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수세식 화장실을 이용하면서
우리는 굳이 ‘인내’라는 단어를 떠 올리지 않는다.
'인내는 쓰나 열매는 달다’와 같은 명언도 굳이 생각하지 않는다.
그럴만한 아무런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는 사람들의 인내심은
말할 수 없이 대단하다.
그 열악한 환경속에서 임무를 완수하려면
보통의 인내력으로는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지금 자라나는 어린애들에게 어른들은 인내심이 부족하다며
혀를 끌끌 차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그 어린이들이
이 재래식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재래식 화장실은 인간이 가지는 인내의 한계까지 느끼게 해주어
인생을 살아가는데 중요한 인내심을 길러준다.
참을 ‘인’자 셋이면 살인도 막을 수 있다.
재래식 화장실 세번만 가면 참을 ‘인’자가 이마에 저절로 새겨진다.
2.
재래식 화장실은 집중력을 필수로 한다.
장기 체류를 불가능하게 하는 상황으로 인해
화장실에 들어가기 무섭게 30초 안에 해결을 해야 한다.
짧은 시간에 해결하지 못하면 큰일난다.
만약 30초 이내에 해결하지 못하면 황급히 철수한 뒤
적당한 시기를 노려 2차 시도를 해야만 한다.
따라서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면 순간적인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집중력이 뛰어나게 되어
무슨 일이든 무서운 집중력으로 실수없이 처리할 수 있다.
3.
재래식 화장실은 변비와 치질을 예방하는데 더없이 중요한 장소다.
변비라 함은 나와야 하는데 안나오는 것이고,
치질이라 함은 안나오다 보니 오래 앉아 있으니
똥꼬가 어쩌고 저쩌고......해서 생기는 병이다.
따라서 강한 집중력을 가지고 필살의 의지로 볼 일을 봐야 하는
재래식 화장실이라면 그러한 고민은 없어진다.
볼 일 제대로 보니까 밥도 잘 먹는다. 밥 잘먹으니 건강해진다.
건강해야 웃긴 글을 읽고서도 맘 편하게 웃을 수 있다.
4.
재래식 화장실은 폐활량을 키워준다.
재래식 화장실을 들어갈 때는 깊게 심호흡을 하고
최소한의 호흡만으로 주어진 과업을 완수해야 한다.
따라서 이 과정의 반복으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폐활량이
증가되고 또한 폐활량 증가를 위해 담배도 끊게 되며
평소 몸 관리에도 신경을 쓰게 된다.
우리나라 선수들이 마라톤을 잘 하는 이유가 또한 여기에 있는
것으로 앞으로도 마라톤은 물론 수영, 싱크로나이즈, 역도 등
운동종목의 훈련 과정에 이 과정을 첨가하면 좋은 성적을
기대할 수 있다. 물론 군대도 안 갈 수 있다.
5.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양(?)을
처리할 수 있다. 따라서 시간이 금이라는 상투적인 표현의
진정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맞는 말이다. 시간은 바로 돈이다.
그런 귀중한 것들을 우리는 수세식이라는 좋은 환경을 핑계로
10배 이상씩 낭비해 왔다.
하지만 그 시간에 얻어진 것들이라곤 흡연량 증가와
신문 가쉽란 암기뿐이다.
6.
얼마전 신문 한 구석을 보니 지하철 여자 화장실에 숨어있던
어떤 개나발 당나발 또라이 새끼가 이러쿵 저러쿵 개지랄 떨다가
성추행범으로 잡혀간 기사를 본적이 있었다.
지하철 화장실에도 그런 놈이 잠복하고 대기하고 있는 걸 보니
이 땅의 성폭력 문제는 가히 심각한 단계라 아니 할 수 없다.
앞으로 여자들은 소변이 급해도 다 참으란 말인가?
이는 참으로 심각한 일이다.
하지만 아직까지 재래식 화장실의 성추행 사건은 본 적이 없다.
7.
재래식 화장실에 자주 가면 복권도 맞는다.
이게 왠 변기통 부서지는 황당한 소리냐고 생각하겠지만
절대로 그렇지 않다.
복권맞는 사람들의 공통점은 복권을 사기전날 밤
꿈을 잘 꾸었다는 것이다.
돼지꿈도 있고 용꿈도 있을테고 조상을 보았다는 사람도
있었고.... 하지만 돈과 직결되는 꿈은 바로 X꿈 아닌가?
예로부터 X꿈은 돈이 들어오는 꿈이라 하여 그 해석도
몹시 상서롭기만 했다.
그런 X꿈을 꾸려면 일단 실생활에서 많이 봐야 한다.
그러면 꿈에 저절로 나온다. 나오기 싫어도 나온다.
수세식 화장실 이용하는 사람보다 15배는 더 나올 확률이 높다.
8.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는다는 것은 신체적인 건강뿐 아니라
정신적인 건강에도 몹시 해롭다.
보통 사람들의 경우 화장실에 10분 이상 앉아 있을 경우
주로 어떤 생각을 할까? 이에 대해 유머란 이용자 2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 다음은 그 결과이다.
화장실에 10분 이상 앉아 있을 때 하는 생각
1위 : 내일부턴 절대 술먹지 말아야지 (41%)
2위 : 예전에 사귀었던 애인이 다른 사람에게 차이는 생각 (23%)
3위 : 엄마 지갑에서 5,000원 훔친 사실이 적발 될까 두렵다 (18%)
4위 : 차이기 전에 차버릴까? (11%)
5위 : 오늘 시험은 누굴 믿고 보나...? (5%)
기타 (2%) : 오늘은 추천이 잘 될까?, 통신비 아끼는 방법 없을까?,
그 자식 비밀번호가 뭐였더라? 등
결과에서 알 수 있듯이 대부분이 영양가 없고 비 건설적이며
또한 비교육적인 생각들이다.
따라서 아무 생각없이 맡은 바 임무에만 충실할 수 있는
재래식 화장실이 정신 건강에 훨씬 좋다.
9.
재래식 화장실을 주로 이용하는 사람은 매사에 조심성이 강하다.
조심성이 강하다는 말은 경망스럽지 않고 침착하며
실수없이 무슨 일을 잘한다는 말이다.
재래식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다가 마무리 작업을 마치고
몸을 일으킬 즈음, 무언가를 밑으로 떨어뜨리면
이미 다시 건질 생각은 포기해야 한다.
따라서 재래식 화장실을 이용하면 매사에 신중해져
소지품 분실률이 적어질 뿐 아니라
옷매무시에도 꼼꼼해져 단추를 엇갈려 끼우고 다니거나
바지 앞지퍼를 열고 다니는 일도 줄어든다.
10.
재래식 화장실에는 자연의 생태계에 대한 산 교육장이다.
동물의 왕국은 저리가라다. 별별 생물들이 다 존재한다.
혹시나 식사시간을 앞두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일일히 거명을 하진 않겠지만
기어 다니는 거, 집 짓고 있는 거, 날아 다니는 거....
하여튼 다양한 자연의 세계를 확인할 수 있다.
자연의 세계를 알 수 있다는 것은 자연 환경의 소중함 또한
알 수 있는 것으로 이는 훗날 인격형성의 중요한 근간이 된다.
* * *
지금으로부터 약 5년전,
마지막 예비군 동원훈련 이후로 아직 재래식 화장실에 가보지 못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중 지금의 이 얘기를 이해하지 못하는
세대도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하니
한편으로는 아쉽고 섭섭한 기분마저 든다.
이제 재래식 화장실은 나의 추억과 함께 기억의 저 끝으로
사라져 버리려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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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재가 떨어지기 시작하니 드디어 재래식 화장실까지 등장한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재래식 화장실에 대한 추억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그런데도 지금의 생각으로는 마치 들어가면 안될 곳 처럼 여겨지고 있으니
이 또한 세월의 변화가 가져다준 기억의 상실이다.
요즘은 누구나 잘 가꾸어진 현대식 화장실을 이용한다.
하지만 다 그런 것은 아니라는 사실 정도는 늘 기억하고 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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