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누나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니까
아마 내가 국민학생(지금의 초등학생)이었을게다.
누나는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답게 틈틈이 써둔 시며 수필을
예쁜 공책에 정갈하게 담아 두었다.
가끔씩 누나 몰래 들쳐보며
어린 나이에 글쓰기에 대한 의욕을 조금씩 만들고 있었으니...
그때 읽었던 ‘웃음’이라는 제목의 수필 한편이 기억난다.
하루종일 우울하여 뭔가 웃음거리를 찾다가 지쳐갈 무렵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웃음을 보고
그만 웃고 말았다는 내용이었다. 그때는 그저 그러려니 싶었다.
* * *
아기를 키우다 보니 아기들 때문에 웃게되는 일이 한두번이 아니다.
어떤 시각으로 보면 웃음의 소재라고 딱히 말하기에도
너무도 당연한 일이기도 하고
또한 그런 일들은 아마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어도
저마다의 진리로 남아 있을 것이다.
아기들 때문에 웃게 된 몇가지 사례를 기억해보면 -
[사례 1]
우리 아들 후연이는 싱크대 맨 윗서랍을 열고
우유 먹는 빨대를 죄다 꺼내 놓고 놀다가 늘 혼난다.
그러다가 애 엄마가 그 빨대를 두번째 서랍에 넣자
후연이는 빨대를 못 찾아 그 놀이를 포기했다.
[사례 2]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의 아기는
아빠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적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가위바위보! 하기 전에 낼 것을 미리 머리위에서 쥐고 있기 때문이다.
[사례 3]
옆집 사는 어린애는 이불에 오줌을 싸고 아침에 이런 핑계를 댄다고 한다.
“엄마! 어젯밤에 비왔나봐!”
[사례 4]
아기가 목욕탕에서 물장난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애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괜시리 웃음이 나온다.
- 그 물 먹으면 안돼!
- 꼬추 만지지 말랬지?
- 그러게 왜 비누로 눈 비비니?
이런 사례는 주인공이 아기였으니 웃음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그게 뭐가 웃기냐고?
이 얘기가 얼마나 웃긴 얘긴지 다음의 가정을 보면 알게 된다.
주인공이 아기가 아니었다고 가정해보자.
[가정 1]
우리 삼촌은 싱크대 맨 윗서랍을 열고 우유먹는 빨대를 죄다 꺼내 놓고 놀다가 늘 혼난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그 빨대를 두번째 서랍에 넣자 삼촌은 빨대를 못찾아
그 놀이를 포기했다.
- 참으로 웃기기는커녕 매우 심각한 일이다. 심각해도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삼촌은 당장 정신과를 찾아 진단을 받아야 한다.
[가정 2]
같은 사무실에서 일하는 동료는 마누라랑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긴적이 없다고 한다.
왜냐하면 가위바위보! 하기 전에 낼 것을 미리 머리 위에서 쥐고 있기 때문이다.
- 어떻게 이 사람이 산업사회의 한 구성원이 되어 회사의 업무를 담당하는지 모르겠다.
웃기지 않는 것은 물론 측은함이 느껴진다. 또한 그 사실을 알면서 한번도 져주지 않은
마누라도 문제가 있다. 얄밉다. 콩가루 집안이 확실하다.
들을수록 성질만 더러워지는 얘기다. 하나도 안 웃긴다.
[가정 3]
옆집 사는 아저씨는 이불에 오줌을 싸고 아침에 이런 핑계를 댄다고 한다.
“여보! 어젯밤에 비왔나봐!”
- 이 얘기 또한 당연히 웃길 리는 없고 오히려 인생의 심한 비애와 허무감을 느낀다.
일기예보하는 김동완 아저씨가 들어도 매우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자신의 직업에 회의를 느낄 것이다.
[가정 4]
고등학생 목욕탕에서 물장난하고 있을 때 다음과 같은 엄마의 목소리를 들으면
괜시리 웃음이 나온다(과연 나올까?).
- 그 물 먹으면 안돼!
- 꼬추 만지지 말랬지?
- 그러게 왜 비누로 눈 비비니?
이 경우 또한 절대 웃음은커녕 종합적인 대책이 필요해진다.
청소년이라는 정서적 혼란의 나이를 감안,
우선 구성애 아줌마를 초대하여‘인체의 구조’같은 기본적인 성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황수관 박사를 초대하여 비누를 눈에 비비면 왜 쓰라린지
호기심을 풀어줘야 한다. 웃기지도 않을 뿐더러 돈도 많이 들어 눈물이 난다.
* * *
얼마전 아내가 아들 목욕시키다가 문득 이런 말을 했다.
“여보! 얘도 때가 밀리네?”
그러면서 아내는 혼자말로 중얼거린다. 어느덧 세상의 때가 묻어 간다고.....
아내가 남긴 말중에 기억에 남는 몇 안되는 명언이다.
꼭 그 이유 때문에 때가 나오는 건 아니겠지만
정말 이땅에 태어나는 우리 후손들은
세상의 더러운 때가 묻지 않게 자랐으면 한다.
이 글을 맺으면서 나도 그동안 유머 글도 많이 썼으니 이제 무언가
명언을 남겨야 할 것 같아 나름대로 고민하다가 멋진 말이라 생각되는
명언 한마디를 남긴다.
“이 세상 가장 아름다운 웃음은 아기들과 함께 하는 웃음입니다”
아하누가
그 후연이가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다.
2024년 1월 현재. 그 후연이는 이미 군대도 다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