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센 마누라는 여자보다 아름답다

주차위반

아하누가 2024. 6. 26. 00:29


 

“여보! 주차위반 딱지 끊었는데 어떻게 할까요?”

 

 

 

늦은 시간까지 사무실에서 남은 업무를 하고 있는데 아내로부터 전화가 왔다.
그리고는 대뜸 화가난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 것이다.
주차를 잘못했으니 딱지를 끊었지

그렇지 않은데 설마 딱지를 끊었겠냐고 반문하니
아내는 그게 아니란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저녁 8시에 주자위반 단속을 하면
주차장없는 사람은 어디다 차를 세우란 말이에요!!!!”


 

아내의 말에 의하면 그동안은 아무 일도 없었는데 유난히 그날만
늦은 시간에 주차위반 단속을 했다며 아직 분이 덜 풀린 목소리로
따져야 할 당사자도 아닌 내게 따지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본래의 의도는 그것이 아니었다는 말투로 내게 묻는다.

 


“파출소에서 단속했던데, 가서 따질까요?”

 

 

남들이 이 대화를 들으면 그저 답답해서 하는 소리라고 생각하거나 또는
혹시라도 따지면 딱지 끊은 걸 물러주는 일도 있지 않겠냐고
남편에게 묻는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동안 살아온 경험으로 미루어 저 말은 동조의 의견을 구하는게 아니라
이제부터 파출소에 가서 따지겠다는, 그러니까 그저 알고나 있으라는
그야말로 무시무시한 일종의 ‘통보’였던 것이다.

 

 

상황을 모두 짐작한지라 달리 설득할 방법이 없었다.

그저 알아서 하라고 했다.
먼훗날 그거 못따지게 했다고 성질만 내면 나만 피곤하니까
해결이 되든 안되든 가서 따지는 것도 안하는 것보단 나을 것 같은 생각도 들었다.
또 남들하고 심하게 싸워봐야 가는 곳은 결국 파출소일 텐데

파출소에서 싸우겠다니
몇가지 절차가 단순화되는 것 같아 오히려 이상한 안도감이 들기도 했다.

 

 


* * *

 

 


아내는 그날 뿐 아니라 며칠간 계속 파출소에 출근 아닌 출근을 했다.
그날부터 아내가 파출소에 가서 했던 행적을 경찰업무에 걸맞게
업무보고식 근무일지 형식을 빌어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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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당일 -
파출소에 가서 주차단속 사실 여부 확인. 이후 강력 항의.
파출소에서는 동네 사람의 민원으로 단속이 불가피했다는 입장 표명.
아내는 이에 전혀 승복치 않고 계속 똥고집 부림.


사건 다음날 -
차를 꽤 먼곳에 세워두고 그 파출소에 가서 그 일대의 차를 모두 주차단속하라는
민원 접수 시킴. 파출소측은 인원부족을 이유로 민원 거부.
아내는 경찰 명단 파악하여 상위 기관인 경찰서에 업무태만으로 해당 경찰을 신고.
경찰서로부터 파출소에 관련 지시가 있었는지는 확인 안됨.
아내는 3시간 동안 파출소에서 단속 나가라고 경찰을 윽박지름.


다음다음날 -
아기를 들쳐 업고 파출소로 출근. 파출소에 앉아 아기 우유 먹여가며 항의.
경찰이 일손 바쁘면 전화도 일부 받아줌.
계속 그 근방 불법주차 차량들 딱지 떼라며 다그침.
지난번 집에 도둑들어 결혼반지 모두 털린 거까지 상기시켜 생트집 잡음.
경찰, 피로의 기색이 역력함. 한 의경은 현역가지 않은 것을 후회하는 눈치 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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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며칠간의 얘기를 듣고 나니 무지막지한 황당함이 몰려왔다.
가끔 스포츠신문 가쉽란에 나오는 얘기를 볼 때보다도 더 황당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정말 그 동네 차들을 다 주차단속하면 어쩌려고 그랬는지,
그것도 아니면 공부집행 방해로 고소라도 해버리면

어쩌려고 그랬는지 알 수가 없다.
그저 다만 특유의 ‘무대뽀정신’ 하나로 초지일관 항의했을 뿐인 것만 같았다.

그러던 다음날. 모처럼 집에 일찍 들어왔더니
어찌된 일인지 아내는 파출소로 출근하지 않고 집에 있었다.

 


“허허! 어찌된 일이야? 오늘은 파출소로 출근 안해?”


 

비아냥거리듯 물으니 아내는 힐끔 째려보고는 곧 풀이 죽은 목소리로
이제는 갈 일이 없어졌다고 말한다.
아마 자신의 힘으로 할 수 있는 일에도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다.
세상의 일은 그렇게 막무가내로 해결하려 해서는 안된다는 사실을

아내가 알게 되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지만

한편으로는 남편으로서, 또 한 가정의 가장으로
아내가 무언가를 하려는데 전혀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약각의 자책으로 다가왔다.
어쩌면 좀 억지가 있더라도 때로는 아내편도 들어주는게

남편의 할 일인 것도 같았다.

 


그래서 직접 그 파출소로 가보기로 했다.
상황을 가만히 들어보고

따져야 할 일이면 아내만은 못하지만 나라도 한번 따져보고
그것이 아니면 아내 대신 나라도 사과하려는 심산이었다.
아마도 파출소에서는 깜짝 놀라 뒤로 자빠질 것이다.
3일씩 번갈아 부부가 항의하러 오는줄 알고 말이다.


 

“어디 가려구요?”

 


주섬주섬 옷을 챙겨입고 나가려는데 아내가 묻는다.

 

 

“응...파출소에 내가 한번 가보려고.”

 

 

아내는 내 대답이 몹시도 가소롭다는 이상한 표정을 짓고는 그럴 필요없다고 말한다.
아마 나까지 그 싸움에 말리는 게 싫었던 모양이다.

 

 

“아까 갔다 왔어요. 근데 다들 모른 척 하더라구요. 그래서 어제 처럼 따졌더니
한 경찰이 턱으로 어딘가를 휙 가르치지 뭐예요?”

“그게 뭐였는데?”

 

 

아내는 배시시 웃는다.
아내가 웃을 때는 대부분 호탕하게 웃는데
저렇게 갓 시집온 색시처럼 웃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는 것만 같은
불길한 생각만 머리속에서 떠나지 않고 있었다.

아내의 말에 의하면 경찰이 턱으로 가르킨 것은 벽에 걸린 화이트보드였고
거기에는 이런 말이 써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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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4 서 61XX 프라이드 베타, 절대로 딱지 떼지 말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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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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