 

 

마음씨 착한 동생은 얼마든지 먹으라 했고

독수리는 열매를 맛있게 먹은 뒤 다시 날아갔다.

며칠 뒤 다시 동생의 집을 찾은 독수리가 감사의 뜻으로 흥미로운 제안을 했다.

자신의 등에 타고 멀리 떨어진 섬으로 가면 금은보화가 많이 있는데

그것을 주겠다는 얘기였다.

다만 섬에서 가져갈 수 있는 금은보화는

세 뼘을 넘지 않는 크기만 가능하다고 했다.

 

이어 동생은 독수리 등에 타고 보물섬으로 날아간 뒤

독수리의 말대로 욕심내지 않고 세 뼘만큼의 금은보화를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

동생은 갑자기 부자가 되었고 이 소문을 들은 형이 찾아와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동안의 사연을 얘기하자 형은 동생에게

그 나무가 있는 집을 강제로 빼앗았다.

아주 나쁜 놈이다.

얼마 뒤 형에게도 독수리가 날아왔다.

 

 

"나, 이 과일 좀 먹어도 돼?"

 

 

 

독수리가 묻자 형은 동생에게 들은 시나리오대로 흔쾌히 허락했고

이를 맛있게 먹은 독수리 또한

동생에게 그랬던 것과 같은 보답을 하겠다고 했다.

형도 동생과 마찬가지로 독수리 등에 타고 보물섬으로 날아갔다.

그러나 욕심 많은 형은 독수리의 주의사항을 잊은 채

무려 30뼘이 넘는 많은 금은보화를 가지고 독수리 등에 타고 돌아오려 했다.

그러나 무게를 이기지 못한 독수리와 형은 그만 바다에 빠져 죽고 말았다.

 

 

* * *

 

 

눈치가 빠르지 않은 사람도

이 이야기를 들으면 떠오르는 우리나라 전래동화가 있다.

흥부와 놀부의 이야기가 그것인데 너무도 흡사하다.

이 이야기를 듣는 동안 나는 이 이야기가 가진 본래의 재미보다

얼마나 흥부전과 흡사하게 전개되는 지가 더욱 흥미로웠다.

흥부전의 전래도 중국의 영향이 있었으니

베트남의 이 이야기 또한 마찬가지일 수 있다.

다만 이야기의 진행과 교훈, 그리고 결말이 우리네 그것에 비해 좀 투박하다.

 

 

욕심 많은 형이 정신 바짝 차리도록

군대식 얼차례를 준 우리네 교훈이 훨씬 더 인간적이다.

그리고 금은보화로 보답하기에는 사람이 제공한 서비스가

우리 이야기보다 부족하다.

다리가 부러져 죽어가는 제비를 정성스럽게 고쳐준 우리의 동화에 비해,

독수리에게 재화 및 용역을 제공한 것이라곤

겨우 나무에서 열매 좀 따 먹게 해준 친절뿐이다.

말이 친절이지 독수리가 먹겠다는 못 먹게 할 방법도 없다.

로또복권에 당첨되기에는 너무도 부족하다.

 

또한 우리의 동화는 지극 적성과 생명 중시라는 휴머니즘이 담겨 있는데

이 이야기에선 정성 담긴 노동력은 전혀 등장하지 않고

열려있는 열매를 수동적으로 제공한 것에 지나지 않으니

금은보화를 댓가로 받기엔 뭔가 부족하다.

그리고 이듬해 박씨를 물고 나타난 제비처럼

시간 경과의 리얼리티가 있어야 하는데 너무 속전속결이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형이 굳이 죽을 필요는 없었다.

이런 비교를 하면서 문득 떠오른,

베트남인의 성격을 한마디로 표현하는 명문장 한 가지.

 

 

"베트남 사람은 은혜는 갚을 줄 몰라도 복수는 할 줄 안다"

 

 

구석구석 살펴보면 상당한 차이는 있지만

이야기의 기본 진행은 우리네 이야기와 매우 흡사하다. 아니, 거의 같다.

가끔씩 여행 중에 베트남과 우리나라와의 알듯 모를 동질감을 느끼곤 하는데

이 이야기는 그런 느낌의 백미다.

어쩌면 그런 동질감이

현재 베트남이 한류 열풍이 가장 강하게 부는 나라가 되는 이유가 될 수 있고

또 한국 이미지가 좋은 몇 안 되는 나라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사이공의 하루는 또 이렇게 지나간다.

 

 

 

 

 

 

흥미로운 이야기가 포함되어 있는 스타푸르츠.

길거리 상인들에게 쉽게 구할 수 있다.

물이 많은 과일로 시원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이 과일에는

흥미로운 사연이 숨겨져 있다.

 

 

 

 

 

아하누가

2003년 11월. 데탐거리의 한 길거리 카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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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마치고 되돌아보면 이 이야기가 인상적으로 기억에 남아 있다.

후이부가 아니었으면 내가 어디서 이런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을까.

지금의 이 장면이 하이라이트가 아니었나 싶다.

하이라이트 치곤 싱겁다.

그러나 그런 싱거움은 뒤에 찾아올 단맛과 짠맛을 더욱 강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