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 일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제일 먼저 하는 일이란 머리맡에 벗어 둔 안경을
찾아 쓰는 일이다. 대부분 안경을 쓰고 생활하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아침 첫 일과이기도 하다.
그날은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안경을 썼는데도 세상이 밝아지지 않았다.
안경을 쓰면 뿌옇던 세상이 밝아져야 함이 상식인데도
세상이 밝아지기는커녕 더 뿌옇게 흐려지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인지 정신을 차리고 상황을 판단해보니
아들 후연이가 머리맡의 안경을 하도 만지작거려 이미 안경알은
세상을 밝게 볼 수 없을 만큼 뿌옇게 더렵혀져 있었다.
반짝이는 것이어서 흥미로운지 아니면 무언가 그 안에는 재미있는
것이라도 숨겨져 있는 걸로 생각했는지 아들 후연이는 틈만 나면
내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놀곤 했다.
결국 며칠 뒤 잠에서 깬 나는 머리맡에 있어야 할 안경은 없고
대신 안경다리 하나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장면을 보게된다. 끔찍했다.
눈에 보이는 다리 하나를 제외한 다른 몸체들의 모습은
일부러 상상하지 않아도 저절로 떠오르게 마련이다.
결국 새 안경을 했다.
그리고 그날 이후 잠잘 때 안경은 항상 잘 숨겨두고 잔다.
시간은 어느덧 물처럼 흘러 어느덧 아들 후연이는
안경 정도를 가지고 놀 나이는 이미 졸업했고
나는 예전 버릇처럼 안경을 머리맡에 두고 잠을 잔다.
그런데 오늘 아침 시간이 마치
3년전으로 되돌아가기라도 한 것처럼 똑같은 사건이 벌어졌다.
둘째 아들 의연이가 제 형이 그랬던 것처럼
머리맡의 안경속에 숨겨진 작은 세상을 탐구하려고 만지작거리다
결국 다리 한짝만 방바닥에서 발견되는 비참한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아빠 안경이 눈에 안 맞을 즈음이면, 아빠 안경이
유행에 뒤떨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새 안경을 장만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드는 두 녀석은 대단한 효자인가?
안경을 새로 했다. 하지만 돈은 아깝지 않다.
둘째 아들 의연이도 제 형이 그랬던 것처럼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는
얘기일테지.
안경이야 얼마든지 다시 맞출테니 건강하게 자라다오.
이제 둘째 아들 녀석도 안경을 만지작거리며 노는 것에서 졸업하면
내 안경은 누가 새로 맞춰줄까.
아하누가
그리고 두 녀석은 10년 뒤 안경을 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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