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셋 여자 한 분

고추

아하누가 2024. 6. 24. 01:22


 

남자 아이들이 '엄마, 이게 뭐야?'라고 물으며

자신의 신체 특정부위를 가리킬 때
대부분의 엄마나 아빠, 할머니는 이렇게 대답한다.

 

 

"고추"

 

 

이중에는 '꼬추'라고 일부러 강한 발음을 하며

약간의 장난끼를 보이는 사람도 있고
어떤 할머니는 '잠지'라고 말하며 고추와의 관계를 명확하게 구분하려는
깊은 배려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그 모든 대답의 공통점은

아이의 질문에 '자X' 라던가 '성기', '생식기' 등의
의학적이며 생물학적 언어를 구사하여 설명하지는 않는다는 점이다.

 

우리 집 또한 여느 평범한 집의 경우와 마찬가지여서

'고추'라고 가르쳐주었다.
아니, 다시 설명하면 그 단어말고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는 얘기가 된다.

 

 

아침에 큰 녀석 손을 잡고 놀이방에 가려고 집을 나서는데
골목길에 가을 햇살을 환하게 받은

탐스러운 빨간 고추들이 돗자리 위에 널려있었다.
앞집 할머니가 말리려 널어 둔 것인가 보다.
탐스러운 빨간 색에서는 가을의 정취가 물씬 흘렀고 그것을 보는 아이 또한
그냥 지나칠 수 없었을 만큼 강렬한 느낌이었는지 이내 내게 묻는다.

 

 

"아빠, 저건 뭐야?"

 

 

대수롭지 않게 자연스러운 말투로 대답했다.

 

 

"응? 저거? 고추야 고추"
".....?"

 

 

큰 녀석은 이내 심각해졌다.
자신이 알고 있는 고추는 자신의 몸에 붙어 있는,

중요한 일부분으로 알고 있는데
그것이 저렇듯 빨갛게 염색된 채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으니
녀석의 심각함은 이미 정도를 넘은 듯했다.
하나도 두 개도 아닌 수백, 수천개의 고추가 잔인하게 잘리어

골목길에서 뒹굴고 있으니 이 얼마나 심각한 고민이겠는가.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해서 어린 시절 내가 잘 듣던
어른들의 놀림의 말인 '자꾸 울면 고추 떼간다~'라는 농담을 했다가는
이 녀석이 너 죽고 나 죽자의 심정으로 길거리 전봇대를 붙잡고
자해를 할 지도 모르는 상황이었다. 나름대로 설명을 했다.

 

 

"응, 그 고추는 이러저러 한거고 이 고추는 이러저러 하는거야..."

 

 

녀석은 별로 반응이 없다.
내 말이 거짓말로 생각되는지 애써 나의 친절한 설명을 외면하고 있다.
도대체 누가 '고추'와 '고추'를 단지 비슷하다는 이유로 상용화 시킨거야?
얼른 새로운 단어를 연구해서 둘째 녀석이 말을 하기 시작할 때는
'똘똘이'라던가, '뺑글이' 같은 신조어를 개발해야겠다.
뜻이 뭐냐고?

그것을 지칭하는 명사가 그렇다는데 뜻이 뭔 필요가 있겠나.

몇몇 주변 분들하고 합심하여 새로운 단어를 대중화 시켜야겠다.
즉, 어른들의 고추는 이미 불리워지는 이름도 있고 또한 그 이름을 섣불리
사회 생활하며 지칭할 일은 극히 드무니 생략하고
그 경우에 대비되는 아이들의 고추를 새로운 단어로 대치하여
식물학적 용어인 '고추'와 생물학적 용어인 '고추'를 명확히 구분해야겠다.
아빠는 원래 할 일이 많은 법이다.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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