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앞바다에서 배로 한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을왕리 해수욕장.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 썰렁한 바다에서 나는 홀로 수영을 하고 있다.
* * *
인천 근방의 한 해수욕장에 친구들 몇 명과 여름 휴가를 즐기러 왔던
오래전 여름의 일이다.
바다가 넓게 펼쳐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아 텐트를 치고
약간의 해수욕과 저녁 식사를 마치니 어느덧 해가 저물고 있었다.
서해의 노을은 너무도 아름답다.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 모든 사람의 얼굴도, 주변의 모든 사물들도
정열적인 기운이 감도는 장관을 연출하고 있었다.
그러한 피서지의 설레임으로 첫 밤을 자는 둥 마는 둥 보낸 나는
낯선 외지의 아침을 맞게 되는데…….
밤이 지나면 또다시 해가 떠오르는 자연의 섭리처럼
하루가 바뀌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생리적 현상이 있다.
그 생리적 현상을 해결하려고 화장실을 찾았는데
그 화장실이란 것이 좀 묘한 모습으로 묘한 곳에 자리잡고 있었다.
바다가 보이는 해변의 한 구석에 위치한 화장실은
한강 고수부지나 기타 유원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동식 화장실이었으며
모두 두 개가 있었다.
그런데 한쪽 화장실에는 많은 사람들 - 약 10여 명 정도 - 이 줄서서
차례를 기다리는데 그 바로 옆에 있던 또 다른 화장실에는
단 한 사람도 줄 서 있지 않는 이상한 현상이 벌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일인가 옆 화장실을 기웃거리니 그 이유를 금방 알 수 있었다.
그 화장실은 출입문의 문짝이 통째로 떨어져 없어진 채로 있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많은 고민을 했다.
이 급한 상황에 과연 10여 명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릴 것인가?
아니면 ? 아니면?
짧은 시간의 긴 고민 끝에 문짝이 날아가버려 휑 하니 뚫린 오픈카, 아니
오픈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기로 굳게 마음을 먹고 그쪽으로 들어섰고
그와 동시에 많은 사람들의 경이로운 눈길을 뒤통수를 통해 느낄 수 있었다.
‘에이~ 이왕 이렇게 된 거……’ 하는 생각으로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우며
노래까지 한가락 흥얼거리는 여유를 누리고 있었다.
화장실에서 바라보는 전망이 너무 좋은 탓이었을까?
볼 일은 잘 해결되지 않고 초조함과 불안함만이
화장실 안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게다가 아까의 내가 그랬던 것처럼
많은 사람들이 줄서지 않은 화장실의 비밀(?)을 알아보려고
화장실 문 앞까지 와서 기웃거리다 돌아가곤 했다.
물론 일을 보는 자세로 앉아 있는 나를 보고는 바로 자리를 피하긴 했지만
그것도 참 쪽팔리는 일이었다.
신문이라도 한 장 있으면 눈길이라도 줄 데가 있으련만
그저 멍청히 앞만 바라보다
누군가 오는 듯한 인기척을 느끼면 애써 눈길을 딴 데로 돌려야 했으니
그것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하지만 곧 이성을 되찾았다.
‘바지가 반쯤 내려가야 쪽팔리지 다 내려간 상태는 쪽팔릴 것이 없다’라는
평소의 지론을 바탕으로 고개를 뻣뻣이 들고 있기로 했다.
그랬더니 그것도 꽤 재미있었다.
‘무슨 일로 이 화장실에는 줄을 안 섰나?’ 하며
다가오는 사람들이 빤히 쳐다보며
쭈그리고 앉아 있는 나를 보고는 화들짝 놀라는 표정이
오히려 더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더욱이 여자의 경우는 그것이 더 재미있어서 조금 더 뻔뻔한 표정으로
일부러 눈길을 맞추곤 했다.
그러니까 무안한 것은 나보다도 오히려 그런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더욱 심하다는 확신을 가지기 시작할 무렵,
이 상황을 더욱 재미있게 지내보자는 발상을 했다.
그래서 그 다음부터 화장실을 향해 누군가의 얼굴이 불쑥 들어서면
나는 친절하고도 상냥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기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하면서.
평소에 똥싸면서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신문을 보거나 담배를 피우는 것이
전부인줄 알았던 내게
그 경험은 인간의 무한한 잠재력을 확인시켜 준 계기가 되었으며
이는 나중에 신문과 TV를 동시에 보며 콧구멍을 후비며 밥을 먹을 수 있는
경지에 이르게 된다. 물론 그것은 훗날의 일이고.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지만
원래의 목적인 생리 현상의 해결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인간이 가진 또 하나의 잠재력 중 하나인
뛰어난 적응력을 몸소 체험하게 되었다.
즉 어려운 환경일수록 적응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 욕구는
더욱 강해진다는 이치를 터득하게 되었고,
이것은 또한 훗날 군대 생활을 하는 데 유감없이 발휘되었으며,
더 훗날 마누라에게 얻어 맞으면서도 신체의 주요 부위를 보호할 줄 아는
자기 방어의 호신적 기능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어쨌거나 그런 저런 와중에 화장실이 가지는 본래의 목적이자 순기능인
생리 현상의 해결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또 하나의 문제가 있었다.
볼 일을 보는 자세로 앉아 있을 때야
여유를 부리며 불현듯 나타나는 낯선 방문객에게
인사를 할 수도 있었지만
마무리 작업에 들어갈 경우의 자세는 만만치 않은 일이었으며,
또한 그 경우는 인사를 하는 상황과는 달리
내가 받아야 하는 쪽팔림에 대한 비중이 상대적으로 커지기 때문이었다.
또 한 번 짧은 시간의 긴 고민을 했다.
물론 그런 사고의 갈등 속에서도
찾아오는 방문객(?)에게 인사하는 침착함 또한 잊지 않았다.
모든 결정은 끝났다.
잠시 후 나는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의 바닷속에서
몸이 달달 떨리는 추위를 여유 있는 표정으로 애써 감추며
수영을 하고 있어야만 했다.
마무리 작업을 위해 한쪽 손에 꼭 쥐어져 있었던 화장지는
아무 기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파도와 함께 쓸려간다.
차가운 바닷물에 몸이 잠긴 최악의 상태에서도 나는 한 가지 사실만을
머릿속에 되새기고 있었다.
‘누렸던 행복만큼의 고통은 반드시 찾아온다’는.
아하누가
아직도 나는 을왕리해수욕장에 가면 이때 일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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