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머칼럼

수표

아하누가 2024. 1. 17. 19:27

 

어떤 사람이 화장실에서 볼 일을 마친 후

비로소 휴지가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주머니를 이리저리 뒤져보아도 화장지를 대용할만한

그 어떤 것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찾은 것이 만원 짜리 지폐 한장.

그 사람은 옆칸에서 같은 용무로 앉아 있는 사람에게
화장실 밑으로 만원 짜리 지폐를 내밀며 말했다.

 

 

“아저씨! 혹시 이거 천원 짜리로 바꾸어 주실 수 있어요?”

 

 

여기까지 말하면 일단 이 글을 보시는 몇 분은 금방 흥분할 것이다.
아니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밀레니엄 시대가 코앞에 다가왔는데 언제적 유머를
아직도 써 먹느냐, 그 얘기는 지겨운 만화에서도 본 일이 있다,
요즘 쓸 게 없어 옆집 뒷집 찾아 헤맨다더니 결국 저 지경이 되었다는 등....
하지만 그 얘기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 얘기를 듣고 과연 천원이나 만원짜리 지폐로
어떻게 마무리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했을 뿐이다.

 

 

 

 

       *          *          *

 

 

 

 

우선 지폐를 만드는 지질의 탄력성을 감안할 때 과감하게 비벼야 할 것이다.
눈물이 나겠지만 비벼야 한다. 어쩌면 혹시나 남들이 주워서 잘 닦은 후
다시 쓰는 일을 생각한다면 처참하게 비비는 편이 나을 것이다.
그래서 우선 지질의 강도와 경도를 현저하게 떨어뜨린다.
그리고 이를 정확히 2등분하여

각 1회, 도합 총 2회 사용을 목표로 정중앙에 조준하여
손에 안 묻도록 작업한다.


가장 힘든 작업이 첫번째 사용이다.
이 때 작업을 잘 해야지 잘 못 했다간 지폐 한장이 더 필요하게 된다.
그리고 2등분한 두번째의 지폐 조각으로 마무리를 말끔하게 한 다음
예로부터 전해오던 전술, 꼬깃꼬깃 접어서 뾰족한 모서리 부분으로
혹시 묻었을 지 모르는 손톱 밑을 정리하는 전술을 응용한다.
그러면 천원짜리 한장으로 비교적 깔끔하게 마무리 될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에 누가 지폐를 가지고 뒷 마무리를 하겠는가?

상식적으론 없어야 정상이다.
그렇다고 이렇게 아까운 시간에 한번 웃어 보자고 한 소릴까?

그것 또한 절대 아니다.

 

 

 

 

       *          *          *

 

 

 

 

지난 2월 24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르네상스호텔 주변 테헤란로에서
급한 김에 누군가 으슥한 건물 모퉁이에서 일을 보고
수표 석장(100만원1매, 10만원 2매)으로 뒤처리를 한뒤

사라져버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멍청하게도 3장이나 썼다.


이 덩어리(?)를 처음 발견한 근처 만화가게 주인은
인근 역삼1 파출소에 신고를 했고 파출소측은 조회를 통해

문제가 없는 수표임을 확인,
습득물로 간주해 접수한 뒤 25일 강남경찰서 방범지도계로 넘겼다.
하지만 28일 현재 분실신고도 접수되지 않았다고 하니
이 얼마나 기가 막히고도 황당한 사건인가.
이 사건에 대한 각계의 반응은 이렇다.

 

 

청와대 : 북한의 소행이 분명하다. 민심을 흐트러뜨리려는 고도의 전술이다.
            이럴 때일수록 절약정신을 잃지 말아야 한다.
국민회의 : 야당의 소행임이 확실하다. 발견된 수표가 한빛은행 발행으로 보아
               한XX당이 아니겠는가? 야당은 빨리 비위생적 노상투쟁을 중지하라.
야당 : 정부의 수표관리에 허점이 드러났다. 얼마나 불법 발행을 많이 했으면
         수표를 밑닦이로 쓰겠는가? 그동안 밑닦이로 쓰인 대선자금을 공개하라!
클린턴 : 르윈스키가 자서전으로 돈 벌더니 돈지랄 하고 있다. 중지를 촉구한다.
PC통신사 사장 : 유머란에 글 쓰려고 누군가 일부러 그 짓을 했다. 유머란을 없애겠다.
블래터 FIFA회장 : 그러니 월드컵을 2년마다 개최해야 한다.
신창원 : 수표는 추적당할 수 있으니 난 현금만 쓴다네.
세종대왕 : 호로 자식들. 만원짜리로 그랬단 봐라......

 

 

 

       *          *          *

 

 

 

 

유실물법 및 민법에 따르면
수표 습득신고 후 1년 14일이 경과한 2000년 3월 9일까지‘유실자가 청구권을
행사하지 아니하거나 권리를 포기할 경우’습득을 신고한 사람이

소유권을 갖는다고 한다.
따라서 주인이 나타나지 않으면 22%의 소득, 주민세를 제외한 금액을
신고자에게 지급하며,

주인이 나타나면 사안에 따라 5~20%의 사례금을 받게 된다고 한다.
또한 주인이 나타난다고 해도 수표는 현금이 아니므로

화폐 훼손에 따른 처벌은 받지 않는다고 하니

누군가 집 화장실에 비데를 설치하고픈 사람 있으면
쪽팔림을 무릅쓰고 주인이라고 나서도 되겠다.

 

 


내가 웃기지도 않은 글을 억지부려가며 유머란에 올리지 않아도
이 세상에는 유머같은 일들이 정말 많이 생긴다.
아무리 세상은 늘 변한다지만 변해도 이상하게 변하는 것 같다. 

 

 

 

 

 

 

 

 

 

 

아하누가

이 글은 정말 오래전에 쓴 글인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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