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야.
고3이면 엄청 스트레스 받는 때인거 다들 알지?
바로 그 고3때의 일이라구.
그때 우리 반에는 이상한 놈이 하나 있었어.
반장이 바로 그 놈이었는데 공부를 잘해서 반장이 된 거는
아니었구 지가 하겠다고 손 들어서 반장이 된 놈이었지.
그래서 나랑 친했어.
내가 남보다 잘하는 게 하나 있었는데 물론 공부는 아니었고
키타를 무척 잘쳤어. 그때는 키타 잘 치는게 캡이었거든.
그 녀석도 알고 있었던터라 늘 키타 가르쳐 달라고
노래를 불렀지. 지겹게 말이야.
그런데 하루는 이 녀석이 구조조정을 했는지 아니면
발상의 전환을 했는지 내게 다른 주문을 하는거야.
“은태야, 너 그럼 드럼도 칠 줄 아니?”
“응. 조금.....근데 왜?”
“아무래도 키타는 어렵고 드럼을 가르쳐주라....”
그러더니 녀석은 어디서 구했는지 빗자루 부러진 거 두개를
가지고 드럼치는 시늉을 하며 책상을 두드리고 있었어.
엄청나게 큰 드럼 스틱에 큰 드럼인 셈이었지. 하지만 생각해봐.
드럼이란 게 빗자루 몽둥이로 책상 두들긴다고 배워지나?
그런데도 녀석은 몇날 며칠을 조르는거야. 기가 막히더군.
하는 수 없이 몇가지 기본 박자를 가르쳐줬지.
이렇게 저렇게 하나둘셋 ...발은 그때 이렇게 누르는 거라고.
원래 드럼 보면 발로 큰 북을 치는 페달이 있어.
녀석은 반장이라는 신분도 아랑곳하지 않고 아침 조회만 끝나면
신나게 연습에 들어갔어. 교실이 시끄러워서 난리가 났지.
하지만 반장이 치겠다는데 누가 뭐라나.
다들 그저 저러다 지치고 말겠거니 하고 지켜볼 뿐이었어.
며칠 못가고 제풀에 지쳐버릴 것만 같던 그 일은
꽤 오랫동안 계속 되었어. 제법 재미가 들었나봐.
근데 그 때쯤이었어.
아침 첫수업이 시작되기 전 우리 교실을 지나가던 영어선생님이
우리반에 고개를 내밀고는 화난 얼굴로 이러시는 거야.
“이거 아침마다 교무회의 시간이면
책상 두드리는 소리가 나는데 아마 이 교실 같은데 맞나?
누가 드럼을 치는 모양인데, 이반 맞지?”
모두들 가만히 있었어. 맞는 말이긴 했지만 그래도 일단은
상황을 지켜보고 대답을 해야 할 것 아냐.
그래서 아무도 대답이 없자 영어선생님은 반장을 부르셨어.
“야! 반장, 분명히 이 반에 있는 놈이 맞으니까
너는 책임지고 오늘 점심식사 시간까지 교무실로 법인 잡아와! 알았지?”
같은 반 애들은 숨을 죽여가며 키득키득 웃고 난리가 났었어.
정말 고등학교에 3년째 다니니 별일이 다 생기더라구.
그래서 어떻게 되었냐구? 이런 답답하긴.
범인이 반장이니 그놈이 그놈인데 교무실 갈 놈은 한명이면 되잖아.
범인이자 반장이며 교무실에 가야하는 당사자인
그 녀석은 점심식사를 마치고 유언같은 비장한 말 몇마디를
알아들을 수 없게 지껄이고는 곧 교무실로 내려 갔어.
하지만 20분 정도 시간이 흐른 뒤에 돌아온 이 녀석 말이
걸작이야. 다음은 영어선생님과 반장과의 대화야. 잘 들어봐.
반 장 : 저~ 선생님. 아침마다 책상을 두드린 사람은 바로 접니다. 제가 그랬습니다.
영어선생님 : 아니, 반장인 니가 그럴 리가 있나.... 그러지 말고 솔직히 말해봐!
반 장 : 선생님 분명히 제가 맞습니다. 제가 한 겁니다.
영어선생님 : 아니야, 넌 지금 누군가에게 협박받고 있어. 빨리 그놈이 누군지 말해!!!!
반 장 : 선생님 정말 제가 그랬다니까요.
영어선생님 : 너 자꾸 그러면 나도 화낸다.
녀석은 프로야! 프로라구!!!! 당장 나가서 잡아와!
일이 이렇게 되었고 곧 5교시는 영어선생님 시간인데
아무래도 단체 기합을 받을 것 같다며
반장은 우리에게 얘기하면서도 영어선생님이 자신의 드럼실력을
프로로 인정했다는 부분을 힘주어 강조하며 흥분된 얼굴로
내게 그 다음 과정을 빨리 가르쳐 달라는 거야.
참으로 기가 막히고도 어이가 없는 일이었지.
아니나 다를까.
곧 이어 영어시간에 되자 영어 선생님은 커다란 몽둥이를 가지고
들어와 큰 소리를 치시는 거야.
하는 수 없이 하라는 대로 모두 책상 위에 올라가서 무릎 꿇고
의자를 하늘 높이 들고 있었지.
영어선생님은 계속 범인 나오라고 큰소리를 치셨지.
참 환장할 일이었어. 반장이 또 나섰어.
“선생님 정말 제가 그랬다나까요”
“시끄러!!!! 넌 나가있어!”
세상에 이런 황당한 일이 있나?
범인은 나가있고 죄없는 무고한 학생들만 벌을 받고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선생님의 큰 소리는 점점 심해지고....
그때였어.
복도에 서있던 반장 녀석이 황급히 교실로 뛰어들어 오더니
청소함에서 빗자루 몽둥이 2개를 꺼내고는
미친듯이 책상을 두들기기 시작했어. 그동안 보지 못한 현란한 솜씨였어.
선생님은 현란한 솜씨에 놀라셨는지 한참이나 말씀이 없으셨지.
뿐만 아니라 모두들 그 환상의 연주에 감동하는 듯
교실은 감동적인 타악기 연주회장이 되고 있었어.
의자를 들고 있던 나는 생각했어.
이제 그 다음 과정에 들어가도 되겠다고 말이야....
* * *
가만히 생각해보니 꽤 오래전일이야.
그리고 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그 녀석을 몇번 만났어.
녀석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생물교육학과에 진학했지.
진짜 드럼을 쳐봤냐고 물어보니 아직 한번도 못쳐봤다며
웃던 모습이 아직 기억나.
지금은 어디서 뭘하고 있는지.....
다음에 또 생각나면 재미있는 얘기 해줄께.
아하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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