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에드몽 로스탕의 소설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Cyrano de Bergerac)>의
주인공 시라노는 너무 큰 코 때문에 고민하는 추남이다.
당시 프랑스에는 코가 크면 뭐가 좋다는 농담이 유행하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는 심각한 외모 컴플렉스에 빠진다.
그러나 그는 당대 최고의 시인이자 검객으로 문무를 겸비한,
그러면서도 사랑이 없으면 살 수 없는 로맨티스트이며
사랑을 바칠줄 아는 진정한 기사도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프랑스인의 이상이다.
그 어떤 시인이나 검객도 그 앞에선 무릎은 꿇어야 할 정도로 위대한 존재지만
자신의 추한 용모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 록사느에게 고백은커녕
가까이 다가가지도 못하고 먼발치에서만 바라보는,
사랑 앞에선 한없이 무력하기만 모습을 보여준다.
록사느가 사랑하는 미남 청년에게 한없이 질투를 느끼면서도 그의 입을 빌려
불타는 사랑을 대신 토해 낼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 미남 청년이 전사하자
수녀가 되어버린 록사느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던 시라노는
결국 자객의 손에 생명을 잃는다.
그 순간 록사느는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시를 통해
자신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사람은 바로 시라노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소설에 나오는 추한 외모를 가진 시라노는 프랑스인들이 꿈꾸는 모든 매력을
완벽히 갖춘 이상형이라 한다. 외모야 부모가 물려준 ‘운명적’인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낭만과 용기, 그리고 지성을 두루 갖춘 남성상에
자신을 연결시키고 싶어한다고 한다.
그리고 또 자신의 내면에 적지 않은 시라노적 요소가 잠재해 있다고 믿는다.
바로 이 작품은 낭만적인 소설의 하나로
프랑스에서 끊임없이 영화화되고 사랑받는,
프랑스인들이 ‘기꺼이 되고 싶은’ 영원한 자화상을 그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 시라노가 현 시대에 살았으면 어떤 모습으로 살았을까?
* * *
아마도 인터넷을 남보다 훨씬 열심히 했을 것이다.
우선 뛰어난 문장력을 바탕으로 각 게시판을 휘어잡았거나
아니면 대화방에서 사람들로 하여금 동경의 대상으로 자리잡았을 것이다.
때로는 전화 통화를 하면서
자신의 내면적 매력을 충분히 보여줄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결국 현대판 시라노 또한 그전의 그가 그랬던 것처럼
그 흔한 번개 한번 못나가고 동호회 정기모임 한번 못나가며,
스스로 자신을 얼굴을 나타내지 않는 신비의 인물로 인정해주길 바라며
홀로 빈방에서 가슴앓이를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거울을 보며 한탄한다.
‘왜 세상은 내게 이렇게 추한 모습을 주었는가?’
하지만 모든 인간에게는 무언가 한가지씩 부족함이 있게 마련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애써 상기하며 자위한다.
그러다가 거울 밑에 붙은 광고 스티커를 발견하게 된다.
광고 스티커의 내용은 이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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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수술 전문. 상커플 기본. 빈약한 가슴 걱정마!
록사느 성형외과 전화 016-395-5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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쾌재를 부른 시라노는 2달간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아 성형수술을 받는다.
수술을 성공리에 마친 시라노는 그 이후 각종 번개나 정기모임은 물론
선이나 소개팅, 미팅 등도 마다 않고 나간다.
뿐만 아니라 반상회, 정당 연설회, 주주총회 등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물론
심지어 조금이라도 안면이 있는 사람의 결혼식, 돌잔치, 칠순잔치,
계모임, 퇴폐관광 등 갈 수 있는 모든 행사에 참가한다.
집에 돌아와서 거울을 보며 시라노는 생각한다.
‘능력이 있으면 외모도 바꿀 수 있지 암...그렇고 말고’
그러나 이미 그가 가지고 있던 지성과 용기는 오래전에 사라져버린 상태였다.
* * *
최근 대전의 한 백화점이
성형수술 티켓을 경품으로 제공키로 해 논란이 일고 있다.
더욱이 그 백화점은 주된 고객이 청소년과 20대의 젊은층이어서
여성단체를 중심으로 사회단체의 항의가 빗발치는등
더욱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이 백화점은 일정한 세일행사기간에 5만원 이상의 물품을 구매하는 고객에게
경품 응모권을 나눠주고
추첨을 통해 100만원 상당의 쌍꺼풀수술과 코수술 당첨자를 1명씩 뽑아
원하는 성형외과에서 수술을 받을 수 있는 경품제도를 시행했다.
이와 함께 살빼기 티켓 2장과 피부관리 티켓 2장도 경품으로 내걸었다 한다.
물론 시대적 흐름을 감안할 때 외모의 중요성은 그 어느때보다 강조되고 있으며
또한 그 어느것 보다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아니, 어쩌면 돈을 들여서라도 부족한 외모를 가꾸는 것도 현 시대를 살아가는
지혜로운 방법일 수도 있다.
따라서 성형수술을 판촉물로 제시한 백화점의 마케팅도
다분히 현실적이며 효과적일 수 있다.
하지만 뭔가 개운치 못한 느낌이 드는 것은 또한 무슨 이유일까?
성형수술의 극명한 장단점을 시대와 도덕에 맞게 규정하려니 혼랍스럽다.
또한 성형수술이 일반화되어
모든 사람이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릴 것만 같은 생각을 하니
몹시 혼란 스럽다.
예전에 성형수술을 받은 사람의 미모에 반해 사랑에 빠져버린
사람이라든가, 성형수술 때문에 관상을 보는 역술인들의 혼란을 생각하니
나 또한 갑자기 혼란스러워진다.
하지만 사람의 외모보다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내면의 매력이 더 중요하다는
시시콜콜한 잔소리 같은 진리가
많은 사람들에게는 아직도 굳게 존재하리라 믿고 싶다.
아니, 믿는다.
아하누가
이건 걱정이 아니라 단순 예상이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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