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편지

아하누가 2024. 6. 22. 23:51


편지....

이거 참 오랜만에 듣는 단어야 그치?
물론 박신양인지 뭔지 나와서 눈물 질질짜는 영화 제목하고 같아서

몇번 듣긴 들었을 거야.
근데 난 박신양 안 좋아해. 무지 싫어 해. 왜냐구?
남들이 나보고 박신양 닮았다고 하거든. 기분 나쁘게....

 

 

하여튼 참으로 오랜만에 듣는 단어야.

편지.....

예전에는 주로 편지를 했었어.
목적은 여러가지였지만 역시 주 목적은 여자꼬시는 거였지.
물론 편지 잘 써서 여자 꼬셨다는 놈은 보기 드물었지만

그래도 써야 할 일이 생기면 다들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도 썼었어.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열심히 썼어.
그러고 보니 옛날 일 하나가 생각나네.

편지랑 관련있는 얘기니까 좀 오래된 얘기야.
잘 들어봐~

 

 

예전에 친구 한 놈이 어쩌구 저쩌구 잠시 알게 된 여자를

잘 꼬셔보려고 편지를 써보냈대.
물론 예상대로 여자의 반응은 시원치 않았나봐.

근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것도 그래.
괜히 편지 보내면 여자들은 공주병 증세만 심해지는 것 같아.
그러니 편지는 안보내는 것도 좋은 방법일지도 몰라.

 


하여튼 그 녀석은 또 편지를 쓰려 하고 있었어.
그냥 쳐다보고 있기에 안스러워 내가 도와주겠다고 나섰지.
하긴 한 놈이 쓰는 것 보다는

여러명이 대가리 맞대고 연구하는 것이 더 괜찮지.
그리고는 내가 물었어.

 

 

“야! 먼저 편지는 어떤 내용이었냐?”

 

 

당사자인 친구는 주절주절 설명했어.
날씨 얘기며 주변 얘기며 어린시절 얘기 등 주로 시시콜콜한 것들이었어.
그래도 꼴에 비가 오는 날 밤을 잡아서 구성지게 편지를 썼다나?
그러면서 먼저 썼다는 편지 내용을 어물어물 기억해내려고

노력하고 있었어.

 


보기에도 답답한데 저 놈이 쓴 글이면 얼마나 알아보기 힘들겠어?
근데. 그때, 바로 그때. 내 머리를 때리는 무언가가 있었어.
맞아!

이 녀석은 너무 편지를 뜬구름 잡듯이 정확하지 못한 얘기를

두리뭉수리하게 표현했던 것이 같았어.
그리고 바로 그것이 상대방에게 어필하지 못하는

결정적인 이유라는 생각이 들었어.
그래서 어쨌냐구?

꼭 이맘쯤 되면 그걸 물어보더라.
한번만 더 물어보면 나 삐져서 더 말 안한다!

 

 

어쩌긴 어째.

내가 두리뭉수리한 너의 단점을 보완해서 상대방의 마음을 휘어잡을 수 있는
정확한 표현을 해주겠다고 했지.

그리고는 내가 며칠을 고심해서 한통의 편지를 써주었어.
역시 편지는 시작이 중요해. 시작에서부터 딱부러져야 한다구.
다음은 내가 써준 편지 내용이야. 한번 볼래? 이렇게 시작해.

 

 

희선씨에게....
지금 창밖에는 오끼나와 해상에 자리잡은 열대성 저기압과 시베리아에서 발생한
대륙성 고기압이 북위 38도 부근에서 만나 전선을 이루며
지상으로부터 78도의 각도를 이루며 떨어지는 우리나라 특유의 지형성 강우인 이 빗줄기를
나는 수정체를 통과한 빛이 굴절되어 망막에 거꾸로 맺힌 상이 시신경을 통해
뇌에 전달되어 이를 인식한 뇌의 명령으로 인해 그 비를 보고 있어.......

 

 

하지만 그녀석은 결국 그 편지를 보내지 않았어.
그리고 그 여자하고는 말한번 제대로 못붙이고 흐지부지 끝나버렸대.
어쩌면 내가 써준 그 편지를 보냈었는게 더 나았을지도 몰라.
그래도 그 녀석은 그것을 내탓으로 여기지 않고 다 자기 팔자로 생각하니
싸가지는 제법 있는 놈이야.

 

 

편지 얘기하니 정말 새롭네. 요즘은 편지 안쓰지?
전화하던가 조금 색다르게 할려면 삐삐나 핸드폰에 음성 남기던가

메시지 찍어 보내던가
굳이 편지를 보내고 싶다면 통신의 메일로 보내지?


그러지 말고 가끔 편지를 써봐.

글씨를 잘 쓰던 못 쓰던 종이에 쓰여진 것은 말 그대로,
글자 그대로 묘한 매력이 있잖아?
가끔 보고 싶었던 사람에게 전자메일 말고 편지를 써보라구.
오늘은 이만 할래. 나도 오랜만에 편지나 써야 겠어.

다음에 또 재밌는 얘기 해줄께.

 

 

 

 

 

 

아하누가

이제는 편지를 쓸 일이 더 없어졌다.