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 단편유머

삐삐가 핸드폰보다 좋은 10가지 이유

아하누가 2024. 6. 19. 00:22


1. 삐삐는 걸려오는 호출에 가려서 응답할 수 있다!

 

    이것은 삐삐가 가지는 가장 대표적인 장점으로

    호출된 번호를 일단 확인할 수 있어
    이의 응답에 대한 선택의 여지가 있다는 것으로,
    한마디의 요즘 말로 씹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핸드폰은 남녀노소,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의무적으로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빚쟁이라든가 또는 생명보험에 가입하라며 쫓아다니는 친구의 전화에
    아무런 대책이 없다.

 

 

2. 삐삐는 기억력과 상상력을 높여준다.

 

    일단 삐삐에 번호가 찍히면 우선 누구인가를 확인하게 되는 과정에서
    많은 뇌세포의 활동이 활발해져 기억력을 높이는데 일조한다.
    또한 잘 모르는 번호가 찍혀 있더라도
    국번으로 대충 지역을 파악한 뒤 이와 관련된 인물들을
    추리해 나가기 때문에 상상력이 탁월해질뿐아니라
    여러명의 친구들을 머리속에 떠올리게 되므로

    교우 관계가 돈독해 질 수 있다.
    하지만 핸드폰은 오는 전화를 그저 아무 생각없이 받기만 할 뿐이어서
    1년 사용할 때마다 아이큐가 10씩 떨어지게 된다.

 

 

3. 결정적인 순간의 적절한 변명거리로 활용된다.

 

    살다보면 곤란한 순간들이 많이 생긴다.
    예를 들어 화장실에서 소변을 보다가 평소보다 몸이 더 많이
    떨릴 때라든가 또는 지나가던 늘씬한 다리의 아가씨를 쳐다보다가
    자신도 모를 신음소리에 가까운 탄성이 나올 때라든지,
    아니면 애인과 비디오방이나 극장에서 조금 야한 장면을 보다가
    이상한 괴성을 내는 일이 있어도 삐삐의 진동 때문이라는
    한마디면 모든 것이 없었던 일처럼 되어버린다.
    만약 핸드폰의 진동이라고 둘러댔다가는
    오지도 않은 전화기 들고 한동안 헛소리를 해야 한다.

 

 

4. 다른 사람과 데이트중에도 안심할 수 있다.

 

    삐삐의 좋은 점은 이 여자를 만나면서 저 여자의 연락을,
    또는 이 남자와 만나면서 저 남자의 연락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만약 핸드폰으로 이짓을 했다가는 길바닥 한복판에 길게 누운 채
    사경을 헤매고 있어야 한다(스피드 011 광고 참조).

 

 

5. 남이 사용할 걱정이 없다.

 

    삐삐를 빌려 달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하지만 삐삐가 왔다고 핸드폰 한번 쓰자면 대부분 건네 준다.
    여기서 핸드폰을 안빌려주는 사람은
    [이지메]란 단어가 가지는 뜻을 몸소 체험하게 되며,
    그 후유증은 최소한 3개월이 가기 때문에 간질과 광견병과 같은
    합병증세가 찾아온다.

 

 

6. 아기들의 장난감으로도 적절히 활용된다.

 

    두살된 아들 녀석은 삐삐의 진동만 울리면 까르르르 웃어 대며
    좋아한다. 또한 삐삐를 이 녀석이 어디에다 집어 던져도
    아무런 흠집하나 나지 않는다.
    한번은 핸드폰을 줬다가 덮개를 꺾어버리는 바람에
    많은 시간과 돈을 들여 이를 수리하러 뛰어 다녀야만 했다.

 

 

7. 최신 기종에 구애받지 않는다.

 

    삐삐는 오래전 모델을 가지고 다닌다고 불편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없으며, 또한 최신 기종이 나왔다고 해서 그것을 보고
    배 아파하는 사람 또한 아무도 없다.
    하지만 비싸기만한 핸드폰을 최신 기종이라는 이유로
    눈물을 머금고 사고 나면 그 다음날 더 최신 모델이 신문에
    대문짝만하게 게재된다.
    이 때의 충격은 실로 엄청난 것이어서 결국 또 핸드폰을 사거나
    심한 정신착란증에 빠지는 악순환이 연속된다.

 

 

8. 삐삐는 자신만 조용히 알고 있으면 된다.

 

    삐삐가 오면 조용히 쳐다보고 곧 연락을 하거나 말던가 하지만
    핸드폰은 때와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큰 소리로 떠들어야 한다.
    한번은 사무실 화장실에서 똥을 싸다가 전화가 오는 바람에
    옆칸에서 같은 일을 보는 사람들에게 ‘야! 조용히 똥좀 누자!’며
    엄청난 항의를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같은 상황에서 삐삐의 진동이 울리면 대장의 운동이
    활발해져 하던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다.

 

 

9. 삐삐는 누가 했는지 기록이 남는다.

 

    지하철이라든가 또는 잠시 바지를 벋고 있어서
    호출을 받지 못한 경우에도(근데 바지를 왜 벗지?)
    그 기록은 남아 있으며 언제라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핸드폰에 [부재중 수신전화 2통]이라든가,
    [3 MISSED CALL] 이라는 메세지가 표시되어 있으면
    누가 전화했는지 궁금해서 돌아버린다.

 

 

10. 가장 결정적인 삐삐의 장점은 바로 이것이다!

 

    분실했을 경우를 생각해보면

    삐삐가 핸드폰보다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알 수 있다.
    삐삐는 그 크기가 작고 대부분 핸드백이나 주머니 또는 허리띠에
    차고 다니므로 분실의 여지 또한 드물다.
    그러나 핸드폰은 잃어버리기도 쉽고 한번 잃어버리면
    엄청난 금전적, 정신적 피해가 온다.
    친구 한 녀석은 언젠가는 걸어야 하는 국제전화번호를
    늘 수첩에 적어가지고 다니면서
    누군가 잃어버린 핸드폰을 찾으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이에 또 한 친구는 핸드폰을 아예 집안 장롱속에 깊숙이 넣고 다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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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우 오래전에 쓴 글이다. 이 글이 처음 발표되고 그 반응은 대단해서
당시 3개 삐삐회사의 광고문구로 채택되었다. 물론 큰돈을 벌진 못했다.
요즘은 당연히 핸드폰이 더 다양한 기능과 장점이 많다. 
다만 삐삐가 있던 시절이 가져다 주는 풋풋한 추억이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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