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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아주 오래전에 전국의 TV를 강타하며
청소년들의 가슴에 환상의 비수를 꼽던 외화 프로그램이 있었습니다.
이름하여 <600만불의 사나이>라는 프로그램으로,
지금 환율이나 물가로 환산해도
엄청나게 비싼 놈이 나오는 외화시리즈였습니다.
우주비행사 출신인 주인공 스티브는 우주비행 훈련중 심하게 다쳐
600만불을 들여 인조인간으로 변신,
사회를 위해 그 초인적인 힘을 쓴다는 얘기가 주요 내용입니다.
돈을 누가 중간에 삥땅을 했는지 한쪽 눈은 마치 개눈을 박은 것 같이
게슴치레했습니다.
물론 그 긴 얘기를 여기서 다할 순 없고….
그 외화에서 기억나는 장면이 있습니다.
미식축구 선수 출신 청년과 함께 중요 인사를 구출하려고
납치범들의 허술한 경비를 틈타 잠입을 시도합니다.
거기서 600만불 짜리 스티브가 말합니다.
“야! 저기 능선 보이지, 내가 경비 한놈을 밀칠테니
저기까지 X나게 뛰는거야! 알지?
어쨋든 그 미식축구 선수는 까마득히 멀게만 느껴지는 목적지인
능선을 바라보다가 이렇게 말합니다.
“어휴~ 달 만큼이나 멀게 느껴지는데요?”
그러자 전직 우주비행사인 스티브가 가소롭다는 듯 개눈 같은 눈이
새우눈이 되며 말합니다.
“난 달에 갔다 왔지만 생각보다 달은 그리 멀지 않다네”
하고자 하는 얘기는 바로 이 얘깁니다.
한마디로 직접 갔다 왔거나 직접 해봤다는 사람 앞에서
우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는 수 없이 - 물론 영화 시나리오 때문이기도 하지만 - 두 사람은
달나라라도 갈듯한 속도로 뛰어 적진에 칩입하여 인질을 구하게 됩니다.
역시 무조건 직접 해봤다거나 또는
그 분야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의 말이 최곱니다.
바로 이 논리가 가장 철저하게 적용되는 곳이 우리나라에 한 군데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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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은 바로 다름 아닌 내가 일하는 사무실입니다.
사무실 사람들에게는 그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불문율이 하나 있는데
바로 그것이 앞에서 말한 내용입니다.
즉 어떤 분야에 대해서 토론이나 진위 여부 등 각각의 의견이 대립될 때
그 분야에 대해서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사람의 의견이
맞는 걸로 합의를 봅니다.
가장 가까운 분야라는 것이 문제가 되면 될까
이미 가장 가까운 사람으로 결정난 사람의
의견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프랑스에 관한 얘기를 하다가 서로가 알고 있는 상식이 대립될 때
불문학을 전공한 사람을 부인으로 둔 사람 말이 절대적으로 맞습니다.
이거 아니라고 우겼다가는 왕따됩니다.
정외과 출신이 국회의원 이름을 잘못 말해도 그 이름이 맞는 겁니다.
이것도 우기면 큰일납니다.
한번은 동료 직원이 집에서 동물의 왕국을 열심히 보고 와서는
파충류 얘기를 하며 매우 흥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어떤 부분에서 갑자기 의견의 대립이 생겼습니다.
‘그건 잘 못된 것 같다, 아마 잘 못 본걸 것이다’ 라는 대립을 치열하게 하던 중
한 사람이 말했습니다.
“내 동생 지금 서울에 한 여고 생물선생님으로 재직중이다!”
그러자 모두들 입을 다물었습니다. 달리 변명할 엄두가 안났습니다.
더욱이 그 사람은 ‘1심방 2심실’이라는,
평소에는 엄두도 못낼 과감한 전문용어까지 사용한 상태였습니다.
물론 그 뒤로 그 사람은 생물 분야도 섭렵하게 되었습니다.
또 한번은 주전자의 손잡이 위치를 두고
심한 물리학적 견해가 대립된 적이 있었습니다
(하여간 이 사무실 사람들은 뭐 그리 아는 것도 많은지 그런 문제에 있어서는
매우 치열합니다). 그런 대화가 오가던 순간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럼 각자들 물리학과 어떤 관계가 있어?”
그러자 다들 곰곰히 생각에 빠졌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다들 주변에 물리학과 출신도 없고 식구중에도 없고
아는 사람 중에도 없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중 한사람이 말했습니다.
“나 고3 때 담임선생님이 물리 선생님이셨다!”
그러자 다들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관계가 있느냐, 그 정도로 우길라고 하느냐 등등 껄껄 웃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그 말을 한 사람이 붉그레진 얼굴로 되물었습니다.
“그럼 나 보다 물리학에 더 가까운 사람 있어?”
잠시 분위기는 정적이 깔린 듯 조용해졌습니다.
한두명씩 고개를 흔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그 이상의 관계를 찾지 못했습니다.
하는 수 없이 졸지에 물리학의 귀재가 된 그 동료는
말도 되지 않는 최신 학설을 떠벌이며
주전자의 손잡이를 괴이할 정도로 마음껏 유린하고 있었습니다.
그래도 한사람으로 결론이 지어지니 더 이상의 논쟁이 없어
역시 그 불문율은 좋은 것이라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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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것이 항상 좋은 것만은 아닙니다.
그것 때문에 불편해질 때도 있으니까요.
형광등을 갈아 끼울 때 우리 사무실에 있는 사람중에 기계공학과 출신을 시킵니다.
그러면 기계공학과 출신은 펄쩍 뜁니다.
그의 주장은 흔히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는 달리
기계와 전기는 아무런 관련도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때의 다른 사람 반응은 이렇습니다.
“그럼 정외과 나온 내가 해야 하나?”
“전기의 ‘전’자랑도 전혀 관계없는 내가 하리?”
울며 겨자 먹기로 형광등은 늘 그 사람이 갈아 끼웁니다.
나도 전문 분야가 하나 있습니다. 다름 아닌 미국과 영어에 관한 것입니다.
영어를 잘 하냐구요? 소가 웃다가 까무라칠 얘깁니다.
다만 유일하게 미국에 갔다 왔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그것도 지난번 미국에 대한 기사가 신문에 났을 때
그랜드캐년에는 시조새가 산다고 우기는 바람에 그렇게 되었습니다.
다들 직접 갔다 왔다는 그 말 한마디에 억울함을 참으며 인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는 영어와 관련된 일만 생기면 나를 시킵니다.
사무실 전화 한대가 어느 은행과 번호가 비슷해서
은행이냐는 전화가 자주 오는데 가끔은 외국에서도 옵니다.
그럴 때 마다 나를 바꿔줍니다. 환장하겠습니다.
인터넷에서 야한 그림 보러 다니면 이름을 등록하라는 부분이 나옵니다.
그래야 보여준다고 하지요. 그리고 나면 나중에 인터넷 메일이 옵니다.
방문해줘서 고맙다는, 대충 그런 내용인가 봅니다.
그런 메일이 올 때마다 나를 불러 해석해 달라고 우겨댑니다.
처음엔 황당해서 그냥 웃고 말았는데 요즘은 아무렇게나 해석합니다.
이러저러해서 저러이러하니 요러조로 하자는데? 라며
되지도 않는 말로 해석합니다.
그런데도 듣는 사람도 진지하게 듣습니다. 미치겠습니다.
(참고로 야한 사이트에 방문하면 [18세 이상] - [18세 이하] 버튼이 영문으로
표기되어 있습니다. 혹시 [UNDER 18] 눌러 보셨는지요?
그거 누르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그러면 어떤 사이트는 ‘디즈니랜드’로 갑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한 직원은 자신의 영어 실력이 형편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신이 나서 말하다가 우리 사이에서
영어를 제일 못하는 왕따로 찍히기도 했습니다.)
요즘은 내게 또 하나 새로운 전문 분야가 추가되었습니다.
바로 편지 봉투나 서류 봉투에 주소와 이름을 쓰는 일입니다.
처음엔 자꾸 나보고 하라길래 그건 내 분야가 아니라고 우겼습니다.
그랬더니 모두들 내게 합창하듯 이렇게 외쳤습니다.
“작가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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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생각해보니 이건 분명히 좋지 않은 제도입니다.
사람을 한 방면의 바보로 만드는 것 같습니다.
예전에는 두루 박식한 사람이 더 인정을 받았었는데
요즘은 전공학문이 너무도 세분화되어
꼭 전공 아니면 다른 일은 전혀 못하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미술가로 알려져 있지만
비행기를 설계하고 천문학까지 두루 박식했다고 합니다.
어쩌면 앞으로 사회는 더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을
원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앞으로 전공 분야만을 인정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그것 말고도 그 사람이 가진 숨겨진 많은 능력을 더 인정해야 할 겁니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것은 한가지만
아는 바보가 되진 말야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아하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