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노는 작은 방에서 아이 장난감을 정리하고 있었다.
몇 개의 바구니에 들어있는 장난감을 방바닥에 쏟고
그것을 차근차근 분류해서 다시 커다란 바구니에 넣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본 아내는 놀란 표정으로 몹시 반가워한다.
가끔 상황과 속사정을 알지 못하고 남에게 좋은 느낌을 줄 때가 있다.
그것도 일종의 오해라면 오해겠지만
억울함이 깃들여지는 '상식적인' 오해에 비해
한번 받을만한 오해다.
나는 아이들 장난감을 따로 정리하진 않는다.
집안 일 도와주지 않는 것이 뭐가 그리 잘났냐고 누군가 묻는다면
딱히 대답을 하진 않겠지만,
그래도 나는 아이 장난감을 분류에서 정리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는다.
아이 장난감이야 아이가 노는대로 놔두어야지
그것을 어른의 시각과 기준으로
레고는 레고대로, 집짓기는 집짓기대로 정리를 해둔다면
우리 아이는 '백남준'같은 창의력은 고사하고
새로운 발상과 창조적인 사고를 기대하긴 힘들 것이다.
장난감이 미래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이유는 아니겠지만 아무튼 그렇다.
레고를 쌓다가도 나무로 된 집짓기가 나오면
바로 응용할 줄도 알아야 하고
자동차를 가지고 놀다가 레고가 나오면 바로 차를 개조하는 편이 더 낫다.
또한 그런 걸 어쩌면 아이들은 더 좋아하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어른의 기준이란 참으로 이상하여
그것이 반드시 제품별로 구분되어 있어야 속이 편한 모양이다.
과연 어른들이 속 편하려고 하는 정리인가? 아니면
아이들 편하게 놀게 하려는 정리일까?
어쩌면 그런 생각도 내가 편하려고 아이들의 창의력의 발전을 빌미로
천성적인 게으름을 위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단호하게 확고한 장난감에 대한 나의 기준으로 볼 때
내가 방안에 앉아 장난감을 쏟아 그것을 하나하나 정리한데는 이유가 있다.
그 이유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대단한 배려였으면 얼마나 좋겠냐만
불행히도 나는 또한 그렇게 자상하지도 않다.
며칠전부터 보이지 않는 TV리모콘을 찾기 위함인데,
여기저기 다 찾아보았지만
나오진 않아 마지막 의심이 가는 장난감 통을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들 장난감 통을 뒤지는데 손만 쑤셔넣고
TV리모콘을 낚시하듯 찾는다던가 또는
뒤집어엎어 놓고 TV리모콘을 찾았다고 정리를 중단해버리는 일이 생길까봐
아예 작정하고 장난감을 차례차례 정리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도 아내는 그 모습이 몹시 자상한 남편의 모습으로 비춰졌는지
10뿌리 사다놓고 혼자만 먹던 인삼을 갈아서
우유에 섞어 쥬스를 만들어왔다.
이 맛있는 걸 혼자만 먹었다니.....
아무리 찾아도 리모콘은 나오지 않는다.
벌써 추석 연휴의 첫날이 지나갔고 그 첫날은 아직 체력이 남아 있어
왔다갔다를 반복하며
TV를 끄고 켜고 소리를 줄이고 높이고 채널을 바꾸었지만
이젠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한다.
앞으로 남은 휴일을 리모콘 없이 어떻게 보내란 말인가.
아무래도 리모콘은 잘 돌아다니는 둘째 녀석에 의해 집안 구석 어딘가에
깊숙이 숨어 들어간 모양이다.
내일 또 찾아봐야지.
내일은 싱크대 밑 수납장을 잘 정리했다고
아내가 또 인삼쥬스를 만들어 줄 것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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